추운 겨울 두껍게 옷을 싸맨 연인이 저들만 빼고 다 아는 눈치로 가볍게 입을 맞춘다. 발을 동동 구르는 듯하더니 한 번 더 맛보자며 1초, 또 한 번 맛보자며 2초, 4초, 입술이 차마 달콤한 듯 신호가 바뀌어도 저들은 파란불을 보지 못하고 그 뜨거운 접촉에 빠져있다. 가로등 불빛은 그대로인데 어째선지 세상이 그들을 비추고 있는 것 같고,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세상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그 키스는 차가움과 뜨거움의 속성을 모두 지녔다. 키스할 때면 얼굴이 붉어지고 달아오르는 것이 까닭이고, 한 번 붙으면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 것이 까닭이다.
키스는 각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 떼어질 듯하면 다시 달라붙고 달라붙고 나면 시시각각 움직이려 애쓰니 그 안에서 혀들은 서로 들어가려 안간힘이다. 눈을 감고 키스하는 이유는 이제야 상대를 제대로 보려는 시도로써 혀가 뒤엉켜 춤추는 동안 감각은 서서히 상대를 더듬고 눈으로만 판단했던 너의 뒷모습을 제대로 형상화하기 시작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이와 하나 되려는 욕망을 가지고, 그러한 욕망을 일시적으로 채울 수 있는 신체적 합일은 섹스와 키스뿐이다. 따라서 진정한 키스는 전조증상이자 어디로 나아가겠다는 방향의지를 표명하는 '준비됨'의 신호이기도 하다.
혀는 구음을 통해서만 말하지 않고 직접 혀와 마주하는 방식으로도 대화를 시도하며 그 과정에서 우린 돌기들이 연주하는 새로운 언어를 발견한다. "나는 너와 사랑을 시작할 거야. 우리 사랑이 언제나 어떻게든 엉망진창 무너지려 해도 나는 좋아하기를 멈출 수 없어."라는 한 줄의 말은 단 2초로도, 경우에 따라서는 30분까지도 키스의 언어로 번역된다.
키스는 썸 타던 연인이 기다려왔던 사귐을 선포하는 선언문으로써 사랑의 시작을 알린다. 이것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젊은 남녀에게마저 강제로 유혹하는 힘을 주기도 하는데 일본의 한 실험에서 서로를 처음 보는 젊은 남녀에게 여러 차례 키스를 시키자 서로는 호감을 가지고, 나아가 연인 관계가 됐다. 키스가 대체 무엇이길래? 입술엔 성감대가 없으므로 성적 흥분을 느끼는 건 오롯이 키스라는 행위 안에 부여된 뇌의 전기신호뿐이다. 그러나 부드러운 입술이 만나 비벼지는 마찰은 고압 전류가 튀겨대는 불꽃보다도 더 강하게 뇌를 두드리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오랜 연인이 관계를 종식하는 마무리의 순간도 키스가 담당한다. 이제껏 사랑한다 믿었던 그(그녀)와의 키스가 더 이상 즐겁지 않다. 더 이상 흥분되지 않는다.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다. 끌림이 없는 관계의 끈은 자연스레 풀어헤쳐졌고 언제 뜨겁게 서로를 원했냐는 듯 차갑다. 분명 처음의 키스는 뜨거워서 화상을 입었는데 이제는 너무 차가워서 화상을 입는다. 어디에도 온기는 없다. 그렇게 키스는 시작이었다가 다시 끝이기도 하다.
키스의 모든 각도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각도다. 모든 키스가 첫 키스라는 뜻이다. 따라서 키스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만 행위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같은 방식으로 행위되지 않기 때문에 시점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키스가 강렬하고 집중된 생의 의지로써 언제나 '지금'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은 키스가 비교 불가능한 체험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여러 키스의 느낌을 비교해서 설명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혹 지난 번과 지금의 키스가 좀 다르고 이번은 별로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키스를 해선 안 되는 사람이다. 현재의 키스와 미래의 키스를 상상하며 무엇이 더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이도 이 장대한 서커스에서 실격당해 마땅하다.
키스는 과소평가된 불꽃축제처럼 관심을 가져야만 그 빛을 발하는 의지의 산물이다.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것은 키스의 성패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진정성이 들어갔냐의 판도가 성공을 결정한다. 그렇기에 서투른 키스마저도 우리는 아름답다고 기억하고, 드라마 속 낭만있는 키스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진정성이 없는 키스는 되려 상대에게 배신감을 줄 뿐이다.
키스를 키스답게 하는 사람은 지나간 키스와 앞으로의 키스를 떠올리지 않고 매순간 온 힘을 다한다. 어쩌면 혀가 어루만지는 건 다쳤을지 모르는 상대의 마음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키스는 서로가 서로에게 물을 흘려넣어주는 생명의 행위요 태동하는 삶의 깃발 같은 방식으로 뇌리에 번개를 꽂는다. 물을 가능한 사방에 튀기면서, 물을 가능한 많이 흐르게 하면서, 그대의 안쪽으로, 가장 더럽고 추악한 그 곳 그 몸까지 물이 다 흘려넣어질 때 키스는 진정 아무도 잡을 수 없는 생명수가 되니 키스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조금은 여유로워졌으면 한다.
사랑이 숨겨지지 않는 도시의 공기가 이유는 몰라도 더 따듯하다.
* 이후 글이 삭제된 뒤 무거움과 가벼움 브런치북에 재발행 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