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었지만, 자신의 직무상 도와드리겠다는 하녀를 물리치지는 않았다.
마대산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하녀가 옷을 갈아입혀주려고 하니 쩔쩔매고 있었다.
‘허허, 저런 숙맥 녀석! 나하고만 있을 땐 호랑이도 맨손으로 잡을 것 같더니만.’
결국 이번에도 한마디 해줄 수밖에 없었다.
“얘, 대산아! 얌전히 있지 못하겠느냐! 네가 그러면 그 아가씨가 난처해진단 말이다!”
고력사 댁 하녀로서 그녀의 일은 고력사 나리의 손님들에게 시중을 드는 것이다. 그런데 손님이 그녀의 시중을 거절한다면 그녀에게는 그보다 난처한 일도 없을 것이다. 자칫 청지기가 손님께 뭘 잘못했느냐며 혼낼지도 모르고….
그런 걸 깨달아선지 마대산도 얌전해졌다.
물론 주영치가 속으로 혀를 찰 정도로 안절부절 못했지만 말이다.
‘이 녀석은 평생 여자 손목 한 번 못 잡아본 건가?’
욕의를 입고 나자 하녀들이 욕실로 안내했다.
방바닥을 파고서 집어넣은 하얀 대리석 욕조의 넓이는 주영치의 움막 넓이와 비슷했다. 그 거대한 통에 뜨거운 물이 그득 차있고, 귀한 분들의 행차 때 종종 맡아본 것 같은 향기가 진하게 퍼져있었다.
“들어가시지요.”
하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영치는 조심스럽게 발끝을 밀어 넣었다.
“아, 뜨! 뜨것!”
마실 물도 부족하다보니 목욕은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다. 땔감도 부족하니 그마저도 아주 미적지근한 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뜨거운 물이 직접 살에 닿으니 온몸이 놀랄 만도 했다.
신기하게도 마대산은 거침없이 이 뜨거운 물속으로 들어갔다.
‘역시 이 녀석은 파계한 중이거나 밀교의 고승이었음이 틀림없나보구나.’
높은 신분의 승려들이나 학자들, 관리들은 늘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하기에 하루에 한 번 이상 목욕을 한다지.
저렇듯 뜨거운 물에 익숙하고 젊은 여자들 앞에서 살을 내보이는 걸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마대산은 승려였음이 틀림없다고 주영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양 귀비를 바로 앞에서 뵙더라도 흑심 같은 걸 품을 일도 없겠다고 결론을 내리는 주영치였다.
‘그래도 말이지…, 안록산이도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귀비님을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판이잖아. 저놈마저 귀비님께 흑심을 품은 듯한 걸 드러내면…. 어서 빨리 고력사 나리와의 일 다 끝내고 고선지 장군께 가든가 해야지, 원.’
물이 많이 뜨거워서 뜨거운 솥에 던져진 개구리처럼 튀어나가고 싶었지만, 함께 들어온 하녀의 손이 몸에 닿아있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헌데 좀 있으니 몸이 뜨거운 물에 적응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뭉쳐있던 근육이 흐물흐물 풀어지고 뚝뚝 소리를 내던 뼈마디가 익으면서 온몸이 개운해지고 있었다.
‘아아, 이거, 이거, 신선이 된 것 같구나!’
주영치는 눈을 감고 등을 욕조 벽에 기댄 채 반쯤 누웠다. 가느다란 손가락들과 까끌까끌한 천조각이 욕의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살짝 실눈을 뜨고 보니, 곁에 앉은 하녀가 모시 수건으로 그의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모시수건의 까끌까끌함이 느껴질 때마다 살갗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고, 그러면서 더더욱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아아,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어서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고 싶구나.’
문득 생각이 나서 마대산을 바라봤다.
역시나 너무 꼿꼿해서 시중을 드는 여인이 마치 돌부처를 닦고 있는 것 같았다. 하녀가 양 귀비 못지않게 미인인데다 이제 곧 마흔이 되실 양 귀비에 비하면 그녀의 자식뻘이다 싶을 정도로 어린 걸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었다.
주영치 자신이라면 차라리 저 하녀를 주는 조건으로 고력사 나리께 충성하겠다고 할 것도 같거늘….
‘그래, 너 참 대단하구나.’
하녀가 이번에는 주영치의 상투를 풀었다. 정수리 주변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자 짧은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정수리 일대가 드러났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풋!’ 하고 웃은 하녀가 자신의 옷소매에서 작은 칼을 꺼내더니 정수리 일대를 깨끗하게 밀어주었다.
‘으어! 시원하구나!’
승려가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했지.
하지만 상투를 제대로 틀려면 정수리 일대를 주기적으로 밀어줘야 한다. 하지만 주영치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을 부릴 돈이 없다 보니 제대로 손질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늘어난 머리카락 때문에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서 상투를 더 키우듯이 조절해왔다. 주영치의 눈이 마대산의 머리로 향했다.
‘역시 승려 머리가 좋구나. 헌데 꽤 자랐네. 조만간 상투를 틀어줄 수 있겠군.’
어차피 지난번 양 귀비를 뵈었을 때 파계승이라 말씀드렸으니 이것저것을 캐물어보시지는 않겠지.
양 귀비의 전용 목욕탕이던 화청지 해당탕(華清池海棠湯) https://www.thenewslens.com/article/160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