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니 전쟁 시기의 공화국 로마의 군대는 자영농들에게 병역 의무를 주고서 징집하는 식이었습니다. 즉, 매년 제비를 뽑아 돌아가며 병역 의무를 지는 식이었고, 그 해에 병역 의무를 지지 않는 이들은 그냥 자기 집에서 농사 짓고 그러면 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칸나에 전투에서 무려 8만 대군을 잃었는데도 군대 재건이 가능했지요.
그리고 군대에 간 자영농은 자기 재산이 있으니 만치, 나라에서 지급하는 무기나 식량 등 보급품에 대한 대가를 급료에서 까는 것 등도 가능했고요(로마 공화국과 동맹 관계였던 도시국가의 병사들에게는 이런 조치를 하지 않아서 정작 로마인 병사들이 불만이 가득했다죠).
하지만 포에니 전쟁에서의 승리로 로마의 귀족들은 곡식이 풍부하게 나던 북아프리카 일대, 즉 카르타고의 지배 지역이었던 곳을 장악했고, 거기서 생산된 곡식이 로마에 싸게 공급되면서 결국 시장 경쟁을 이기지 못한 로마 자영농들이 몰락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병사들을 징집하기가 어려워지자 마리우스와 술라 같은 군벌들이 자기 돈으로 군대를 모집하는, 말 그대로 모병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즉, 이것이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 부자에 의한 로마 제정기 때에 이르면 일반화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옥타비아누스, 즉 아우구스투스가 바루스의 패배와 군단의 전멸 소식에 저렇게 크게 맨붕했던 거고요.
즉, 포에니 전쟁 시절의 로마군이 한국군이라면,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로마군은 미군이었죠. 징집 체제와 유지 체제만 본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