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야 GPS도 있고, 지도도 있고, 각종 첨단 항해 기구도 있으니, 항해가 별로 어렵진 않다. 하지만 15세기 사람들에게 항해란 그야말로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특히나 지구 구체설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고, 적도 부근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가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요컨대 대양 항해란 목숨을 건 모험이었던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사람들은 바다로 나갔고, 마침내 인도항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 위대한 역사적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포르투갈의 지리적 위치가 지중해 무역의 변방이긴 하지만,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는 최적의 위치이기도 했다는 점.
둘째, 십자군 전쟁에서 패한 유럽 세력이 땅이 아닌 바다를 통해 또다른 기독교 연합 세력인 프레스터 존의 나라를 찾고자 했던 점. 예컨대,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를 연 저 유명한 항해 왕자 엔히크가 ‘그리스도 기사단장’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흔히들 유럽인들이 금에 대한 탐욕 때문에 대항해시대를 열었다고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다. 단순히 물욕 때문이라면, 왜 아프리카 사람들, 아시아 사람들은 항해를 하지 않았단 말인가? 따라서 좀 더 정확히 말해서는 금과 복음이라는 욕망 때문에 항해에 나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셋째, 포르투갈은 북방에 있는 바이킹족들의 조선 기술과 지중해에 있는 아랍인의 조선 기술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포르투갈인들은 대양 항해에 적합한 빠르면서도, 역풍을 거스를 수 있는 배를 가지게 되었다.
넷째,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반도는 8세기부터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슬람은 12세기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문명이 발달한 곳 중 하나였다. 즉, 포르투갈은 이슬람을 통해 인도-아라비아 숫자나 삼각법, 측량법, 수학 등을 배워 항해술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다섯째, 유럽은 13세기 후반까지 이슬람과 십자군 전쟁을 벌였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화포 기술이 발전하게 된다. 포르투갈은 이 화포 기술을 이용해 아시아의 상대국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여섯째, 대서양은 판게아 초대륙이 이동할 때 찢겨서 만들어진 바다다. 따라서 그 중간중간에 기항지로 아주 적합한 작은 섬들이 있다. 예컨대, 아조레스 제도, 카나리아 제도, 마데이라 제도, 카보 베르데 곶 같은 곳이다.
이 같은 기항지들은 대양 항해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만일 이 섬들이 없었다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은 없었을 것이다.
일곱째, 향료와 향신료에 대한 갈구가 있었다. 당시 향료 무역 루트는 베네치아-오스만 튀르크-인도 루트였는데, 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인도로 가게 되면서 포르투갈은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항해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실은 더욱 과감하게 대양 항해를 지원하게 되었다.
여덟째, 대서양 항해에 어느 정도 익숙했던 바이킹족이나 바스크족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10~11세기 바이킹족은 이미 그린란드와 뉴펀들랜드까지 가기도 했거니와, 바스크족들도 고기를 잡으러 더욱 서쪽으로 가면서 여러 작은 섬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 따라서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포르투갈 역시 아조레스 제도, 카나리아 제도, 마데이라 제도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또한 기독교가 1년 중 얼마 동안은 육식을 금했기 때문에, 그 대체제로 물고기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많은 어부가 대서양 서쪽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아홉째, 유능한 뱃사람을 많이 배출한 지중해와 인접해 있었다. 항해 왕자 엔히크가 사라고사에 항해 학교를 세웠을 때 가장 많이 초빙한 사람들이 바로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뱃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여러 이유가 합쳐져서 1498년 5월 20일, 포르투갈은 마침내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사건은 유럽의 비상과 아시아의 추락을 알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 인도는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여러 토후국으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에 적절한 대항을 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포르투갈은 강력한 화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만 튀르크나 인도의 이슬람 연합 세력을 물리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인도의 지배자들은 일차적으로 바다보다는 육지에서의 싸움에 더 골몰했기 때문에 각 항구에 상관을 설치해달라는 포르투갈의 제안을 들어주었다. 그것이 훗날 어떤 의미로 되돌아올지 모른 채 말이다.
어찌됐든 포르투갈로서는 이제 인도까지 직접 올 수 있게 되면서 훗날 대해양제국이 되는 초석을 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