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진 것 없는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남자였다.
남들과 똑같이 학교를 다녔고 남들과 비슷하게 군대에 다녀왔고 남들과 비슷하게 졸업을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이상하리만치 나에게 혹독했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지금껏 대략 이직만 20여 회 넘게 한 것 같다.
주변 지인들은 나에게 ‘이직의 귀재’, ‘사회생활은 너처럼!’ 이런 말들도 많이 했지만, 어떤 이들은 나에게 ‘사회 부적응자’, ‘트러블메이커’란 달갑지 않은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다.
그러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2023년 8월 또 한 번의 이직을 하게 되었다.
모 지자체에 있는 체육단체에 이직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생 때 내 전공을 살리는 거기도 하였고, 당시만 해도 나는 배부른 돼지보단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었고, 돈보다는 나의 꿈, 나의 자아실현에 더욱 컸기에 망설임 없이 지방행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내 삶도 녹록지는 않았다. 인수인계 때 봤던 재무관련된 부실함. 지역민들의 불신과 무관심, 그리고 지역 내 유지들의 자기들 밥그릇 싸움….
어느 것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함께 입사한 직원 J와 매일매일 살려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나에게 돌아온 건 정치적 보복과 노골적인 업무 배제였고 나는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내가 잘못했다고 말을 하고 책임지고 퇴사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얼마나 더 죽일 생각이었는지 퇴사를 말렸고, 난 그 분노를 이렇게 표현헀다.
“잘못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곳에 계시는 분들은 잘못하면 책임지시는 분이 없나 보죠? 전 잘못했다고 말했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질 뿐입니다. 나머지는 알아서들 하세요.”
그렇게 난 인수인계서를 모두 작성하고 인수인계를 마무리하고 회사를 나왔다.
그게 2024년 4월 1일이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의 첫날이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살아왔던 37년 동안 가장 잔인하고 힘들었던 4월이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내 친구가 나에게 추천했던 그곳에 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