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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 Jul 26. 2024

[미국 정착기 ep. 2] 처음만 힘들지

4월에 퇴사 전부터 나에게는 꾸준히 미국행을 권유했던 친구 A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붉은색으로 물들었던 2002년 나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A는 스페인전이 끝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 이후로도 나와 A는 꾸준히 교류했고, 대학생이 되어 내가 미국에 놀러 간 이후에도 꾸준히 내가 미국을 오가며 교류했다.


미국을 오가며 막연하게 미국이민을 생각했던 나에게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미국행을 제안했다.


“너 맨날 한국에서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 보기가 안쓰럽다. 그냥 미국으로 오는 거 어때?”


그래 친한 지인들이 보기에는 내 상황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났기에 충분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의 일은 나에게 있어 더 이상 한국에서의 내 삶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친구와 꾸준히 연락하며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있었다. 솔직히 미국행을 결정한 이유는 내 한국에서의 삶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는 금전적인 이유.

나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나에게 최선을 다해 키워주셨지만… 한계가 있었다.


나 역시 졸업하자마자 내가 갖고 있지도 않은 빚을 연좌제란 이유(과거엔 그랬었나 보다)로 내 모친의 빚을 갚아나가고 있었고, 2019년도에 돈을 벌어보겠다는 일념으로 들어간 L사에 들어가서는 내 개인적인 빚도 생기게 되었다. 빚을 갚기 위해서는 더욱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고, 한국에서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두 번째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삶에 지쳤다.

학창 시절 당시 사회적으로 유행하던 말 중에 ‘엄친아’란 말이 있었다. 실제로 못해도 1주에 한 번씩은 비교를 당했다.


대학 수험생 시기에는 수능 후에 누구는 어느 대학, 누구는 어떤 대학, 대학의 간판으로 비교를 당했다.


대학을 졸업해서는 사회적으로 비교를 당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남들이 비교하는 것도 모자라 나 스스로 내가 남들과 비교하며 살아가니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고, 이는 나에게 신체적인 질병으로 다가왔다.


세 번째 내가 편하고 싶었다.

이민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 난 어느 순간 친척들에게 나쁜 놈이 되어있었다. (복잡한 가정사) 내 편이라고는 내 부모님 두 분과 친구 A밖에 없었다.


내가 살고 내가 저지른 잘못을 돌이키기 위해서는 더더욱 이민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민을 결정하고 난 뒤, 정말 거짓말처럼 일들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막혔던 도로가 뻥 뚫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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