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

by 어둠의 극락

새벽부터 물 밖으로 나온 초아는 바닷가 바위틈에 숨겨둔 옷을 꺼내어 입었다. 물속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물건들은 그곳에 보관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아기였을 때 버려졌던 바로 그곳이었다.

“저 왔어요, 스님!”

단숨에 암자로 뛰어 올라간 초아는 문을 열어젖히며 외쳤다. 그런데 암자는 텅 비어 있었다.

“스님!”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아도 허월은 온데간데없었다. 다시 암자 안을 들여다보니 불단 위에 두어 번 접힌 종이가 놓여있었다. 펼쳐보니 허월이 쓴 편지였다.

성에 급한 볼일이 있어서 오늘은 만나기 어렵겠구나. 미안하게 되었다. 글자나 조금 익히다가 돌아가렴. 다음에 보자꾸나.

“치, 너무해.”

초아는 편지를 내려놓고는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따분한 글공부나 하라는 말에 갑작스레 피로가 몰려왔다. 그냥 산속이나 뛰어다니며 놀려다가 그것도 그다지 끌리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수년간 매일 오르내리던 산이라 이젠 모르는 곳이 없었다. 사실 갈수록 허월이 가르쳐주는 것들에도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허월은 초아가 인간 마을에 가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초아는 배울 만큼 배워서 인간들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다 되었다고 여겼으나 허월은 그렇지 않은 듯하였다. 인간의 세상을 보여주지 않는 허월이 점점 미워졌다. 모처럼 인어들이 그에게 주는 선물까지 받아온 참이었는데 전해주기가 싫어졌다.

가만히 누워서 시간을 보내던 초아는 몸을 일으켰다. 암벽이나 타다가 바다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암벽을 초아는 빠르게 올라갔다. 그것 또한 허월이 하지 못하게 하는 짓이었으나 그 재미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비탈길에서 마음 놓고 풀을 뜯던 산양은 갑작스러운 초아의 출현에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무얼 그리 놀라니? 히히.”

금세 정상에 다다른 초아는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정상의 풍경만큼은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산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의 행렬은 꼭 한 발 한 발 밟고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처럼 보였다. 발만 뻗으면 닿을 듯하였다. 불현듯 어떤 생각이 초아의 머릿속을 스쳤고, 그의 얼굴에 살며시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허월이 알면 틀림없이 불호령이 떨어질 일이었다. 하지만 허월은 지금 오대산에 없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초아는 정상에서 뛰어내리다시피 산길을 따라 달려 내려갔다.

원숭이처럼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던 초아는 먼지를 일으키며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 눈앞에 있었다. 허월이 가끔 방문하는 월정사였다. 막상 도착하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동안 위치는 대강 알고 있었으나 멀찍이서 구경만 하던 장소였다.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진 않을까 두려웠으나 호기심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초아는 주위를 살피며 살며시 문이 활짝 열린 대웅전으로 다가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장 먼저 초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불단 위에 모셔진 커다란 금빛 불상이었다. 허월의 암자에 모셔진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불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고 화려하였다. 초아는 불상에 넋을 빼앗겨 신도 벗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불단 앞에서 한참 불상을 올려다보던 초아는 급기야 불단을 딛고 올라가 불상을 두드려 보고 손으로 문지르며 만져도 보았다. 차갑고 매끄러운 촉감이 어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번쩍거리는 모습을 보고 햇살처럼 따뜻하리라 기대한 탓이었다. 흥미를 잃은 초아는 불상의 코를 만져보고는 불단에서 뛰어내렸다.

“어!”

초아는 가슴이 내려앉는 줄만 알았다. 소리도 없이 언제 왔는지 동자승 하나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도 초아를 보고 놀랐는지 조그만 입이 떡 벌어져 있었다. 초아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그 와중에도 생전 처음 보는 작고 어린 인간이 신기하였다.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초아는 먼저 용기를 내어 동자승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어…… 안녕?”

그러자 동자승은 황급히 뒷걸음질 치더니 돌아서서 달아나 버렸다. 무안해진 초아는 서둘러 대웅전을 뛰쳐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달렸다. 날다시피 내달린 초아는 금세 일주문에 이르렀다. 절을 좀 더 구경하고 싶었으나 동자승이 다른 승려들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초아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주문을 지나 산길을 따라 달렸다.

미처 방향을 확인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달리던 초아는 어느덧 산기슭까지 내려와 있었다. 늘 다니던 바다로 향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언제나 위에서 내려다만 보던 그곳에 직접 온 것이었다. 바닷가와는 달리 잘 닦인 길이 이어지는 곳에 인간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다. 초아는 또 가슴이 마구 뛰었다. 몇 걸음만 더 나아가면 인간의 세상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마주치면 뭐라 말하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게다가 세리와 허월의 화난 얼굴들이 그려졌다. 그렇다고 돌아가기는 싫었다. 문턱까지 와서 그대로 돌아설 수는 없었다. 두 번 다시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초아는 마음을 정하였다. 혼나는 것은 어차피 나중의 일이니 당장은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설령 인간들이 그를 반기지 않더라도 재빨리 산을 넘어 바다로 도망치면 될 일이었다.

바글바글할 거란 기대와는 달리 마을은 한적하였다. 초아는 인간들이 낮에 모두 논밭에 일하러 나간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다. 그는 빈집들을 기웃거리며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았다. 민가의 살림살이는 허월의 암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을 중앙에 이르자 왁자지껄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어린아이 여럿이 어울려 나무를 타고 막대기를 휘두르며 놀고 있었다.

꼬옥- 꼭꼭-

반가운 마음에 아이들에게 다가가려던 초아는 근처의 집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리자 그리로 걸음을 돌렸다. 마당 안에서 닭들이 모래를 쪼고 있었다. 산에서 새를 수없이 보았어도 닭은 처음 보았던 초아는 담장에 기대어 닭을 구경하였다. 빨갛고 삐죽삐죽한 벼슬이 달린 닭은 참으로 신기한 생김새였다. 나는 모습을 보려고 닭들이 놀라도록 팔을 이리저리 휘저어 보았으나 날개를 퍼덕이며 뛰어오르기만 할 뿐 날지는 않았다. 초아는 날지 못하는 새가 있다는 사실도 오늘에야 알았다. 닭이 움직일 때마다 벼슬이 달랑거리며 시선을 사로잡자 만져보고 싶은 유혹을 견디지 못한 초아는 결국 담장을 넘고 말았다. 놀란 닭들이 울부짖으며 이리저리 달아났다. 초아는 재빨리 닭 한 마리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격렬한 닭의 날갯짓에 모래와 깃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뉘시오?”

마당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쉰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집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초아는 당황하여 닭을 잡은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웬 놈이야? 우리 닭을 훔치려고?”

노인은 초아를 향하여 윽박질렀다. 초아는 어쩔 줄 몰라서 입도 떼지 못하다가 이내 닭을 내려놓고 담장을 뛰어넘어 달아났다.

“거기 서라, 이 도둑놈! 거기 서!”

노인이 소리를 지르며 지팡이를 집어 들고 초아를 뒤쫓으려 하였으나 초아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아니, 무슨 걸음이 저리 빠르담? 설마 도깨비인가?”

노인은 발을 문지방에 걸친 채 씩씩거렸다.

마을 반대편으로 무작정 달리던 초아는 마을에서 멀어지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 산과 들 뿐인 비슷한 풍경이었다. 살다시피 하던 오대산과도 구별이 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도둑으로 오해까지 받았으니 왔던 길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꼼짝없이 길을 잃은 초아는 슬슬 겁이 났다.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불안감에 손이 떨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오도 가도 못하고 한참을 제자리에서만 맴돌던 초아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초아는 얼른 그 소리에 집중하였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여러 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초아는 노랫소리를 따라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농기구를 짊어지고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밭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허월 외에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던 초아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용기를 쥐어 짜내었다.

“저……”

초아가 다가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초아는 엄청난 부담감에 짓눌려 목이 막혔다.

“무슨 일이오?”

초아는 마음처럼 말이 나오지 않아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말을 하시오. 왜 그러오?”

우물쭈물하는 초아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손가락을 배배 꼬던 초아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었다.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는 사람들이 그냥 가버릴 것 같았다.

“저…… 성, 성이 어디입니까?”

바다로 가는 길을 물어보려던 초아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성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순간 허월이 종종 왕래하는 명주성이 떠오른 탓이었다.

“성 말이오? 이 길을 따라서 죽 가면 명주성이 있소만.”

“아, 예…….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초아를 쳐다보다가 다시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초아는 뒤늦게 말실수를 깨달았으나 다시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왜 머릿속에 성이 떠올랐는지는 몰랐으나 이제 갈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초아는 명주성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어차피 늘 궁금하던 곳이었고, 혼이 나더라도 집에 돌아가려면 허월을 찾아야만 하였다.

혹시라도 길을 잘못 들까 노심초사하며 초아는 명주성에 도착하였다. 깊은 해자 너머에 돌로 쌓은 높은 성벽이 커다란 성문을 중심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성문 위에는 허월의 암자만 한 누각이 세워져 있었고, 성곽 위에 작은 집처럼 생긴 성랑이 줄지어 있었다. 성문 앞에는 무장한 군사들이 배치되어 성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초아는 태어나서 그런 것은 처음 보았다. 성을 구경하는 내내 입이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가까워지면서 초아는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날카로운 병장기와 성벽처럼 거칠고 단단한 갑주를 가까이서 보니 왠지 모르게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 때처럼 초아는 또다시 더 나아가기를 망설였다.

“무슨 용무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성문 앞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초아를 보고 군관이 물었다. 군인이 먼저 말을 걸자 초아는 화들짝 놀랐다.

“예? 아, 저……”

“성에 무슨 일로 왔소?”

“저, 그……”

“말을 하시오. 무엇 때문에 그러시오?”

군관의 추궁에 초아는 오히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꼭 쑥스러워하는 어린아이처럼 어리숙한 초아의 모습에 군관은 답답해졌다.

“왜 말을 못 하는 거요? 무슨 용무냐고 물었잖소. 보아하니 처음 보는 얼굴인데, 성에 무슨 볼일 있소?”

그래도 초아가 입을 떼지 못하자 군관이 한숨을 쉬었다.

“거참 답답한 사람이네. 어디서 왔소? 그것부터 말해 보시오. 성에 그냥 들여보내 줄 수는 없소. 어디서 오는 길이오?”

“저…… 오대산…….”

“오대산? 오대산 어디서 왔단 말이오? 산속에서 왔단 말이오?”

순간 초아는 자신이 들렀다 온 월정사를 떠올렸다.

“워, 월정사에서 왔습니다.”

“월정사? 스님은 아니신 듯한데……. 아, 거기서 심부름하는 사람이오?”

“예, 예……. 허월 스님을 뵈려고요.”

“허월 스님? 그분께 전해드릴 말이라도 있소?”

“예.”

“그렇게 얘기를 하면 될 일을, 쯧쯧……. 알겠소. 들어가시오. 허월 스님께서는 아마 성주님 댁이나 관아에 계실 거요. 들어가서 가장 큰 집을 찾으시오. 못 찾겠으면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고맙습니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초아는 마침내 성문을 통과하였다.

성안의 풍경은 초아가 지나온 마을이 초라할 정도였다. 마을 여러 개를 합쳐 놓은 듯 집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고, 성 밖 마을에서는 보지 못한 기와집들도 있었다. 거리는 어른과 아이, 가축이 한데 섞여 매우 혼잡하였다. 장터에서는 가게에 진열된 각종 물건을 사람들이 옷감이나 쌀로 바꾸고 있었다. 값을 흥정하며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과 간식거리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초아는 그 모든 광경이 신기하여 정신없이 구경하였다.

주점을 지나다가 음식 냄새를 맡은 초아는 허기가 밀려왔다. 육지로 올라와서 여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배가 요동치며 가슴께까지 울렸다. 초아는 냄새에 이끌려 홀린 듯이 주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이 달려와 초아를 환영하였다.

“저, 그, 밥 좀…… 주세요.”

“예, 예. 빈자리에 앉으시지요.”

초아는 비어 있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

“값은 무엇으로 내시렵니까?”

“어…… 쌀은 없는데…….”

“그럼 다른 것으로 내시겠어요? 옷감? 소금?”

초아는 머뭇거리다가 허리띠를 풀고 윗옷을 벗으려 하였다. 당황한 주점 주인은 그를 제지하였다.

“아니, 아니! 지금 무얼 하시는 게요? 내가 언제 입던 옷을 달라고 하였소?”

“이것밖에 없는데…….”

“뭐요? 나 참,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빈손으로 와서 밥을 달라고 한 거요? 맞바꿀 물건이 없으면 줄 수가 없소. 나가보시오!”

빈손은 아니었다. 허월에게 줄 선물이 있었으나 그것을 음식과 바꿀 수는 없었다. 초아는 하는 수 없이 주점에서 나왔다.

초아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군관이 말한 가장 큰 집을 찾아 거리를 헤매었다. 배는 음식을 들이라고 더욱 아우성을 쳤으나 별수가 없었다. 점차 속이 쓰리고 어지러울 지경에 이르렀다. 걸음이 점점 느려지던 초아의 눈에 먹구름을 뚫고 내리쬔 한 줄기 빛처럼 들어온 것이 있었다. 푸른 작물로 가득한 넓은 논이었다. 어차피 먹을 수 없어서 초아는 그냥 지나쳤다. 논을 지나니 먹음직스러운 과실이 열린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초아는 남은 힘을 쥐어짜서 나무로 다가갔다. 산에서도 보았던 자두가 나무에 한가득 달려있었다. 달콤한 향기가 단번에 배고픈 초아를 매료시켰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초아는 손을 뻗어 잡히는 대로 자두를 따서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새콤달콤한 과즙과 부드러운 과육이 입안을 가득 채우자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순식간에 자두 한 알을 다 먹어 치운 초아는 또 하나를 입에 쑤셔 넣었다.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이게 무슨 짓이냐!”

등 뒤에서 들려온 고함에 초아는 깜짝 놀라 사레가 들렸다. 갑옷을 입고 칼을 찬 장수 둘이 군사들을 거느린 채 험악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디서 굴러들어 온 놈이냐?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함부로 들어오느냐!”

초아는 연달아 나오는 기침 탓에 윽박지르는 장수에게 뭐라 변명할 수가 없었다.

“어서 붙잡아라! 관아로 데려가서 혼쭐을 내어주어야겠다.”

초아는 영문도 모른 채 군사들에게 붙들려 끌려갔다. 그 와중에도 하나 남은 자두는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한참 찾아 헤매던 관아에 도착한 초아는 마당에 꿇어앉혀졌다. 초아에게 고함을 치던 장수는 가장 큰 전각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장수와 군사들은 초아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곁을 에워쌌다. 문이 열리고 평복 차림의 사내가 장수와 함께 나오더니 초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도로 안으로 들어갔고, 장수는 마당으로 나왔다. 초아는 자신이 얼마나 곤란한 상황에 놓였는지도 모르고 그저 커다란 기와집과 넓은 마당이 신기하여 두리번거리다가 손에 쥐고 있던 자두를 마저 먹었다. 계속 들고만 있다가는 빼앗길 것 같았다.

“이 와중에 그게 입에 들어가나? 참 나……”

장수와 군사들은 하나같이 기가 차서 초아를 내려다보았다.

초아를 끌고 온 장수에게 소식을 접한 유봉이 순식의 집무실로 찾아왔다.

“주공, 유봉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오게.”

집무실에서는 순식이 부하들과 함께 지도를 보며 무언가를 논의하는 중이었다. 허월도 참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귀평과 장일이 도둑을 잡았습니다.”

“도둑? 어디서?”

“군량미를 생산하는 논 근처에서 주공께서 아끼시는 오얏나무의 열매를 훔쳐먹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붙잡아 지금 막 관아로 끌고 왔습니다.”

“어떤 자던가?”

허월이 물었다.

“머리와 옷이 다 깔끔하니 걸인은 아닌 듯합니다. 바지를 입고 있어서 얼핏 사내인 줄 알았으나 계집이더군요. 나이는 어려 보였습니다.”

“쯧쯧, 어린 것이 뭣도 모르고 그런 게지. 그저 따끔하게 훈계나 하고 보내주는 게 어떠하냐?”

“그리하겠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하게.”

“그래도……”

“괜찮으니 그리하게. 겨우 과일 몇 알이 아닌가.”

“예, 주공.”

“아, 잠깐.”

순식은 돌아서서 나가려던 유봉을 다시 불러세웠다.

“뭐 다른 특이한 점은 없던가?”

“특이한 점이라면…… 귀평이 말하길 벙어리인지 뭘 물어도 아무 대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몸에서 비린내를 풍겼습니다.”

“비린내? 고기를 잡는 아이인가?”

“성에 드나드는 어부들보다도 냄새가 심하여 조금 이상합니다. 마치 바닷물에 한참을 잠겨있다가 나온 듯하였습니다.”

허월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의 묘사를 듣자 단번에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허월은 주춤거리며 일어서서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닐 거라 믿으면서도 몸은 관아에 끌려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려 서두르고 있었다. 마당으로 나가는 짧은 시간 동안 허월은 그의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결과가 너무도 두려워 심장이 터질 듯하였다. 허월은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스님 나오셨습니까.”

귀평과 장일이 허월에게 인사를 올렸으나 허월은 그를 받아줄 정신이 없었다. 그가 우려하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토록 가르치고 주의를 주었는데도 초아가 명주성 한가운데에, 그것도 관아에 와 있었다.

“스님!”

초아는 눈치 없이 해맑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허월은 머릿속이 하얘져서는 그대로 굳어 있었다. 너무도 놀라고 당혹스러워 화가 나기는커녕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왜 그러십니까?”

뒤따라 나온 순식이 물어도 허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술과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스님. 조금만 둘러보다가 돌아가려고 했는데 길을 잃었어요.”

“스님, 이 아이를 아십니까?”

유봉의 물음이 허월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 일제히 허월을 바라보았다.

“대체, 대체 어떻게……”

허월은 떨리는 다리로 비틀거리며 초아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여기서…… 왜?”

“죄송해요.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집에 가고 싶어요. 데려다주세요.”

허월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초아의 손을 꼭 쥐었다. 놀란 데다 혼란스러워서 어지러웠다.

“어서 가자…….”

허월이 초아를 데리고 대문으로 향하자 순식이 쫓아왔다.

“아버지, 어디 가십니까? 그 아이는 누구입니까? 아버지!”

순식이 재차 불러도 허월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물음에 답을 해줄 경황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초아를 성에서 데리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바닷가로 향하는 내내 허월은 말이 없었다. 거듭 용서를 빌어도 아무 반응이 없으니 초아는 몹시 두려웠다. 화를 내지도, 자신을 혼내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걷고만 있었기에 허월의 심중을 알 길이 없었다. 무겁고 냉랭한 분위기 탓에 차마 선물을 전해주기도 어려웠다. 차라리 호되게 혼이 나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해가 붉은 흔적을 남기며 사라져 갈 무렵에야 허월과 초아는 바닷가에 도착하였다. 바다에 다 와서도 초아는 허월의 눈치를 살피며 집에 돌아가기를 망설였다. 허월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서서히 어둠에 잠기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아는 허월이 너무 화가 나서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허월은 초아에게 화가 난 것도, 실망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고뇌에 빠져있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났는지 돌이켜 보고 있었다.

“음? 아직 있었느냐? 어서 집에 가거라. 어미가 기다리겠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허월은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던 초아를 발견하고 그를 돌려보내었다.

“……네, 스님. 안녕히 계세요.”

갈팡질팡하던 초아는 그제야 머뭇거리며 바다로 향하였다.

“아! 스님. 할머니랑 엄마가 이거 드리래요.”

초아는 돌아서서 선물을 꺼내어 허월에게 건네주고는 파도를 헤치며 바다로 들어갔다. 인어들의 선물을 받아 든 허월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먹만 한 진주였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크기였다. 하얗고 매끄러운 데다 연한 보랏빛이 감도는 틀림없는 진주였다. 허월은 진주를 품속에 넣고 서둘러 성으로 돌아갔다.

뜻밖의 선물이 잠시나마 머리를 짓누르던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나 반드시 결론을 내야 할 문제였다. 오늘과 같은 일이 생길까 두려워 그동안 초아를 오대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고, 그것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게 분명하였다. 허월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었다. 자칫 초아에게 드넓은 세상을 다 보여주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전히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할 초아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었다. 이미 그를 책임지기로 마음먹은 이상 방법을 찾아야만 하였다. 초아는 오래전 구하지 못한 두 사람의 목숨 대신이었다.


<용어 해석>

성랑 : 성곽 위에 세운 다락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