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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 Jul 26. 2024

이제야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하여, <애프터 썬>



  어렸던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마법소녀로 변신하는 것처럼 신비하고 궁금한 것이었다. 어서 성인이 되고 싶었고, 어느 정도 컸을 무렵에는 어른이 되는 것보다는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더 탐이 나곤 했었다. 동시에 진짜 어른처럼 보이는 나의 부모님은 왜인지 어른이라기보다는 어른보다 더 위에 있는 그 무언가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 부모님은 나에게 지나가듯 겪었던 과거 이야기를 하시곤 했었다. 그 이야기들의 고난은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무엇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닿지 않았고 심드렁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수많은 일들을 겪고 난 지금, 이제야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애프터 썬>은 주인공 소피가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갔던 여행 비디오를 보며 과거를 회상한다는 단순한 내용을 갖고 있다. 단순한 이 내용은 이상하게도 불안한 구도와, 앵글, 배우들의 연기, 행동들과 섞여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치 무엇이라도 당장 일어날 것만 같은데, 컷이 바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울해하던 캘럼이 한밤중 바다에 뛰어들 때도, 밤늦게 돌아다니던 소피가 방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할 때도, 스킨스쿠버 자격증이 있다고 거짓말한 캘럼이 들어간 바다를 불안하게 비출 때도 마찬가지다.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수많은 장면들은 한없이 불안하지만 그게 다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오늘의 해가 지면 내일의 해가 뜬다’는 말처럼 소피와 캘럼은 그럼에도 살아가고, 나이를 먹어간다.


  영화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어린 소피의 시선, 두 번째는 캘럼, 세 번째는 (아마도 캘럼과 같은 나이일)어른이 된 소피의 시선이다. 관객들은 캘럼이 사는 ‘어른의 고통이 있는 삶’과 어린 소피가 사는 ‘어린이의 삶’,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어른이 된 소피가 사는, 캘럼과 유사한 ‘어른의 고통이 있는 삶’이 세 가지를 전부 보게 된다. 그럼으로써 관객들은 유년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마치 어린이가 되어 자신의 부모님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대변하듯 보이는 것이 어른이 된 소피인데, 이 어른이 된 소피는 영화 내에서 몇 번 등장하지 않는다. 실루엣이나 조명이 번쩍거리는 곳에서 잠깐, 그리고 영화의 끝자락에서 아기를 키우는 모습으로 완전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난 소피의 표정은 마치 캘럼처럼 보인다. 어딘가 찌들은 듯한,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 어른이 된 소피가 있는 공간도 마찬가지로 캘럼이 영화 내에서 혼자 있을 때(혹은 혼자 프레임에 존재할 때)표현되었던 잿빛 조명이며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는 ‘어른의 삶인 공간’이다.


  영화에서는 어른이 되어야만 겪는, 혹은 트라우마를 표현하는 공간이 존재하는데, 언뜻 보면 클럽이나 파티장 같은 번쩍거리는 조명과 어두운 공간이 그것이다. 캘럼은 그곳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캘럼은 괴로워한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캘럼은 그 어두운 고통의 공간에서 몸부림친다. 영화의 초반부에 어른이 된 소피 역시 그 어두운 고통의 공간에 서 있다. 소피는 정면을 응시한다. 그 시선의 끝에는 몸부림치는 캘럼이 존재할 것이다. 소피가 그 공간에 들어왔다는 것은, 캘럼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과 동시에 그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암시한다.


  어린 소피의 시선에서 이 여행은 분명 행복한 여행이지만 의문투성이다. 왜 아빠는 이혼한 사이인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하는지, 성인의 사랑은 어떤 것인지, 왜 더 이상 아빠가 자신과 노래를 부르지 않는지, 왜 아빠가 가끔 불행한 표정을 짓는지. 그러나 소피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소피는 그 나이 애처럼 궁금해하고, 쭈뼛거리며 다가가고, 가끔은 묻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소피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어른이다. 정확히는 어른의 무언가. 예를 들면 술이나 키스 같은. 어른이 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 것 같은 간질간질한 무언가. 소피는 어른의 사랑에 대한 책을 몰래 읽는다거나 여행 중에서 마주치는 젊은 여자와 남자들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자신의 아버지인 캘럼도 포함된다. 자신의 아버지이지만, 동시에 성인 남자인 캘럼. 그 둘 사이에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연상시키는 어딘가 묘한 장면들도 종종 등장한다. 이것은 소피가 어린이와 어른의 그 중간 어디쯤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소피는 11살 같지 않은 말도 한다. 부모님의 이혼 속에서 일찍 커버렸을 소피는 그래서 더 어른을 꿈꾼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인 세상에서 소피는 캘럼의 아래서 자라간다. 그럼에도 소피는 아직 노란색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이니까.


  캘럼의 시선에서 본다면, 고통스러운 삶을 숨기면서 소피와 함께하는 즐겁지만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여행일 것이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컷은 팔의 붕대를 제거하기 위해 화장실에 앉은 캘럼과 책을 읽고 있는 소피를 보여주는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둘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붕대를 제거하는 캘럼은 회색빛의 화장실에서 고통스러워하지만, 소피는 따뜻한 노란 조명 아래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다.

  

  캘럼과 소피를 정면에서 같이 보여주는 장면은, 어쩔 수 없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를 보여줌과 동시에 캘럼이 소피에게 이러한 모습을 감추려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통에 얼굴을 찌뿌리면서도, 소피가 하는 말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모습들은 어렸을 때 우리가 보지 못했을 부모님의 고통이 있었을 수많은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캘럼의 어두운 삶 속에서도, 밝은 때가 있다. 어린 소피와 함께할 때다. 소피와 함께 누워 햇빛을 맞을 때. 찰나의 순간만일지라도.


  영화의 마지막, 캘럼과 같은 어른이 된 소피가 비디오를 전부 보고 나서 행복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의 고통들을 속으로 삼켜내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에게 전부 말해도 된다는 캘럼의 그 단단한 말이 소피를 살아가게 할 것이며 소피의 아이를 키우게 할 것이라고. 그리고 아마도 어른이 된 소피는 아이를 키우면서 과거의 자신의 아버지가 완전히 이해됐을 것이다. 과거의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이해되는 순간, 다시 그 비디오를 재생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재생된 영상에는 자신이 겪어온 그 모든 위태로운 순간을 겪었을 캘럼이 서 있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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