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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 Jul 26. 2024

꼭꼭 씹어 삼키세요, 솔직하게 <더 웨일>


  

  솔직해진다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모든 것을 마주 보고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리라.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추악한 무언가를 억지로 꺼내서 밝은 햇빛 아래 드러내는 일은 어지간한 용기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주인공 찰리는 학생들에게 이토록 어려운 ‘솔직하게 글 쓸 것’을 가르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욕까지 써가며 제발 솔직하게 쓰라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세 번의 온라인 에세이 수업에서, 매번 강조했던 솔직함이라는 것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찰리 자신이다. 찰리는 자신의 고래 같은 몸을 숨기려 온라인 수업을 받는 학생들에게 카메라가 고장 났다는 거짓말을 하고, 돈이 있음에도 자신을 돌봐주는 친구에게 돈이 없다며 죽기 직전임에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 심지어는 과거 자신의 남자 제자와 불륜까지 저지르고 8살 난 딸과 아내를 버린 남자다.


  객관적으로 찰리의 인생과 현재의 찰리를 보았을 때, ‘역겹다’는 말이 잘 어울릴 뿐 솔직함 같은 것은 찰리에게 사치다. 그럼에도 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창문 밖의 새를 위해 음식을 늘 준비해 두는 사람이고 자신의 남자친구를 죽게 한 종교단체의 선교사가 찾아와도 욕 한번 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자신을 돌보아주는 친구에게 진실된 눈으로 고마워하며 미안해하는 사람이고 딸에게 돈을 주기 위해 병원조차 가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찰리가 저지른 잘못에 비하면 하잘것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찰리에게 변명의 여지는 있다. 찰리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솔직하지 못했으니까. 찰리의 집에 찾아온 토마스는, 새생명교회의 선교사가 아닌 선교사 일을 하며 마리화나를 하고 돈을 훔쳐 도망친 남자일 뿐이다. 메리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나쁜 엄마라고 여길까 두려웠던 메리는 엘리가 잘 지내고 있다고 거짓말하며 엘리를 찰리와 만나지 못하게 했다. 엘리도, 리즈도 그랬다. 모두가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없는 척 하며 서로를 상처줄 뿐이었다. 솔직함 없이는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는다.


  토마스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엘리가 마리화나를 하는 토마스의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냈기 때문이었고 엘리가 찰리를 용서하듯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찰리의 솔직한 자기고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추한 사실들을 전부 인정하고 ‘그래,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했을 때야말로 멈춰있던 모든 것은 움직인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머릿속에서 상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대로 고여있을 뿐이다. 어두컴컴한 머릿속에서 아무리 외치고 단정지어도, 결국엔 내 두 발로 밖을 나서야지만 흘러간다. 찰리의 집 안은 고요했지만 집 밖은 늘 비가 오고 천둥이 치거나 흐렸다. 영화의 마지막, 집 밖에 눈부신 해가 떴을 때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제 스스로 걸음을 떼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역겹다고 할 찰리의 삶에 내가 이토록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솔직하기 못했지만 솔직하려 했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긍정적인 면만 보려 했던 찰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엉망인 엘리의 삶이 사실은 아름답고 완벽하다는 것을 알아줬던 찰리처럼. 찰리가 주기도문처럼 외웠던 엘리의 <모비딕>에세이는 찰리가 말하듯 엘리 그 자체였고 솔직하게 썼기 때문이듯 나는 가식 대신 솔직함이 빛난다는 이 영화의 믿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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