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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Jul 26. 2024

정의의 배심원

프롤로그

흔히 말하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계란과 바위가 부딪히면 백이면 백 계란이 깨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위가 부서지기를 바랄 때가 있다.

돈과 권력이 전부라는 현실에서 정의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과연 이 세상에 정의는 있는 것일까?     


거짓이 누명을 씌워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만들었다. 

거짓은 완벽하게 진실이 되었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이래야 그나마 세상은 공평하지 않을까?   


우리 누나는 간호사였다. 하루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환자들은 죽을 때가 되면 좀 다르게 살았을 걸 하고 뉘우치지.

또 잘못한 일을 바로잡고 싶어 해.” 그리고 덧붙였다.

“비록 과거를 돌이킬 순 없어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라고.     


이글에서는 욕망을 향한 인물들의 질주를 보여준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덕적 경계를 벗어날 때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피해자가 겪는 

고통이 언제든 가해자에게 돌아간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재벌 후계자가 교통사고 사망 사건을 일으켰다. 그리고 친구에게 

누명을 씌웠다. 특권층의 비호 세력이 사실을 덮으려 공권력과 결탁했다. 

이어 증거를 조작하고 증인과 배심원을 매수하여 거짓을 진실로 만들었다. 

그 결과 무죄인 사람이 유죄가 되었다. 

물론 이런 비극은 과거에도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이 허위를 하나씩 부수고 싶었다. 아니, 기어이 정의가 

이겨야 했다. 그래야만 누나가 말했던 메시지를 이 사회에 조금이라고 

전할 수 있어서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이승이 아니면 저승에서라도 억울한 

사람들이 그나마 위로받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선을 베풀기는 

어려워도 악을 행하기는 쉽다. 그런데 심판이 없다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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