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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Jul 26. 2024

정의의 배심원

죄책감-1

연우는 자신하던 도원그룹 입사 시험에 떨어져 취준생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낙방에 자존심이 상한 그는 재도전을 결심했다. 독립은커녕 부모님께 경제적 도움을 받는 처지였다. 

 그날도 연우는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벽면에 ‘도원 합격까지 나의 하루하루는 죽었다’는 결의에 찬 표어가 붙었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 웬일이세요?”

 “공부하느라 힘들지? 오늘 생활비하고 네가 좋아하는 옥수수 보냈단다.” 

 “고마워요. 아버지는요?”

 “비닐하우스에 가셨어.”

 “평생 공직에 계셨던 분이 일은 힘들지 않데요?”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 조만간 도희랑 집에 내려오렴.”

 “네. 비록 작년에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장원급제해서 금의환향할 테니 미리 돼지 잡아 놓으세요.”

 “우리 연우, 허풍 떠는 건 여전하구나. 그래도 건강은 꼭 챙기거라.” 

 “그럴게요.”

 “등기요!”

 전화를 끊자마자 집배원의 음성이 울렸다.

 건네받은 등기 봉투에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안내서’라고 쓰여 있었다. 내용물을 훑어보는 그의 얼굴에 희비가 엇갈렸다.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면 과태료가 200만 원 이하라고? 또 배심원으로 선정되면 하루 여비가 12만 원에, 탈락해도 6만 원을 준다는 거네. 일당치고 꽤 짭짤한데?” 

 연우는 매스컴에서 국민참여재판을 들었지만,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겼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그 용어를 쳤다. 그것과 관련된 블로그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우리나라에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이 열렸구나. 만 20세 이상 국민 중에서 무작위로 배심원을 선정하고 형사재판에 출석해서….”

 그는 참석하기로 했다. 사실 불출석할 명분이 딱히 없고 이 재판에 호기심이 발동해서다. 

 그런데 질문서를 작성하던 연우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설, 상, 태.’

 피고인의 이름이 왠지 낯설지 않다.

 그는 친구들과 통화를 마친 후 중얼거렸다.

 “하긴, 상태와 만나는 얘가 있을 리 없지.”

 그때 휴대폰이 울리자, 연우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지금 재판받는 피고인이, 우리 동창 그 설사똥이 맞다고!”

 그는 여러 친구를 거쳐 가까스로 상태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두 사람의 거주지 관할 법원이 같아서 연우에게 등기가 온 것이다.

 “요즘 원수는 맛집에서 만난다고 했는데 이제 와 보게 되다니…. 이게 인연인지 악연인지 모르겠네.”

 사실 그는 아픈 기억을 넘어서 상태에게 씻지 못할 마음의 빚이 있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가로 갔다. 건너편으로 중학교 전경이 펼쳐졌다. 운동장 곳곳의 은사시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나부끼며 은빛을 발산했다. 

 어느 교실에서 장난치는 학생들의 모습과 과거의 악몽이 오버랩 되었다. 

 그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벌어진 사건이었다.      

 

 쉬는 시간에 3-2반 교실은 떠들썩했다. 이때 한 친구가 발칵 문을 열며 소리쳤다. 

 “히틀러가 소지품 검사를 한대!”

 모두는 후다닥 자리로 돌아가느라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 순간 연우는 불안한 눈빛으로 자기 가방을 주시했다. 마침 옆자리 상태는 입실하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살피며 슬쩍 상태의 가방에 술병과 담뱃갑을 옮겨 넣었다. 이어 콩닥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어제 일을 떠올렸다. 


 집에서 자신의 생일파티를 열었다. 부모님은 여행을 떠나 없었다. 케이크 촛불을 껐고 친구들이 축하와 함께 선물을 건넸다. 흥겨운 분위기였다. 그때 영필이가 가방에서 술과 담배를 꺼내 연우에게 권했다. 그는 사양했으나 친구들은 자연스레 피고 마시는 것이 아닌가!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이게 최고야!”

 “연우야, 넌 어른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안 그러냐?”

 “맞아! 

 “그래!”

 “아냐. 나도 할 수 있어!”

 친구들의 놀림에 그는 불현듯 객기가 솟구쳤다. 담배 연기에 캑캑거리며 술기운에 몽롱했지만 어른이 된 듯 기분이 좋았다. 그 후로 필름이 끊어졌다. 

 

 늦잠으로 연우는 탁자 위의 술병과 담뱃갑을 가방에 쓸어 담고 학교로 내달렸다. 정문을 쏜살같이 통과하고는 지각을 면한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찰나 가방 속의 물건이 번쩍 떠올랐다.

 “오다가 버리려는 걸 깜빡했네. 이걸 어쩌나….”

 만일 이것이 발각된다면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혀 반장인 연우로서는 치명적이다. 당시 상태는 늘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미미한 존재였다. 게다가 성적도 바닥이라 친구들은 왕따를 시켰으나 마음 여린 그는 순응하며 지냈다. 

 드디어 소지품 검사가 시작되고, 상태의 가방에서 술병과 담뱃갑이 나왔다. 

 “이 자식, 공부도 못하는 놈이 술, 담배까지 해!” 

 “인마, 교복 좀 빨아 입어라. 홀아비 자식 티 내냐?” 

 악명이 높아 ‘히틀러’로 불리던 학생부장과 담임은 번갈아 상태의 귀싸대기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정말 몰라요.”

 부인하는 그의 말은 변명으로 간주 되어 매를 더 벌었다. 

 “와! 설사똥 대단한데?” 

 “저거 엉큼한 놈이네.”

 친구들의 조롱 속에 연우는 애써 외면하며 시치미를 뗐다. 다음 날 교무실에 허름한 복장의 상태 아버지가 담임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이후로 친구들 사이에 이런 소문이 퍼졌다. 

 “상태 아버지가 절름발이래.”

 “별명이 하나 또 생겼다며? 설내숭이래.”

 이 사건은 10일 정학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그 기간이 지나서도 상태는 등교하지 않았고, 결국 퇴학 처분이 내려졌다. 연우는 죄책감에 괴로웠으나 사실을 밝힐 용기가 없었고 진실은 끝내 묻혀버렸다. 이 사건은 파란을 일으켰지만, 차츰 잊혀 갔다. 단, 연우만 빼고는.

 그가 고3일 때, 여동생의 손을 잡은 상태와 길에서 마주쳤다. 그는 기름때로 얼룩진 작업복에 머리는 장발이었다.

 “어, 연우구나. 반가워!”

 상태는 아는 체를 했으나 그는 지난날의 죄의식으로 못 들은 척 지나쳤다. 그런 후 상태에게 두 번이나 상처를 준 것에 후회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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