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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Jul 26. 2024

정의의 배심원

죄채감-2

 연우는 이 재판에서 어떡해서든 그를 도와야만 마음의 빚을 갚는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상아였다. 두 사람은 커피숍에서 만났다. 10여 년 전의 여중생은 어느덧 아름다운 숙녀로 변했다. 특히 웃을 때 살포시 패이는 보조개가 매력이었다.

 “연락받고 깜짝 놀랐어요. 상태 오빠와 중학교 동창였다고요?” 

 “네.”

 “그런데 처음 뵙는 거 같아요. 하기야 우리 오빠는 친구가 별로 없지요.”

 “저는 옛날에 그쪽을 한번 본 적이 있어요.” 

 “언제요?”

 “제가 고등학생 때요.”

 그녀는 기억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친구이니 말 놓으세요. 저는 설 상아에요. 지금부터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그, 그래. 난 최연우야.”

 “근데 연우 오빠는 어떻게 저의 오빠 사건을 알았어요? 학교 다닐 때 친했나 봐요?”

 “친, 친구를 통해서. 그, 그런 편이지.” 

 뜨끔한 그는 말을 더듬거렸다. 

 “상태는 어찌 된 거야?”

 “오빠 친구 중에 도진 오빠가 있어요. 그 오빠가 석 달 전쯤 우리 오빠에게 대리운전을 시켰지요. 근데 교통사고가 난 거예요.”

 “그래서?”

 “상대방 운전자와 임신한 부인이 숨졌어요. 하지만 오빠는 사고 전에 분명히 도진 오빠와 운전을 교대했다는 거예요.” 

 “목격자는 없어?”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과 경찰은 오빠가 운전했다고 진술했어요.”

 “혹시 상태가 술 마셨나?”

 “도진 오빠가 억지로 권해서 양주 3잔을 마셨나 봐요.” 

 “근데 왜 도진이라는 사람이 상태에게 운전을 시켜?”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도진 오빠는 술만 마시면 오빠에게 대리운전시켰어요.”

 “지가 뭔데?”

 “그, 그게….”

 연우의 울컥에 그녀는 머뭇거렸다.

 “괜찮아. 누구에게나 파도치는 인생사가 있잖아.”

 “오빠. 그거 아세요? 어린 시절이 행복했던 사람은 그 추억으로 살고,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 사람은 그 상처를 치유하면서 산대요.” 

 상아는 얼굴이 어두워지며 어린 시절로 빠져들었다.     

 

 대저택 정원에서 만복은 사다리에 올라 땀투성이로 가지치기한다. 이어 땅에 떨어진 잔가지를 포대에 담고는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성국에게 넥타이를 매주던 아내가 볼멘소리를 냈다.

 “여보, 집사 바꿔요. 주변에서 장애인 집사를 뒀다고 얼마나 수군대는지 알아요? 어디 창피해서 심부름을 보낼 수 있어야지.” 

 “그런 소리 말아. 설 집사처럼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 없어. 그리고 아내 병간호하면서 애들을 키우는 게 쉬운 줄 아나? 착한 사람이 참으로 안 됐어.”

 성국이 아내를 타이르며 현관을 나왔다. 공놀이하던 도진과 도희가 출근 인사를 하려 뛰어왔다. 성국은 정원 한편에 있는 상태와 상아를 불러 돈을 나눠주었다. 역시나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우리 아빠 돈이야!”

 도진이 상태의 돈을 낚아챘다. 상아는 얼른 등 뒤로 돈을 감추고 내뺐다. 성국은 다시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상태의 손에 쥐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곁에서 감동한 만복이 서둘러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차가 사라질 때까지 연거푸 허리를 굽혔다.     

 

 “나에게 좀 말해 줄 수 없을까?” 

 “오빠, 도원그룹 아세요?”

 “도원그룹! 아, 알지.”

 “사실은 도진 오빠가 도원그룹 회장님 아들이에요.” 

 “정말? 근데 어떻게 아는 사이야?”

 “오빠와 도진 오빠는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전에 아빠가 백 회장님 자택의 집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우리 가족이 그 집에서 얹혀살았죠. 다른 사람들은 저희를 괄시했지만, 회장님은 인간적으로 대해 주셨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온 후에도 아빠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지요. 그러다 보니 아빠는 회장님을 은인으로 여기고 신처럼 받들어요. 마찬가지로 오빠도, 도진 오빠가 뭘 시키면 거절을 못해요.” 

 “그랬구나….”

 그제야 연우는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동안 상태는 어찌 지냈는데?”

 “아! 연우 오빠는 중학교 동창이라 알겠네요. 갑자기 오빠가 학교를 그만둔 이유를요.”

 “왜?”

 그는 모른 척 물었다. 혹시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까 심장이 요동쳤다.

 “아직도 저는 그 까닭을 모르겠어요. 아빠 말로는 오빠의 책가방에서 술병과 담배가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학을 받고는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아~ 내가 씌운 누명으로….“

 연우는 가슴이 찢어지듯 아려왔다.

 “근데 이상한 게 있어요.” 

 “뭐가?”

 “오빠가 술, 담배를 했다면 제가 확실히 알아요. 늘 함께 있었거든요. 아마 이 사건처럼 그때도 누명을 썼던 것 같아요.”

 ‘상태는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았구나. 내가 진범인 것을 알면서도.’

 연우는 글썽한 눈을 손등으로 닦았다. 

 “오빠, 왜 그래요?”

 “아, 아니.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 후로는?”

 “검정고시에 몇 번 떨어지고 자동차 정비를 배웠어요. 글구 카센터에서 일하다 이 사달이 난 거예요.”

 비로소 그는 전에 상태를 만났을 때 옷에 기름때가 묻은 사연이 납득되었다. 

 순간 무언가 뇌리를 스쳤다. 

 “그래! 차량 블랙박스를 보면 알 수 있어.”

 “그런데 블랙박스가 없는 거예요.”

 “블랙박스가 사라졌다는 거야?” 

 “네.”

 “상대방 차의 블랙박스는?”

 “고장 나 있었대요. 연우 오빠는 우리 오빠가 거짓말할 사람이 아닌 걸 알지요?”

 “물론이지.”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요.” 

 상아의 믿음은 확고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연우는 그녀에게서 당찬 면모를 느꼈다. 

 “좀 도와주세요. 지금 제 주변에는 오빠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상아는 애처롭게 사정했다. 과거의 죄책감으로 무작정 그녀를 만난 연우는 난처해졌다. 

 이때 강지상이 떠올랐다. 그는 동아리 체육 대회마다 참석해 후배를 잘 챙기던 선배였다.

 “나와 갈 데가 있어.”

 “어디요?”

 “내가 아는 변호사가 있는데 분명 도와줄 거야.”

 상아는 구세주를 만난 듯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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