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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Jul 26. 2024

정의의 배심원

진실을 향하여-1


 변두리 낡은 건물 입구에 ‘변호사 강지상 법률사무소’ 목간판이 걸렸다.‘

 이런 지저분한 곳에 웬 변호사가 있나?’

 연우는 실망스러운 감정을 숨기고 계단을 올랐다. 

 상아의 표정도 매한가지다.

 그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신문지로 얼굴을 덮고 소파에서 자는 사람이 보였다. 구석진 곳에 중국집 빈 그릇이 쌓였다. 인기척에 깬 지상은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예전의 카리스마 넘치던 선배는 간데없고 거의 폐인의 모습이었다. 

 “어? 네가 웬일이냐?”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보다시피 내 꼴이 이래. 패소 변호사로 소문나서 소송 의뢰가 없어. 만날 뭐 믿어라, 어디에 가입하라는 족속들만 와.”

 “그럼 어떻게 지내세요?”

 “가끔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돼서 밥은 굶지 않아. 그나저나 손님이 오셨는데 뭐 마실 게 있나?”

 지상이 냉장고 문을 열자, 소주병들이 떨어져 와장창 깨졌다. 연우가 빠르게 달려가 바닥을 치웠다. 

 “이분은 누구셔?”

 “친구 동생이에요.” 

 “설 상아라고 합니다.” 

 “근데 무슨 일로?”

 연우는 사건의 개요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말이 끝나자, 지상은 시큰둥하게 나왔다.

 “목격자들이 상태라는 친구가 운전했다고 하므로 무죄는 어려워.”

 “저의 오빠는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에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 없는 거겠죠.” 

 상아의 거센 부정에 지상은 냉담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고함쳤다. 

 “그러니까 도와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저, 싸가지는 여전하군. 여전해.” 

 지상을 쏴붙이던 수진이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상아 씨가 여기는 웬일이야?”

 “어! 하 변호사님 아니세요? 오빠 사건으로 왔어요.”

 상아는 눈짓으로 지상을 가리키며 ‘이 변호사는 아니다’란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 변은 어쩐 일로 행차하셨나?”

 “내가 이 사건에 국선 변호인으로 선정되었어. 근데 나는 교통사고를 처리한 경험이 없잖아. 선배님, 도와주실 거죠? 믿어용~” 

 수진의 코맹맹이 애교에 그는 매몰차게 내뱉었다.

 “후배에게 대략 사건을 들었는데 정황상 무죄 될 가망은 없어. 포기해.”

 “난 안 해! 글구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인 거 몰라?”

 “패소할 소송에 변호인이 많다고 이기겠냐? 형량 줄일 방법이나 찾아봐.” 

 “내가 조사한 바로 의뢰인은 무죄라니까.”

 “뭘 조사해? 교통사고를 다룬 적도 없다면서?” 

 “그야 그렇지만….”

 꽁지를 내리던 수진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의뢰인은 억울하다며 주장하고 있단 말이야!” 

 지상이 그녀의 귀에다 소곤댔다. 

 “의뢰인이 변호인을 속이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냐?” 

 “강 선배. 이 사건에 누가 개입된 줄이나 알아?” 

 “그건 알아서 뭐 해? 패소할 재판에.” 

 “태, 양, 로, 펌.”

 “뭐? 태양이라고! 음, 음….”

 화들짝 놀란 지상은 신음을 내더니 곧 반색했다.

 “넌 내가 태양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 줄 알았냐? 태양은 국내 최고 법률사무소야. 싸움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하는 거지. 설익은 정의감으로 덤비는 게 아니야.”

 “설익었든 다 익었든 사과는 사과지. 설익었다고 사과가 배로 변하지는 않잖아?”

 “너 혼자 이렇게 뛰어다닌다고 뭐가 바뀔 거 같냐? 아무리 바꾸려 해도 안 되는 게 있어. 세상은 본래 그런 거야.”

 “그럼 달라질 게 없다고 뛰지도 말까?”

 수진의 반발에 그는 뭔가 짚이는 듯 중얼거렸다.

 “태양이 관여했다면 이번에도 증인들을….”

 “당연하지. 그래서 내가 국민참여재판이 유리할 것 같아 신청했어.” 

 “그거 하나는 잘했네.”

 “그렇죠! 잘했죠!”

 오래간만에 칭찬받은 그녀는 신났다. 

 지상이 진지하게 설명에 들어갔다.

 “국민참여재판은 그 자리에서 배심원들의 마음을 얻어내는 게 중요해. 재판부보다 배심원을 일일이 설득해야 하므로 더욱 힘들지도 몰라. 또한 무죄가 아닌 유죄에서는 도리어 형이 무거워질 수 있어. 다행이라면 국민참여재판 무죄율이 10% 정도로 일반 형사재판의 4%보다 높으니 유리할 수도 있다는 거지.” 

 “태양은 승소를 위해 별짓을 다 하는 집단이잖아. 강 선배. 일단 의뢰인을 한번 만나나 봐요.” 

 “상태는 제가 잘 알아요. 분명 잘못된 게 확실해요. 제발 도와주세요. 선배님.”

 연우의 매달림에 그는 마지못해 말했다.

 “그럼, 의뢰인을 만나 보고 피박을 쓸지 말지 결정하지.” 

 “선배님. 고마워요.”

 “아직 그 인사를 받기는 일러.” 

 “그래도 시동은 걸었잖아요.”

 연우가 가만히 입을 뗐다. 

 “저, 이 국민참여재판에 배심원 후보자로 선정됐다고 통지를 받았어요.”

 “그래? 무작위로 뽑히는 거라 로또만큼 당첨되기가 어렵다는데 우연치곤 대단하네. 정식 배심원으로 선정될지는 모르지만.” 

 지상이 당부하듯 주지시켰다.

 “연우야, 만에 배심원으로 선정되어도 너와 의뢰인의 관계가 드러나면 검찰 측이 기피 신청할 테니 반드시 비밀에 부쳐야 해. 또 네가 배심원 후보자란 것도 여기 세 사람 외에는 함구하고.”

 “알겠어요.”

 국민참여재판을 검색했던 연우는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난 의뢰인에게 접견을 가야겠네. 하 변은?” 

 “나는 재판이 있어서.”

 “저도 함께 갈래요.”

 “넌 안 돼. 면회 신청서에 기록이 남으면 의뢰인과 관련이….”

 “앗, 그렇지요. 그냥 따라만 갈게요.”

 “저도요.”

 상아도 가겠다고 했다. 사실 연우는 지난날의 사건으로 그를 만날 자신이 없었다.     

 

 변호인 접견실로 수인복에 1355 수번을 부착한 상태가 힘없이 들어왔다. 다소 왜소한 체격에 하얀 피부와 처진 눈매가 선해 보였다. 

 “강지상 변호사입니다. 동생이 설상아 씨지요? 그분의 의뢰로 왔어요.”

 “저는 변호인이 있는데요…?”

 “변호인은 많을수록 좋아요. 상태 씨, 거짓말이라는 날개는 당신이 숨고 싶은 곳 어디든 데려다 줄 거예요.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지요. 그러니 사실을 말해 주겠어요?”

 “변호사님. 저, 정말 믿으세요?”

 “의뢰인 대부분이 그런 말을 하는데 이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만 변론할 거예요.”

 “...”

 “상태 씨. 저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괜찮아요. 변호사법에 변호인은 의뢰인의 비밀을 지켜야 하고 의뢰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수 없으니까요.”

 “네.”

 “궁금한 게 많지만 하나하나 물어보죠. 사고 날 술 마시고 운전했다면서요?”

 “양주 3잔을 마셨어요. 원래 체질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떨어져 술을 못 해요.”

 “당일 상황을 말씀해 주실래요?”

 “제가 도진이 전화 받고 술집에 도착했을 때 친구들은 많이 취해 있었어요.”

 “계속 말해 봐요.”

 상태는 고단한 표정으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야! 나야. 바로 튀어와!” 

 “어. 나 자려고 하는데….”

 “너 미친 거 아냐? 야, 나라고. 도진이라고!” 

 “그…. 그래, 갈게.”

 상태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가며 토로했다.

 “나는 쇠사슬에 끌려가는 노예와 다름없어.” 

 “왜 이렇게 늦었냐!”

 도진이 타박을 줬다. 

 “차, 차가 밀려서.”

 “상태구나. 이게 얼마 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준영과 영채가 상태를 보고 반가워했다. 두 사람도 초등학교 동창이라 아는 사이였다.

 “도진이 유학 마친 기념으로 모인 거야. 너도 한잔할래?” 

 “아, 아니. 나 술 못하잖아.” 

 “야, 마셔! 분위기 깨지 말고.” 

 도진은 준영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상태 잔에 부었다. 이어 술잔을 높이 쳐들고 외쳤다.

 “우리의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건배! 야, 빨리 마시라니까!”

 도진의 강요에 그는 잔을 비우고 독한 술맛에 혀가 아렸다. 이어진 윽박에 2잔을 더 마셨다. 불쑥 도진이 말했다.

 “우리 속초로 바닷바람을 쐬러 갈까?” 

 “좋지.”

 “나도 좋아.”

 친구들은 찬성했으나 상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운전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어서다.

 “자, 나가자.”

 “나 화장실에 들렀다 갈게.” 

 “나도.”

 준영과 영채가 일어나자 두 사람은 술집을 나왔다. 주점 앞에 슈퍼카가 세워져 있었다. 

 도진이 차 키를 상태에게 던졌다.

 “네가 운전해라.”

 “내가? 안 돼. 나 술 마셨잖아.”

 “뭐? 너 지금 개기냐? 몇 잔이나 마셨다고. 글구 네가 평생 이런 고급차를 운전이나 해 보겠냐? 가문의 영광인 줄도 모르고 말이야.” 

 “아니, 술도 마셨고. 길도 모르고….”

 “닥치고 운전하라고 새끼야! 평소에 잘하던 새끼가 왜 빼고 지랄이야!”

 그의 멱살을 잡은 도진은 칠 듯한 기세였다. 

 “아, 알았어.”

 결국 상태는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조수석에 도진이, 뒷좌석에 준영과 영채가 잠들었다. 차는 깜깜한 국도를 달렸다. 한참 후 잠에서 깬 도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아직도 멀었냐?”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아.”

 “이래서 어느 세월에 가냐? 지금부터 내가 운전할 테니 차 세워!” 

 상태는 조수석으로 가다 무심코 정면으로 ‘속초 10km’ 도로 표지판을 보았다.      


 “기억을 잘 더듬어 봐요. 그 외에는 없나요?” 

 “네. 처음에 제가 운전한 건 맞아요. 하지만 속초 가까이 와서는 도진이와 교대를 했어요. 그런데 사고 후 정신을 차려 보니 운전석에 제가 있는 거예요. 변호사님, 저는 도진이와 자리를 바꾸면서 ‘속초 10km’ 도로 표지판을 똑똑히 봤어요.”

 “교통 표지판을 말이죠?” 

 “네.”

 “그럼, 교대 지점에서 사고 지점까지 가는 동안 맞은편 차들은 있었나요?”

 “그건 왜요?”

 “그 차들의 블랙박스를 확인하면 운전자를 알 수 있거든요.”

 “없었어요.”

 상태는 울먹이며 말했다.

 “진짜 저는 사고를 안 냈어요. 제발 믿어 주세요. 전 너무 억울해서 죽고 싶어요.”

 지상은 접견실을 나오며 중얼거렸다.

 “분명 뭔가 있어…. 몇 분! 그 시간에 진실이 있는 거야. 비록 짧은 검사 시절이었지만 난 다수의 범죄자를 조사했어. 그래서 촉이 있지. 거짓말이란 눈덩이와 같아 구르면 구를수록 커지게 돼. 근데 상태의 진술은 신뢰할 수 있어. 그러면 누명을 쓰고 있다는 건데…. 그러나 상대는 우리나라 경제를 좌우하는 대기업 승계자야. 더구나 그를 변호하는 측은 최고 로펌이잖아.”

 그는 착잡했다.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두려웠다.

 구치소 마당에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지상은 그 낙엽이 지금 자신의 처지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숨는다면 나는 또 사람을 죽이는 거야. 그러면 한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게 되겠지….’

 그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상태의 절규가 귓전을 때렸다.

 “저는 어쩔 수 없이 갈 수밖에 없었어요. 난 본시 그렇게 살아왔지요. 양반과 머슴으로요. 전 너무 억울해서 죽고 싶어요.”

 지상은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연민이 솟았다. 이어 마크 트웨인의 말이 스쳤다.

 ‘진실이 신발을 신고 있는 동안 거짓은 세상을 반 바퀴 돌 수 있다.’ 

 마침내 그는 이 재판에 합류를 결정하고 보폭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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