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들어주면 나쁜 년 만드는 부탁

가족은 항상 도와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by 춘림

오빠는 종종 엄마나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한다.
그 부탁은 언제나 묘한 무게를 지닌다.
안 들어주면 몰인정한 사람이 되고, 들어주면 당연한 일이 된다.
어제도 그랬다.

큰언니에게 걸려온 오빠의 전화.
“니 차로 새언니 병원에 좀 데려다줄 수 있냐?”

큰언니는 마침 우리 집에 와 있었다. 우리 집에서 오빠네까지는 차로 한 시간 반.

큰언니 집에서 오빠네는 30분 거리였으니, 계산상으로는 부탁할 만한 거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사정은 거리로만 재는 것이 아니다.

큰언니는 시어머니 병원 일로 긴 시간 바쁘게 움직였고, 겨우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오빠가 그런 사정을 몰랐다 해도, 가족 안에서 반복되는 ‘그 집안’의 패턴은 분명했다.


전화를 끊은 큰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간다 한들,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한 덩치 하는 새언니를 내가 둘러업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물었다.

“왜? 어디가 아픈데?”

“허리가 아프대.”

“119를 부르든, 콜택시를 부르든 해서 병원에 가면 되잖아.”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정말 그렇게 해왔다.

서울에서 혼자 살며 허리디스크를 앓았고, 끝내 수술까지 받았다.
(물론 수술 당시까지 혼자 있었던 건 아니다.)

이후 통증이 재발했을 때 절뚝이며 혼자 병원에 갔고,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땐 내가 119를 불렀다.

혼자서, 가능하면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스스로 해보려는 시도 없이

도움부터 청하고 보는 오빠 부부가 못마땅했다.
나는 큰언니에게 다시 물었다.
“119는 불러봤대? 택시는? 아무것도 못할 정도래?”
그리고는 한마디 더 보탰다.
“비혼인 나도 도와달란 소리 잘 안 하고 사는데,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는 그 집은 맨날 왜 그런지...”

큰언니가 말했다.

“내 보기엔 너보다 더한 거 같다. 싱글이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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