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절대반지 속 현대사회의 그림자

The Last Goodbye

by BaetZzo

J.R.R 톨킨의 판타지 소설은 내가 학창 시절에 즐겨 읽던, 소위 ’ 덕질‘의 대상이었다.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작품 속 요정 문자와 앙게르사스 문자(난쟁이 문자)를 어느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톨킨의 소설에서의 모험과 여정의 이야기, 신비로운 설정에 주로 매료되어 있었지, 소설의 주제의식에 대해서는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런 부분이 제법 남아있기 때문에 필자는 톨킨의 소설 중에서는 보다 가벼운 분위기에 보물 찾기와 여정의 이미지가 강한 ‘호빗’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본인의 가치관이 형성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책의 재미와는 별개로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통해 전하고자 하였던 바에 대해 감회가 새로이 들게 되었다.

절대반지의 주요 효과는 반지를 낀 자의 투명화와 소유자의 수명의 연장, 욕망의 증폭과 유혹이다. 필자는 이 모든 요소가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현대사회의 발전의 부정적인 면모이다.


1-투명화: 절대반지의 투명화는 평범한 존재들에게서는 은신할 수 있지만, 악의 존재들(사우론, 나즈굴 등)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며, 절대반지를 포함한 힘의 반지들의 투명화 능력을 과도하게 많이 사용한 인간들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 채로 사우론의 악한 노예, 나즈굴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이는 현대사회에서의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성이 가지는 부정적인 면모(악플, 디지털 성범죄, 해킹 등)와 그러한 행위를 저지르는 이들이 처음에는 익명성의 뒤에 숨어 부당한 힘을 행사할 수 있지만 종국에는 사이버 공간에 사로잡힌 악한 망령으로 전락해 버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2-수명의 연장: 절대반지의 수명의 연장은 인간의 수명을 추가로 덧붙이는 게 아니라 정해진 수명을 고무줄처럼 억지로 늘려놓는 방식으로, 현대사회의 발전된 의료기술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연장되었지만, 그로 인해 늙어서 골룸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가진 것들(아름다움, 건강, 능력 등)을 잃고 무의미한 고통스러운 여생을 보내며 그로 인해 안락사 문제나 고령 사회 등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을 연상케 한다.


3-욕망의 증폭과 유혹: 마지막으로 절대반지의 욕망의 증폭과 유혹은 반지의 가장 핵심이 되는 능력으로, 처음에는 소유자의 욕망을(이실두르-권력, 보로미르-곤도르의 안전, 샘-모르도르의 정화) 증폭시키지만, 나중에는 소유자의 욕망을 증폭하는 게 아니라 반지 그 자체에 집착하게 하여 반지의 노예로 만드는 방식인데, 이는 현대사회에서 과거의 사람들이 수련과 노력의 과정을 통해 결실을 맺어 성취감을 얻던 바람직한 방식이 잊히고 마약, 술, 도박 등의 일차원적인 쾌락에 집착하고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며 결과에 집착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결과만능주의로 귀결되기만 하는 것을 각각 의미하는 것 아닐까?


물론 톨킨의 시대에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이나 고령 사회, 안락사, 자본주의 사회의 결과만능주의 등의 문제가 거론되는 일은 전무했겠지만 필자가 내놓은 해석은 톨킨이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제법 그럴듯하게 들릴 것이라고 자신한다.


실제로도 톨킨의 세계관에서 악의 세력으로 등장하는 오르크, 고블린 등의 예시에서 증기가 사용되는 기구 등의 현대사회를 은유하는 요소를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반지의 제왕의 마지막 샤이어 전투가 영화에서는 어떠한 문제로 생략되었지만(분량 등의), 이 부분은 주제 의식 면에서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샤이어 전투에서도 사악한 인간들이 증기기관 등의 현대사회의 기술로 톨킨이 이상사회로 지향하던 샤이어를 무자비하게 망가뜨리자 그들을 격퇴하고 샘이 갈라드리엘의 선물로 샤이어를 복구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톨킨이 진정으로 바랬던 것, 발전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잊혀 가며 일부에선 멸시당하기까지 하는 과거의 소중한 유산들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앞서 말한 내용 이외에도 반지의 영향으로 과도한 난쟁이의 욕심에서 비롯된 두린이 재앙, 스마우그와 용의 탐욕 등의 세계관 속 이야기에서 톨킨의 생각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톨킨의 문학은 단순 판타지적 요소와 상상력 만으로 고평가를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판타지라는 장르는 아이러니하게도 톨킨이 자신의 문학을 통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던 결과지향주의에 심취하여 판타지적 요소를 주제의식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판타지적 요소 자체에 집착하여 엘프, 난쟁이, 마법사, 오르크 등만 차용한 채로 내용은 저급하고 천박하기 그지없는 작품이 바퀴벌레 때처럼 범람하고 있다. 물론 트렌드라는 게 존재하는 만큼 이런 시각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정통 판타지라는 장르 자체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 이미지가 지나치게 서브컬처의 마이너하고 선정적인 형태로 낙인찍히는 건 반대하기 때문에, 아니 그 이전에 필자와 톨킨이 강조해 온 결과지향주의를 지양하는 입장에서라도 창작자와 소비자가 어느 정도 대승적인 관점을 가지고 상업성보다 소위 말하는 ‘작품성’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판타지 장르도 현대의 것이라고 마냥 저급하기만 한 것 밖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원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모든 판타지 장르 창작물이 반지의 제왕 같이 문학적이고 작품성이 있어야 한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형적인 형태로 일그러진 피라미드 형태의 현대 판타지 장르의 스펙트럼을 어느 정도는 정상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나치게 이야기를 복잡하게 하였지만 요약하자면 현대 판타지 장르 자체가 ‘양판소’의 행태를 넘어서서 엘프(요정)와 난쟁이, 오르크 등을 차용하는 것 자체가 톨킨에 대한 모독에 가까운 작품들이 범람하고, 창작자들이 이에 최소한의 문제의식조차 가지지 못한 채 악순환이 반복되는 점을 안타깝게 여긴다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부디 이 복잡한 내용에서 필자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길 바란다.


물론 필자가 현대의 판타지 장르와 관해서 반감을 가지는 풍조는 현대에 거의 모든 사회, 문화 전반에 적용되는 문제이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21세 기판 범세계적 규모의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벌어져야 할 텐데, 필자는 그러한 부류의 극단주의자는 절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 거스를 수 없는 현대사회의 격류 속에서 헤엄치는 한 마리 크릴로서 파도의 흐름을 바꾸기보다 살아남고 언젠가 해가 바닷속을 비추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유튜브에 무직전생 하이라이트 따위가 추천 영상으로 올라올 때 미다 시어도어 카잔스키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상상이 가서 내심 씁쓸할 때가 있긴 하다…


한편으로 톨킨은 판타지 장르의 아버지로서 판타지 장르를 정립하고 21세기 현재까지도 현대 판타지 장르에 누구보다도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자신의 문학을 통해 말하고자 하던 바를 그에게 영향받은 이들 중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는 이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필자는 마치 낳고 길러준 채 뒷바라지해온 부모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채 그저 받기만 하고 보답할 줄 몰랐던 불효자식의 모습을 연상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앞서 필자가 맹렬히 비판한 이들과 나 필자나 공유하는 문제의 결은 같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남을 비판할 자격은 없을지도 모른다.


결론을 내리자면 필자는 그저 톨킨이 전하고자 하였던 대로 이제부터라도 작은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라도 받은 것에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앞서 말했지만 필자는 한 명의 나약한 인간으로서 현대사회의 거대한 파도를 거스를 수 없고 또 거스르고 싶지도 않다. 그저 필자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아쉬움을 이 글에 새겨두고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이 파도에 쓰러지지도, 부서지지도 않은 채 톨킨의 마음을 기억하고 이 글로 전하고자 할 뿐이다.

“톨킨, 제가 당신의 마음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게요. 그럼으로써 당신의 영혼은 현세를 떠나서도 진정한 의미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겠죠.”


여기까지가 제가 처음 쓰는 장편 칼럼입니다. 조금 평소보다 격정적으로 거칠고 날카로운 문장으로 완성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제가 톨킨의 문학의 엄청난 팬이었기에 글이 쓰다 보니 예상보다 길어졌네요. 그래서인지 지치기도 하지만 남들 눈치를 보지 않고 속 시원하게 글을 써서 후련하기도 하네요. 그럼 이제 마지막입니다. 저는 갑니다. 지금 떠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https://youtu.be/q8ir8rVl2Z4?si=ZnJdZOqAjw4kYuux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