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는 밝아 오는가
며칠 간의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
거의 생명의 전화의 문턱까지 다녀온 뒤.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다량의 약이었다. 이제까지 중 최고로.
혼자 살았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다면 벌써 이 삶에 없음을 통감했다.
약 효과는 굉장했다.
나는 신생아처럼 자기 시작했고, 거기에 밤낮은 없었다. 그렇게 일어나면 새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9월이 되었다.
낮에 한 통화에서 친한 동생은,
“언니, 삼재야?”
하고 물었다.
나는 그런 걸 잘 몰랐다. 그 흔한 사주 한번 본 적 없었다.
언니 힘든 거 보니까 혹시 삼재인가 해서.
여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마음 써준 것만은 정말 몹시 고마웠다.
저녁 9시까지 다 되어가도록 자고 일어난 뒤에, 묘한 절망감과 한심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구직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나는 집 근처의 물류센터의 <웰컴 데이>에 참여하기로 했다.
<웰컴 데이>는 내주였다.
쉽게 말해 ‘출근 전 교육’이었는데 나가는 것만으로 8만 원을 주었다.
매번 왕복 4시간에 육박하는 출퇴근을 10년 넘게 해온 것에 지치기도 했고, 잘 되었다고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친한 친구가 ‘정말 생각이 많았겠다. 고생했다. 잘 될 거다’ 말해줬을 때 그만 울 뻔했지만. 나는 선택보다, ‘선택 그리고 그 후‘에 취약한 사람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몸 쓰는 일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그 뒷면에는,
그래도 집에서 정말 가깝네! 자기 시간이 좀 더 생기겠다!
해내고 싶은 것들을 여가 시간에 이루어내자!
아주 제멋대로 빙글빙글 이었다.
새 약을 먹고 하루종일 졸음이 오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프랑스어 학습지를 주문하고, 방을 조금 치우고 나는 새벽 내내 깨어 있었다.
불안함에 필요시 약을 한봉 더 먹은 뒤 마치 건강한 좀비였다.
약이 감정을 있는 힘껏 눌러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울증을 가지고 있다면 대체로 ‘진정’ 하기 힘들다. 울증 아니면 조증의 삽화가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5시 반에 재활용을 버리러 거리로 나갔더니 밖은 밝았고 쌀쌀하다 못해 바람은 쓸쓸했다.
나는 텅 빈 주말의 거리에서 울고 싶었고 아파트 단지에는 까치가 보였다.
크고 멋진 좋은 소식을 기대했던 적 한 번도 없었다.
내 삶이 어디서부터 비틀어지기 시작한 걸까? 싶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미래를 불안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새로운 곳에서 잘 해낼 수 있을지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계획대로 흘러갈까? 일하고 공부하며 마침내 이뤄낼 수 있을까?
나는 더 이상 지름길을 찾지 않는다.
길의 순서와 그 쓰임을 이해한다. 무언인가는 밝아 오는가. 그게 나를 비추는가.
비추었다 멀어졌다 다시금 내게로 돌아오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