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고합니다] 무료글에도 구독자에게만 공개 설정이 있었으면 합니다
1. 멤버십 가입 배너를 눌렀다가 뒤로 가기했다가 또 배너를 눌렀다가.. 최근 하루에 열 번 정도는 반복하는 루틴이 되었습니다. 딱히 구독자가 많지 않은 지라 수익 창출의 기회에 대한 갈등은 아닙니다. 오히려 글을 블라인드 처리할 수 있는 옵션이 생긴다는 유혹 때문입니다.
2. 글을 발행할 때면 양가적 감정에 휩싸입니다. 독자들이 내 글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아무나 보지 말았으면 하는 이중의 감정입니다. 특히 아주 아끼는 아이디어를 글에 담았을 경우에는 이 감정의 간격이 아주 멀어집니다.
3. 브런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활동합니다. 모두가 작가를 꿈꿉니다. 그리고 서로의 글을 서로가 참조하며 생각이 나선적으로 발전합니다. 좋은 말로 표현한다면 말이죠. 좀 거칠게 표현하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글감으로 삼는 셈이죠.
4. 물론 아이디어가 공개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그게 다시 자신의 생각을 심화시키는 나선형의 상승구조를 가진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브런치에는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글감을 어디에서 발견했는지를 밝히는 인용 문화가 강하지 않습니다.
5. 어떤 경우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져다가 표현을 좀 바꿔서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글을 올리기도 합니다. 아이디어에 주인이 어디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또, 당신의 아이디어도 어딘 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 생각하기도 할 것입니다.
6. 그런데 그것은 착각입니다. 아이디어의 표현에는 주인이 있습니다. 그걸 보호하기 위한 것이 저작권이고, 그것을 위반하면 표절이라고 합니다. 아이디어에 대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것을 더 발전시키려는 태도가 인용 문화입니다.
7. 자기가 크게 고생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쉽게 아이디어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자신의 아이디어가 별 가치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8.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글을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구독도 하지 않고, 라이킷도 남기지 않습니다. 굳이 그 글을 읽었다는 표시를 내서 표절의 흔적을 남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원작가가 구독과 라이킷을 따라와서 표절글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9. 브런치 활동 초기에 아주 우연히, 정말 아주 우연히 어떤 글에서 고생스레 고안한 개념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개념을 연재 브런치북에서 다루려고 소개한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은 별다른 가치가 없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10. 그런데 개념의 설명은 조작적 정의였습니다. 설명방법 자체를 고안해 놓은 것입니다. 이어진 개념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일일이 직접 만든 것입니다. 그 방식의 설명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죠.
11. 그런데 그분은 교수님께 사사한 것이라며 거창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표현 하나 바꾸지 않은 채로 였죠. 그 교수님이 누구인지 물으려고 댓글창을 열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그냥 댓글창을 닫았습니다. 구독자도 많은데 공개 망신을 주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습니다.
12. 그리고는 그다음 날 연재하던 제 브런치북을 내렸습니다. 한참 후에 그분의 브런치에 가봤지만 그 내용에 대한 글은 그 한편이 전부였습니다.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못한 것이죠.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태연한 어투로 다른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13. 쓴웃음을 남기고 제 브런치로 돌아왔습니다. ‘작가의 서랍’ 속에 발행취소된 글이 괜히 애잔해 보입니다. 다시 읽어보다가 어색한 부분을 발견하고 퇴고합니다. 그러나 그 글은 다시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을 압니다. 그래도 아이 얼굴에 묻은 흙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고치고 또 고칩니다.
14. 멤버십을 가입하고 글 설정을 유료로 해두면 구독하지 않은 사람은 볼 수 없습니다. 마치 내 방으로 들어오려면 젖혀야 하는 블라인드처럼 느껴집니다. 방에 들어왔다는 흔적을 남기는 장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는 장치. 그래서 강한 유혹이 옵니다.
15. 그런데 한번 유료 설정으로 블라인드를 걸어두면 다시 무료로 전환할 수 없다는 공지를 보고 갈등합니다. 그럼 일반 구독자가 그 글을 볼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라이킷을 꾸준히 찍어주시는 분들은 내가 여기까지 봤다는 흔적을 남기는 분이라 유료글이 무료글로 전환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16. 일단 유료글로 발행하면 진짜 애독자 분들이 글을 볼 방법이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래서, 브런치에 고합니다.
무료글에도 “구독자에게만 공개” 설정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