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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영 Aug 14. 2024

관계 : 혼자가 좋지만, 누구보다 외로운 고독

모두를 위한 적절한 관계의 균형 그 어딘가

 우리가 살아가며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관계일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데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한 것이다. 예외는 있지만 보통 태어날 때부터 부모와 같은 핏줄의 혈연관계를 가지며,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지만, 이렇게 관계는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삶을 정리하는 단계가 아니고선 특정 대상과 관계를 맺지 않는 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짧은 몇 년 동안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더라도, 결국 무언가,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보통은 좋은 기억보단 부정적인 기억이 더 쉽게 남는 편이기에, 기대하는 만큼의 만족을 얻기 어렵기도 하다.


 감정이 없는 물건조차 시간이 지나며 고장이 나고 기능에 만족하지 못하는데, 사람과 맺어진 관계는 더 복잡하고 섬세하다. 그렇다고 영원하지 않을 뿐,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은 많은 이점과 흥미로운 감정을 관계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피규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화를 하거나, 사용이 불가능한 물건을 구경만 하면서 애지중지 관리하는데, 이는 관계가 주는 감정의 힘을 보여준다. 사람도 사물에 비해 복잡할 뿐, 자신에게 이득 되지 않은 대상에게 관심을 준다. 말 안 듣는 자식이어도 부모가 사랑을 주듯이. '애착'이란 감정을 담고 있는 관계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사물은 감정이 없기 때문에 관계가 어떻게 변해도 상관없는 게, 사람마다 다른 개인적인 부분이기도 하고, 관계가 변해도 어느 한쪽도 상처받을 일 없고 새로운 대상을 찾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는 복잡하기 때문에 양날의 검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현재 상태에서 검을 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지만, 집어드는 순간 유용한 관계를 만들 수도, 좋은 관계를 만들려다 손을 베거나 되려 찔려 아플 수 있다. 이런 특별하고도 복잡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관계는 누군가에겐 삶의 핵심 요소일 수도, 다른 누군가에겐 더 이상 들고 싶지 않은 검이 될 수도 있다. 

 

 아예 시도하지 않기엔 해야 할 이유와 장점이 많다, 설령 그것이 독이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짧디 짧은 인생에서 관계에 있어 순탄대로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해 없다 생각한다, 게임도 사람이 만든 임의의 가상세계지만 반복적인 일과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며 성장하고, 사람이 각본을 쓴 드라마도 주인공들이 비극을 겪어야만 비로소 희극이 완성된다. 모든 시나리오가 결말까지 갈 수 없지만, 한 편을 완성해 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 노력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나조차도 그 시도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

나에게 관계란 더 이상 들고 싶지 않은 검에 가깝다. 아니면, 익숙해져 검을 드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새로운 관계가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불편함을 느끼는 감정인지, 나만의 방식에 너무 익숙해진 건지 잘 모르겠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불편한 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만들어둔 기준에 사람을 대할 때 필요 이상의 선 그 이상 이하로 대하지 않으니 모두에게 불편한 감정이 크게 생길 일 없다, 설령 그게 잠깐의 재미를 위할지라도, 특정 순간에 서로에게 이득 될 상황이 있으면 교류하는 거고, 아닐 땐 딱 잘라 거기까지만 대하는 것이다. 그 선이라는 것에 한해서 관계를 유지하니 오히려 사람을 대하는 건 더 편했다. 내가 상처 줄 일도, 나를 함부로 대할 사람도 없는 아주 깔끔한 관계이다. 


 관계에 선을 정하진 않았지만, 예의 바르게 대하며 필요한 말만 하는 것으로 새로운 관계를 피하고, 상대가 나를 정중하지 않은 상대로 생각할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조금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다. 우리는 서로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고충은 각자 해결할 뿐, 공유하는 건 재밌는 일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인지에 대한 관심이 서로에 대한 관계이다. 내가 변한, 그들이 변한 이유도 각자의 사정이 있을 뿐, 내가 물어보지 않는 게, 그들이 나에게 묻지 않는 이유다.  

한참 SNS를 좋아할 시기지만, 내가 뭘 했는지 궁금해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보여주고 싶지도, 다른 이의 소식이 궁금하지도 않다.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적인 것에 묻지도 않고, 질문을 들으면 어디까지 대답해야 하는 건지 싶다. 타인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것, 매정한 무관심일까, 미련한 건가, 아니면 그저 거쳐가는 시기인가. 

사람과의 관계는 기본적인 상호작용에서 파생된다, 말과 행동, 공감이 없으면 관계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익숙해지거나 무덤덤해지며 결국 무지로 이어진다. 나를 위한 자유로운 일상을 멈추고 새로운 관계를 위한 제자리로 돌아오니, 나에게 시작된 무지가 점점 버거워진다. 원래 예의상 건네어야 하는 말인지, 새로운 관계를 위한 상호작용으로 나에 대해 묻는 건지, 대답해야 하는 이유와 내가 질문을 건넬 이유를 판단하기 어렵다. 상대가 나에 대해 물으면 대답하기 망설여진다, 그럼 그 실망한 기색에 정중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나름의 답변을 해주고 나면 나는 물어볼 말이 없다. 이미 뼛속까지 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대답하지 않거나 궁금하지도 않겠지만, 너무 익숙해졌다. 뭘 물어봐야 하는지 갈피 잡기 어렵고, 질문이 하나 생기면 상대방이 나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올까 겁나기도, 내가 타인에게 질문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물어봐도 되는 건가 생각이 들어 망설여진다.  

본래의 성격이 속 얘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타인의 대한 관심은 많았다. 세상 궁금한 것에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도 포함되어 있었고, 호기심과 질문의 연속이었지만, 원래 무관심으로의 변화 속엔 이유가 있지 않은가? 좋은 관계의 유지는 쉽지 않고, 더 이상 손이 닿지 않아 노력조차 해 볼 수 없는 엔딩도 생기기 마련이다. 깔끔한 관계를 추구한 방법 속에도 그 이유가 처음부터 정해진건 아니다. 상처받을 바에 벽을 높이 세우고, 문을 열어주기보단 원하면 들어오고 언제 다시 나가도 신경 쓰이지 않는 관계를 만드는 게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거라 판단했다. 벽과 문을 허물기엔 이젠 나조차도 새로운 관계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은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문들이 너무 많아졌다.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다. 대화하며 안부도 묻고, 개인사도 대해 똑같이 물어보고 싶지만, 생각만 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 결국, 이런 습관이 감정을 입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방해한다. 관계에 있어 오늘 하루도 습관에 이끌려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이 마무리된다. 오랜 시간 동안 국민 MC로 활동 중이신 유재석 님은 관계에 대해 많은 관리를 하신다, 모든 이유가 이 때문은 아니겠지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나가지도, SNS와 카카오톡 마저 하지 않는다 밝혔다. 개인적인 관계를 포기하면서도 연예사는 도움을 받고 존경을 표하는 사람이 많으며,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성공한 사람이라 불린다. 똑똑한 분이기에 부족한 나와는 고민의 깊이마저 다를 수 있지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라 칭송받는 사람은 관계에 있어 어떤 외로운 싸움을 했을지 궁금하다. 자신의 기준을 세워 남도 나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어려움과 속내에 대한 고민은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지, 단순해 보이지만 너무 견고해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나에게 생각이 복잡한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복잡하게 얽힌다. 냉소적에서 한 없이 따뜻한 사람으로의 변화는 미세한 차이지만, 그런 극적인 변화는 홀로 외줄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과 같다. 바람이 멈추면 다시 올라가고, 언젠가 끝까지 스스로 올라가거나, 올라가라고 도움을 받을지는 끝나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시나리오니, 지금의 에피소드를 완성하려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내가 추락하는 길을 걷더라도, 다시 올라갈 힘을 만들길 바란다.


관계에 지치거나 재정립이 필요할 때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앉아 쉬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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