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야 하는 것

by 훈연

중요한 시기니까 엄마가 꼭 있어줘야 한다.
아이의 학습 습관이 처음 자리 잡는 결정적인 시기다.

초등학교를 앞둔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되는 첫째를 둔 나에게,

이 말은 유독 무섭게 다가온다.


일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내가 얼마나 일을 좋아했는지는
잃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출산과 육아를 반복하며 아이가 주는 행복과는 별개로
설명하기 어려운 우울감이 찾아왔다.

복직 후 몸은 늘 피곤했지만,
정신적인 자유와 해방감,
다시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나는
그 피로를 충분히 견디게 했다.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어쩌면 엄마가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이름이 무엇인지 따질 새도 없이

아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아이만 바라보며 사는 삶이
나에게 주는 의미와는 별개로,
내면의 생기와 활력을 조금씩 앗아간다는 사실은
씁쓸하고도 슬프다.

내 안의 모성이
겨우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런 죄책감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닌다.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이의 일정을 빼곡히 적어 내려간다.
이제 겨우 여덟 살이 된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미안해하면서도,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려는
나의 이기심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아이와 손을 잡고 등원하며
학교에서 할 일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
하원 시간에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기다려주는 일.

조잘조잘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미소로 맞장구쳐 주는 그런 하루를
나 역시 꿈꿔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남편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여보, 그냥 일해. 당신을 위해서.
아이들은 어떻게든 될 거야.
한 달만 지나도 적응할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말은 잠시 나를 위로했지만,
내 선택에 온전히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는 못했다.

그 한 달이,
아이에게는 가장 필요할 시간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잃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출근을 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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