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를 옥죄는 것
'본교, 청렴교육 자가학습 이수실적 관련하여
본교 교직원들 이수실적이 어마어마하게 안 좋은 듯합니다!!!
- 000도교육청 감사관 공문 시행 중!!
공무원으로서, 필히 이수하셔야 할 아주 중요한 연수임에도 불구하고, 연수 이수실적이 극히 저조한 것은 모두가 본인의 불찰에 해당될 수 있사오니, 특히 관심 있게 자가 연수를 실천하여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보고 기한이 있어서, 연수실적 이수 현황 제출합니다.
누락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여 주십시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생전 시도해보지 못했던 원격 온라인 수업을 준비해야 합니다. 급조해서 만든 난해한 EBS 온라인 수업 플랫폼 이용 방법 숙지하랴, 관련 장비 신청하고 방법 익히려 정신이 없던 와중이었습니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 느닷없이 당장 청렴교육 연수 실적을 올리라는 교감의 지시성 메시지가 날아옵니다. 아마 교육청 감사관실에서 청렴교육 연수 현황을 체크하다 교감에게 메시지로 연수 참여율의 저조함을 알렸는가 봅니다. 교육청 감사관실에서 학교마다 부과된 연수들의 미비 여부를 감독하고, 교사들에게 현실성, 유효성 여부에 상관없이 요구하고 있고, 그 시행 여부를 감독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참 무의미한 행정입니다. 더불어 연수 선택에 대한 교사들의 자율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연수 내용이라도 들을만한 내용이면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학교 현장의 교사들에게 무슨 ‘청렴’을 요구해야 할 거리라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자들이 주는 커피 한 잔도 못 받게 되어있고, 부모들도 음료수 한 잔 갖다 주지 못하게 돼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는 실정일진대, 가뜩이나 급변한 코로나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정신이 없는 교사들에게 실효성 1도 없는 ‘청렴’ 교육 연수를 받으라고 요구하는지 영 이해가 안 됩니다. 교사의 수업 전문성과 전혀 상관없는, 하지만 교감이 언급했듯이 '공무원으로서, 필히 이수하셔야 할 아주 중요한 연수'이자 '무의미한' 연수실적을 올려야 하는 것이 우리 교사들의 현실입니다. 교육청과 교육청에 종속된 관리자와의 완벽한 행정적 콜라보, 그리고 수업보다도, 교사로서의 전문성 보다도 행정적 지시와 실적이 우선시되고 있는 학교현장입니다. 결국 공무원인 교사들이기에 무의미한 시간과 에너지를 당연히(?) 낭비해야 합니다.
‘교사의 공무원화’는 전문직이라고 하는 교직을 전문가답지 않도록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연륜이 깊어갈수록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교육의 영역에서는 연륜과 전문성과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져야 합니다. 물론 수업에 전념하는 일부 연륜 있는 교사들의 모습은 전문가 다운 포스를 품어냅니다. 문제는 이런 교사들의 모습은 거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거꾸로 연륜이 깊어갈수록 교사로서의 전문가가 아닌 서류에 익숙하고, 완벽한 행정가로서의 전문가가 많이 뜨입니다. 특히, 교감, 교장의 길을 가는 교사들이 더욱 그렇습니다. 과연 이들이 서류에, 그리고 공문에 철저한 만큼 아이들에게, 그리고 수업 전문가로서의 철저함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부러워하며 배우려고 하던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이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도 바로 교사다움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교사의 자율성, 그리고 학교의 완벽한 자치화를 보장받은 결과일 것입니다. 핀란드 교육의 핵심은 가장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외하곤 교사들이 교육과정, 수업 운영, 학생 지도 등에서 교육당국으로부터 완전한 자율성을 갖습니다. 즉, 학교와 교사에게 예산 배정 및 운영, 교육과정, 교재 선택, 심지어는 평가 기준까지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사가 교육 내용도 자율적으로 정합니다. 우리 같으면 교사의 성향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교육의 편파, 왜곡 가능성을 우려한다며 야단들을 떨겠지만, 이러한 위험성조차도 그저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믿을 따름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핀란드 학교에는 꼭 가르쳐야 한다는 검정 교과서가 없을 뿐 아니라, 상급기관의 학교 시찰이나 교원 감독, 평가 등 우리 학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스템들도 없다고 합니다. '한 명도 낙오되지 않는 교육'이라는 목표만 동일할 뿐 교육의 모든 과정은 외부의 평가나 간섭 없이 오직 교사와 학교의 자율성에 맡겨집니다.
내가 바라는 바는 불가피하게 재정적 지원을 받지만, 다른 선진국들처럼 교사는 공무원화 되어서는, 그리고 공무원처럼 감독, 통제받아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미성숙한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비전형적이고 가변적인 영역에서 온몸으로 부딪쳐가는 교사들에게 공무원화, 공무원의 규정 등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교육 본연의 모습과는 너무 괴리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이익에 민감한 일부 젊은 층의 교사들은 교직에 대한 인식이 교육자로서의 소명의식보다는 이미 행정적, 서류적 관행에 익숙해져 급속하게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서류작성이 더 우선적이고, 더 당연한 업무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교사들도 많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으로 교사들을 옥죄고 가둠으로써 교사의 정체성을 소멸시킬 뿐만 아니라, 교직에 대한 인식 자체를 아예 전환시켜 버리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공무원화된 교사의 인식 속에는 진짜 공무원처럼 ‘교육’보다는 ‘성과’와 ‘보신’ 위주의 복종적 객체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사들이 공문이나 상위 기관의 지시나 명령에 익숙해져 이제는 잘못된 것임을 알고 투덜대면서도 ‘공문으로 내려와서..’, ‘관리자가 지시해서...’라며 마치 불가항력적인 외압으로 받아들이며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사들이 ‘교육적 당위성’을 고려하기보다는 행정적 지시에 무조건 순응하고, 수업보다도 서류가 우선시 되는 '공무원' 다움의 습관화입니다. 결과적으로 교사의 공무원화는 오히려 교사의 정체성에 관한 관념 자체를 유실시켜 버리는 결과를 가져와 학교 현장의 교육적 변화와 개혁에 대한 인식과 노력을 아예 사장시키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