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를 옥죄는 것
'어, 종 쳤네!.‘
바쁘게 업무처리를 하던 교사가 교과서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업무처리가 주가 되고 수업이 부가 되어버린 학교 현장 교사들이 자주 보이는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 교사들은 잡다한 업무들이 우선이고, 수업 연구나 아이들 지도는 시간 나면 겨우 합니다. 교사들의 주 업무가 뒤바뀌어 버린 요지경 학교 실태입니다. 오죽하면 ‘수업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자조 어린 농담을 던지며 수업을 들어가곤 합니다.
'아니, 왜 그런 일을 교사가 하고 있느냐?‘
인터넷 통신비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 학부모가 지원비를 못 받았다며 정보담당 교사와 한참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나니 옆에 있는 교사가 한마디 합니다. 교사의 업무를 구별하여 교사 일이 아니라고 교사 입에서 나온 경우는 처음 듣는지라 조금 놀랍기도 하면서 반갑기도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학생 교실지도, 수업준비, 수업목표 설정 및 전달, 교수방법 개선, 진로지도, 과제물 준비 및 평가, 개별적 추가 도움 등.'
미국 공립교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대략적인 수업 외 업무입니다. 학생 지도와 수업에만 교사의 역할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내가 관찰한 미국 학교의 교사들도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 하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하다못해 자기 수업 시간에 출석하지 않은 학생을 체크만 해서 행정실에 넘기면 행정실에서 그 학생이 왜 늦는지, 왜 안 오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전화를 합니다. 미국에 있을 때 딸아이가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미처 학교에 연락을 못했더니 행정실에서 왜 늦느냐고 바로 전화가 옵니다. 왜 행정실에서 전화가 오는가 자세히 알아보니 교사들의 업무를 보조하는 행정 직원들만 2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교사는 오직 자기 수업에 출석한 학생들과 수업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사들의 시간은 수업 준비, 수업, 학생들과의 함께하는 시간, 동료 교사들과의 협의 등에 사용되어야 하는데, 현재 교사 업무량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을 진행할 수 없다.'
우리 교사들의 주장 같지만, 우리보다 교사 업무에 선진국으로 보이는 호주의 교사들이 24시간 파업을 하면서 내건 주장입니다. 교육 선진국으로 보이는 나라에서도 교사들에게 부여된 잡무들이 상당한가 봅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보다 덜 하면 덜했지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나라의 교사들조차 교사 업무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다 합니다.
청소도구 및 쓰레기장 관리도 교사 몫?
도간 이동 방식을 통하여 지방학교로 내려오면서 낯선 이방인 교사에게 맡겨진 업무는 다른 업무와 함께 청소업무가 추가로 배당되었습니다. 학교 전 구역에 대하여 청소 배정을 하고, 필요한 모든 청소도구들을 파악하여 주문하고, 학기 초 전체 학급에, 그리고 수시로 필요하다면 청소용구 창고를 왔다 갔다 하며 청소도구를 나눠져야 합니다. 더불어 청소시간에는 쓰레기장을 감독하면서 매일 각 반에서 나오는 분리수거품들과 쓰레기들을 받아서 정리하고 처리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봉사시간을 준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참가하게 하여 분리수거 및 쓰레기 정리를 하게 합니다. 업무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하면서도 청소도구 신청 및 관리가 교사의 업무로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아이들 청소가 교육적 활동이니 교사들이 관리해야 한다는 조금 억지스러운 합리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여기 지방학교로 내려오기 전 근무했던 서울 학교에서는 학급 청소를 제외한 모든 학교 청소 및 청소도구 관리를 외부 업체에 맡겼던 기억이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 들어 예산 내려오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교육예산이 남아도는 것인지, 또는 자체 교육감들의 실적을 쌓기 위한 선심성 예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본적 교육적 인프라를 구성하는 비용이기보다는 대부분 일회성 행사나 활동에 투자하라는 돈입니다. 돈 내려오는 게 너무 많으니 더불어 교사들의 업무도 배가됩니다. 내려오는 돈을 다 써야 하니 담당 교사들 간 야단들 떱니다. 내 돈 써달라고. 돈 써달라는 소리는 그만큼 활동을 더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보니 교사들이 기피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교사들이 기피하는 것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 활동이 아니라 교육 활동에 수반되는 부수적인 업무들, 즉 계획서 작성하고, 소용되는 비용 산출해서 품의 요구서 올려야 합니다. 목적 경비로 내려오는 예산은 어떻게든지 끝자리 수까지의 비용을 쓸 수 있도록 맞춰내서 활동 계획을 짜야하고, 활동이 끝나면 정산서도 써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머리를 쥐어 짜야하니 교사들 입에서 이구동성 ‘수업 준비는 언제 하냐?, 돈 내려보내지 마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서울에 근무할 때 행정 보조사 1-2명이 예산 관련 업무를 다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교육 활동을 계획하고 이행하는 것을 마다 하지 않고 다들 열심히 뛰었습니다. 2-3개 부서별 행정 보조사 1명을 배정해 주면 훨씬 원활한 교육 활동이 가능할 수 있을진대, 기본적이고 지속적인 지원보다는 일회성에 주력하는 예산들로 인하여 교사들에게 쓸데없는 업무를 하나 더 부과하는 꼴입니다.
지방의 작은 학교들은 더욱 심각합니다. 지방은 시골 구석구석 작은 학교들이 많습니다. 다음은 작은 학교에 근무한다는 어느 교사의 넋두리입니다.
'제가 작은 학교에 오기 전에 작은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에게 늘 '공부 가르치는 틈틈이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틈틈이 가르친다'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제가 작은 학교에 와 보니 그 말이 실감 납니다. 수십 명이 근무하는 큰 학교와 교사가 여섯 일곱 명뿐인 작은 학교나 공문도 똑같고 하는 행사도 똑같으니 몇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날마다 넘쳐납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학교 교사들은 교과서보다 결재판을 더 많이 들고 다닙니다....... 아이들과 수업만 제대로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요.'
갑자기 웃픈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전에 근무했었던 서울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 지도가 너무 어려워 학생부장을 정규 교사들이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기간제 계약 교사로 들어온 젊은 교사에게 학생부장을 부탁했고, 다행히 학교 현장을 잘 모르지만 의욕적이었던 기간제 교사는 기꺼이 맡았다 합니다. 하지만 두 달 만에 아예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학생 지도가 어려워서 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의외로 그 교사가 그만둔 이유는 쏟아지는 공문과 해야 할 잡무가 너무 많아서 그만두었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보았을 때의 학교 교사들, 즉 아이들만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들의 모습으로 인지하고 학교 현장에 입문했었을 텐데 막상 들어와 보니 그 모양새가 전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비록 경제적인 이유든지 무엇인지 나름 기간제 교사를 하고자 했던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그리고 정규 교사면 참고 버텨보겠지만 기간제 교사로서 굳이 잡다하고 엄청난 업무를 감당하면서까지 버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클릭 맨'
모처럼 내가 근무하는 교무실에 올라온 교장이 하는 소리입니다. 오늘 하루에만도 403건의 결재를 처리했답니다. 평교사들은 교장이 하는 일이 없다고 투덜대지만, 교장은 교장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교장이 결재하는 건수의 1/3은 아마 교사들이 올린, 2/3는 외부에서 날아온 공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사 3명 중 2명은 공문 처리를 포함한 잡무들 탓에 수업 준비 틈이 없다. 수업 준비가 부실하다.’
자주 신문기사에 언급 되왔던 소리입니다. 사실이기는 합니다. 교사들 중 아이들을 직접, 항상 돌봐야 하는 담임교사들이 가장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은 각 학교마다 비담임들에게 행정업무를 전담케 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어 그나마 담임들은 아이들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생활부 일을 맡고 있는 나도 수시로 날아오는 학생활동 관련 공문에 건너뛰거나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잘 보이는 곳에 매번 메모를 하고 체크합니다.
일 자체가 그리 복잡하거나 힘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계속 날아오는 공문 포함 잡무들로 인하여 남은 자투리 시간들을 모아서 교사의 본업인 수업연구나 학생 지도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학교 자체적으로 계획한 교육 활동들도 만만치 않은데, 외부 공문을 하나 끝냈다 싶으면 또 다른 하나가 날아오는 상황이 반복되는지라 수업이 다 끝난 시간에 남아서 차분히 정리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교사들 대부분이 정규 수업 이외 시간을 행정업무 처리에 최우선적으로 할애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인 것입니다. 시간이 나면 습관적으로, 그리고 당연하듯이 수업 연구와 아이들 지도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교사들은 시간이 나면 업무 처리에 먼저 몰입합니다.
-교육감 취임식 취소 공문
-대통령 해외순방 기간 중 공무원 공직기강 확립 및 근무 철저
-CCS방송 'CCS뉴스' 00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 및 전시회 방송 시청 안내
-[협조] 전기철도 감전 사고 예방 홍보 협조 요청
-KBS 1TV <스카우트 시즌 2> 한국 바이오마이스터고 방송 시청 안내
-00시『0000 쇼핑몰』부부의 날 기념 특별 할인 이벤트 홍보 협조
별 잡다한 공문들이 난립합니다. 새 학기 첫날 처음 부임한 보건교사에게 공문이 20여 개가 날아왔다고 중간 분류자인 생활부장이 한 걱정을 합니다. 교감에게 물어보니 몰아칠 때는 100여 개도 온답니다. 대부분 교육청에서 쏟아내는 공문들입니다. 심지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등교 일수와 수업조차도 교사들의 골머리를 썩여가며 어렵게 어렵게 조절하면서 진행하고 있는 판국에서도 아이들 참여를 요하는 협조 공문, 참여 독려 공문, 대회 참여 협조 공문 같은 부적절한 공문들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여전히 아이들 교육과 동떨어진 수많은 공문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교사가 맡지 말아야 일들이나 정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옛날에 ‘학부모 흡연율 조사’해달라는 어이없는 공문도 있었습니다.
'학교안전 종합 점검 점검 결과 제출'이라는 공문도 옵니다. 말 그대로 안전에 관한 종합 점검입니다. 아이들 안전과 연관된 '여름철 물놀이 안전 관리' 항목 정도는 그렇다 칩시다. 에어컨 등 냉방설비, 학교급식 위생관리, 학교 내, 외 공사장 안전 관리 등의 시설과 관련된 체크리스트 항목들이 대부분입니다. 행정실로 가야 하는 공문이 교사에게 옵니다. 교사가 마치 시설관리 요원이 된듯한 착각을 가져오게 하는 공문입니다. 담당교사가 난감해하며 본인이 접근할 수 없는 대부분의 항목들에 대해 행정실 주무관과 협상 아닌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내가 안타까워 교감에게 다시 넘겨서 교감 보고 행정실로 넘기라고 하라는 조언을 하지만 이리 해도 저리해도 불편한 상황입니다. 참 답답합니다. 저런 공문을 행정실이 아닌 교사에게 배정한 관리자들에게도 갑갑하고, 이를 또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교사에게도 갑갑합니다. 이래저래 어찌할 방도가 없는 교사의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