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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Nov 09. 2024

교사를 옥죄는 잡무 2

- 교사를 옥죄는 것

'교사들이 제대로 가르치고, 학생들을 열심히 생각해 주고, 부진아들을 위해 더욱더 노력해 주고, 중진 교사들이 승진에 신경 쓰거나 아예 포기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좀 더 아이들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주면...'


어느 토론회에서 유명 대학의 한 교수가 공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교사들에게 일갈했던 발언 내용입니다. 모두 다 맞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한 학자다운 소리입니다. 교사로서의 나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도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문제는 과연 이런 이론적 분석이나 통찰이 현장의 현실감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있습니다. 위의 교수의 지적은 교사들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교사들 스스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 밖에서나, 아이들이나 학부모들 모두 교사다운 교사를 기대하는 것을 충분히 인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교사다움을 유지하고, 이를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의 부실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내 판단입니다.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위와 같이 반문하고 싶습니다.

'과연, 교사다운 교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 조성을 해 주었는가?'


우리도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제36조의 5)에 학생교육과 상담, 생활지도로 교사의 직무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재로는 온갖 잡다한 업무들이 부과되고 있습니다. 특히 학교폭력 등으로 학생 생활지도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교사들은 행정업무에 치여 학생을 보살필 겨를이 없음을 한탄합니다. 교원 임용시험의 높은 경쟁률을 뚫은 상위권 인재들로 구성된 대부분의 교사들이 수업 이외에는 주된 업무로 공문 처리나 잡무를 처리합니다. 본업인 수업 준비 및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 수업연구나 준비도 제대로 못한 채 가장 간편한 교과서에 의존하여 '지식 전달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잡무에 치인 교사들이 수업연구보다는 교과서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명분입니다. 


교사의 위상은 교사들이 하는 일에 따라 달라지고, 일의 수준에 따라 교사의 모습이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교사의 낮은 사회적 지위로 교사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 안에서조차 교사들을 구차하게 만듭니다. 지방에 내려와 보니 심지어는 남자학교인지라 여교사 화장실은 여교사들이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화장실 불법 카메라 점검도 교사 몫인 때가 있었습니다. 교사들에게 부과된 이러한 부적절한 업무들은 교사들의 자긍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교사의 업무가 교사다운 교육적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활동들, 업무들을 통해서 이 역시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상실하게 만들고, 결국은 교사다운 모습을 갖추는데 역기능을 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단지 수업하고 아이들 생활지도라는 교사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교사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력을 스스로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 교사들은 학교의 전근대적으로 정형화된 틀과 잡다한 업무 처리로 인하여 정작 중요한 학생들의 생활 및 교육 문제는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본업에 집중할 틈이 없이 잡무에 지쳐 그저 탈 없이 하루를 보내자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버립니다. 더 나아가 업무만 잘 때우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거나, 오히려 능력 있는 교사로 인정받는 현 교직 풍토에서는 업무 이외의 본업에는 무사안일로 대처하는 매너리즘을 형성케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때때로 '학원 강사보다 못한 교사'라는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교사의 일상을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학원 강사와 교사의 시간 할당만 보면 왜 교사들이 학원 강사보다 못할 수밖에 없는지를 금방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학원 강사는 교재 선택부터 자율적이고, 잡다한 업무 대신 거의 모든 시간을 아이들과 수업만을 위해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사는 어쩌면 그 반대의 시간 할애로 고전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교사들이 항상 불만을 갖고 있는 것처럼, 교사들이 본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사 행정업무만을 전담하는 행정 직원들을 채용하여 배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려오는 돈들을 보면 예산은 될 것 같은데 교사들이 너무 편해질까 봐 안 해주는지, 그렇게 해줘도 교사들이 제대로 본업에 충실하지 않을 듯해서 안 해주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옛날에 교원평가 시행을 앞두고 불편해진 교사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정부가 교사 수도 대폭 늘리고, 행정 직원도, 학생들의 성적 입력을 대신하도록 할 전산요원도, 공문 처리 등 행정 잡무를 맡길 업무 전담 요원도 뽑아 잡무를 맡긴다는 발표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변화됐는지 인지하지 못하겠습니다. 하긴 교사도, 교사들 주변의 교감이나 교장도, 그리고 관계된 기관들도 교사의 본업이 무엇인지를 망각한 지 오래이니 먼 할 말이 있겠습니까?



 ‘수업은 못해도 절대 표시 나지 않지만, 공문은 보고 안 하면 큰일 난다.’


어느 교장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본말 전도(本末顚倒) 현상이 당연시되고 있는 학교 현장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무의미한, 그리고 쓸데없는 공문들이 수없이 쏟아집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교육청에서의 공문 남발이야 어쩔 수 없다 치지만 학교에서만큼은 제일 처음 받아보는 관리자들이 교사들이 꼭 처리해야 하는 공문인지 먼저 선별이나 제대로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공문을 처음 받고 살펴보는 관리자들 입장에서도 무의미한 공문들, 교사들에게 무리가 되거나 부담이 되는 공문이라 판단되면 커트할 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마인드를 가진 관리자들에게 이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일 것입니다. 


거의 모든 공문들이 공문 관련 최종 담당교사에게까지 내려보내집니다. 중간 단계인 담당업무 부장이라도 적절한 판단을 해서 커트해 낸다면 담당교사까지 내려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불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중간에 커트하지 않습니다. 무의미한 공문일지라도 교장, 교감에게 종속된 모습을 보이는 대부분의 부장들이 관리자가 자신에게 내려보낸 공문이니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제일 밑에 위치한 말단(?) 교사들은 엄청난 부담감과 함께 쓸데없는 고민을 하거나, 마지못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실행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나 같은 경우야 한번 보긴 봅니다. 그대로 일괄처리해버리거나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간혹 가다 내가 맡아야 할 업무가 아니다 싶으면 교감에게 다시 보내서 재배정 요구까지 합니다. 간단하고 당연한 듯 보이지만 이를 행하는 교사는 미운털이 박힐 것을 각오하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소매 긴 옷을 입으면 춤을 잘 출 수 있고 재물이 많으면 장사도 잘할 수 있다.'


여건이 갖추어지면 잘할 수 있고, 일이 잘 풀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속담입니다. 교사들 탓만 하기 전에 교사들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고 있는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강조하는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최우선 방향은 교사 본연의 업무인 학생들과의 교육 활동과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 여건을 우선적으로 형성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교사들의 고충을 인지하고 시·도별로 교육 환경의 변화를 시도하려는 노력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교류되는 교사들의 소식에 의하면 모 지역은 교사들의 에듀파인(회계관리 온라인 시스템)을 모른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예산 관련 잡무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자잘한 행정적 조치들은 교사들 대신 모두 행정실에서 감당하기로 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육감이 직접 나서기도 합니다. 상급 관청이나 교육부에서 교사들에게 불필요한, 또는 비교육적(?) 공문이나 행정사항이 내려와도 가능한 교사들의 수업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교육감의 판단으로 거부하고 현장 교사들에게 내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무지원팀과 함께 교육청 외의 기관에서 학교로 직접 발송하는 문서를 차단해 교육청에서 먼저 걸러낸 뒤 학교로 보내는 ‘문서필터링제’도 운영합니다. 수업활동에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100개 이상의 사업도 폐지하고, 연구학교도 크게 축소합니다. 


서울의 어느 학교에서는 교사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전담 직원을 채용하여 공문 처리뿐만 아니라 시험 관련 업무, 봉사활동, 방과 후 업무, 심지어는 수능 관련 업무도 대신함으로써 교사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업무들을 처리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또는 교사의 교과활동과 생활지도 등 직접적인 교육 활동을 제외한 업무를 줄이기 위해 교감이 운영 총괄을 맡고 비담임 교사나 교무행정 보조인력 등이 함께 공문 처리 등 교무행정만을 담당하는 학교도 생깁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함께 교육과정 시간표를 짜고, 공문을 작성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교사들에게는 수업의 질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가능한 교사들의 수업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이런 교육청, 이런 학교들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교 학점 이수제 등의 새로운 정책들에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정책 던져놓고 교사들의 헌신만 기대하지 말고 우선 교사들이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길, 그리고 ‘일 잘한다’라는 소리가 아니라 '수업에 관한 지적'을 받아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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