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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Dec 15. 2024

교사 지원, 교장의 몫이다 1

- 교장이 변하면 학교가 살아난다

“스피커 키자!!”

“정말 안 켤 거야. 수업 안 한다!!”


동영상을 보여주며 수업하는 교사와 스마트폰의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해 스피커를 몰래 꺼버리는 아이들과의 언쟁입니다. 특별히 유난스러운 아이들이 몰려있는 반 아이들과의 수업입니다. 수업 시간에 동영상 시청하기 위해 작동되는 스피커에서 갑자기 소리가 안 납니다. 한참 동안 연결된 케이블 하며 장치들을 살펴봐도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들 중에 한 아이가 핸드폰의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해 스피커를 꺼버린 것입니다. 아이들이 재주도 좋습니다. 처음엔 웃으면서 주의를 줬지만 몇 번 반복되니 교사도 짜증감이 최고조에 달해 역정을 냅니다.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아이들과 씨름을 하면서도 기어코 잡아내서 혼을 내고 싶지만 다음 시간에 이어서 수업도 있고, 한정된 수업 시간에 끝까지 발뺌 빼는 아이들을 이겨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런 정황을 알고 이용하는 듯합니다. 씨름을 하는 동안 아이들의 수업 집중도는 이미 떨어져 있어 수업은 이미 종친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실제 교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차라리 이놈들과의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런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식은 모두 유사합니다. 

‘수업 종아 빨리 쳐라. 이놈들하고 빨리 헤어지자....’


이처럼 일부 철없는 아이들과의 말다툼에 교사는 지쳐갑니다. 수업 시간에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들에 수업하랴 말다툼하랴 교사 스스로 지쳐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영화에서 본 프랑스 학교처럼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를 교사가 바로 교장실로 데려다 놓고, 하던 수업을 계속 진행하는 교사, 그리고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아이를 기꺼이 맡아 상담을 진행하는 교장의 모습이 간절해집니다. 수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 수업은 해야 하겠고, 교사와의 언쟁을 희열로 생각하는 이놈들은 교사의 지도를 아예 따르려고 하지 않는, 참 난감한 상황입니다. 하긴 청소시간 끝나고 담당교사가 대걸레 정리하라 했더니 3층 유리창 밖으로 대걸레를 던져버리는 철부지들이니 무슨 말이 통하겠습니까? 


출석 일수 따져 유급이 되지 않을 정도의 일수를 채워가며 교묘하게 학교를 피해가는 아이들, 각 반 교실이 비는 시간표를 알아내서 교실을 터는 아이들, 교사의 정당한 지도까지 시비 걸고 반항하는 아이들... 이리저리 머리 쓰며 학교를 어지럽히는 아이들을 교사들이 완벽하게 대처하기에는 능력과 시간적 여유 등 충분하지 않습니다. 특히 초임교사나 경력이 미약한 교사들의 경우 스스로의 힘으로 역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러한 유형의 아이들에 대처하는 방식으로는 겨우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을 피해가는 것입니다. 


최근 기사들에는 교사들과 아이들 간의 갈등, 또한 심하게는 ‘교권 침해’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어느 교사는 수업 중 자고 있는 학생을 깨우다 학생의 신고에 의해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까지 당합니다. 단지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웠다는 이유만으로 교사의 수업 권리, 지도 권리는 인정받지 못하는, 교사들의 무력감만 팽배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육 당국도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남발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벌어지는 문제들은 어떠한 정책의 투입이나 외부의 지원으로가 아닌, 결국 학교 내의 관리자들이나 교사들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샘은 저런 아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학교 지킴이 선생님이 내가 있는 생활안전부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무단이요’를 외치며 나갔다는 아이의 학번을 적어 알려주고 갑니다. 부장 교사는 그 쪽지를 받아들며 한숨을 내쉽니다. 가정 환경상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학교생활 모든 것에 불만을 표하는, 그래서 친구들과 교사들로부터 방치된 상태의 아이입니다. 이미 급우 폭력으로 징계 대상에 올라있는 아이입니다. 옆에 있던 교사가 나에게 묻습니다. 그 교사는 아이가 학교가 힘들고 답답해서 저러니 차라리 자유롭게 해주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랍니다. 자유를 주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담임이나 생활부 교사가 수업에다 여러 명의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아이 하나만을 끌어않고 지도하자니 너무 힘듭니다. 환경적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단기간에, 그리고 간헐적인 교사의 교육적 접근만으로 설득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문상담 교사가 전담하여 수시로 아이와의 정서적 교류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교사보다 효과적인 교장, 교감이 자주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들어주며 다독거리고 배려해 주는 교육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봅니다. 아이들 문제는 관리자와 상관없는 교사들의 업무일 뿐이라고 여기는가 봅니다. 오늘도 복장이 조금 난해한 아이를 발견하곤 학생부로 데려옵니다. 수업을 끝내고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 교사들에게 밀어 넣습니다. 교장이라는 자리가 교사들보다 더 바쁘고 힘든 것인지 모르지만 참 궁금합니다.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왜 직접 지도하지 않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위치에서 아이를 직접 상대하고 지도하는 것은 체면 손상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네가 교장 되면 해봐라.’라는 반박이 나올듯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교장이나 교감도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교사에 불과합니다. 관리자들도 학생지도에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긴 결재 서류에 교감을 포함한 인솔교사들을 교사로 통칭해서 진술했더니 교장, 교감은 교사가 아니라 교원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다시 작성하라고 했답니다. 교사와 관리자는 직급이 다르다는 것이겠지요. 어떻게 부르든 교장이나 교감이 됐다고 해서 학생들을 직접 지도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선진국 학교에서는 교장이 아이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하며 일부러 수업까지 한다는데 우리는 이런 당연한(?)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하긴 교사들에 대한 당연한 복지 제공도 대부분의 교장들이 자진하여 베풀어주는 것을 꺼려하는 듯 보입니다. 대부분 지방 고등학교들은 30여 년 전과 동일하게 여전히 야간자습을 밤 10시, 11시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학년부에 속한 대부분 교사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그 시간까지 남아서 학생지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나와 동료는 밤 10시까지 전체 층에 불이 켜져 있는 교실들을 보면서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 같다는 말을 나누곤 했던 상황입니다. 문제는, 지방 첫 학교에 와보니 밤늦게까지 아이들 지도에 헌신하는 교사들이 초과근무를 달면서도 석식 비용을 교사 개인이 지불해야 합니다. 서울에서는 초과근무를 신청하면 석식을 무료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학교 석식 메뉴가 맘에 들지 않으면 학교 근처 식당에 가서 사 먹을 수 있도록 매식비 배려까지 하고 있는 여건과 비교하면 너무 화가 나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 지도에 최선을 다하도록 물심양면 더 해줄 것을 찾아서 지원해 주어도 모자라는 판에 제도적으로 당연히 보장받을 수 있는 지원조차도 교사들에게 베푸는 것을 아까워한다는 것입니다. 이의 제기를 한지 몇 달 만에 특근매식비 예산으로 돌린다고 각 부장들이 남는 예산을 빼내느라 부산을 떱니다. 당연한 지원조차 하나하나 이렇게 부딪쳐야지만이 겨우 받을 수 있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참 어려운 관리자의 처신입니다.


우리 교장들은 서류상의 허점을 발견하여 지적하는 정교함을 보여주면서도 정작 교사들이 무엇에 힘들고, 무엇을 지원해 줘야 하는지 파악하는 정교함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서류작성이라는 부수적인 것에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교사들의 고충을 파악하고 이해하여 아이들을 위한 교육 활동을 신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교사 지원적 관점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듯 합니다. 그러면서 단지 서랍 주변에 약간의 긁힌 흔적이 있을 뿐인 교장실 책상은 바꿉니다. 누가 봐도 아무 이상도 없는 번듯한 교장 책상이 밖에 꺼내져있으니 지나가던 교사들, 하다못해 일하던 주무관까지 혀를 끌끌 찹니다. 교사들의 의자는 끼억끼억 소리가 날 정도이지만 아무 소리 못하고 사용하고 있는데, 교사들의 의자 먼저 바꿔줄 생각보다는 잠깐 있다 가는 자리에서 왜 이렇게 자기만의 궁전을 꾸미려고 기를 쓰는지 안쓰럽습니다. 교사들이 바라는 교장 역할이란 교사들 위에 군림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과 소통하면서 교사들이 원하는 것, 필요한 것들을 파악하고 메꿔주려고 하는 지원적 자세를 갖춰달라는 것입니다. 아니, 최소한 교사들의 고통, 그리고 힘들어 하는 것에 공감할 수 있는 교장, 교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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