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필로그 1: 교장이라도 먼저 변하자

by 무상

‘선생님들의 수많은 열정과 노력을 평가하여 등급을 나누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일 것입니다.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이기에 어떠한 결과를 받아도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제도적으로 상대평가를 하여 등급을 나눌 수밖에 없었으며, 그 상대평가라는 것이 선생님의 노고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단순한 수치만의 계량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성과상여금 결과에 대해 이의가 있으신 분은 6월 3일까지 이의 신청서를 작성하셔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행복하시길 빕니다... ’


왜곡된 교사 성과급 평가제도 하에 교사들의 입장에서 보듬으려고 노력했던, 그래서 교사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던 교장의 메시지입니다. 지난 학교들에서 성과급을 주기 위한 1년 교사 평가 결과를 ‘당신의 등급은 B입니다.’처럼 달랑 문자로 던져주고 끝났던 삭막한(?) 상황을 겪어본 교사들 대부분에게는 아주 생소한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대부분 권위적인 관리자들만 겪어 보았기에 교사들의 마음을 보듬는 작은 메시지에도 교사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어차피 관리자와 교사들은 지위, 역할에 따른 주안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이 완벽히 일치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교장과 평교사들이 동일한 교육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동반자라는 입장,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만 인정해도, 그리고 교장이 교사들의 입장에서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만 갖추어도 교사들을 움직이게 하는데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대부분의 성공한 기업가들도 직원들과 ‘공감’을 가장 우선적으로 꼽습니다. 지시하려고 하지 않고 들어주고, 인정해 주기만 해도 그 직원은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학교현장에서 이 정도의 교장을 만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30여 년 근무하면서 처음이었습니다.


앞에서 공모 교장이 된 친구의 모습을 언급했습니다. 교장이 되어서도 아이들과 교사들을 위한 배려와 지원하기 위해 보·결강 수업 등에 교사들 대신 기꺼이 들어가 아이들과 소통하고, 아이들과의 활동에 같이 참여하며 아이들과의 상담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학급에서 더욱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을 담임들에게 보내달라 하여 동아리 활동까지 맡았던 친구입니다. 우리 교사들이 그렇게 바라던, 아이들을 위하여, 그리고 교사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고군분투하는 교장의 모습입니다.


교직에 있으면서 항상 롤 모델로 삼았고 실제로 찾아가 연구까지 해보았던 거창고도 교장, 교감이 모두 수업을 합니다. 교장, 교감이 교사들과 아이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즉, 관리적 기능보다는 교사들을 감동시켜 교육적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더욱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교장, 교감과 함께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명문고로 성장한 거창고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학교혁신을 이끄는 교장들은 대부분 아이들과의 교육활동이나 수업에 참여하여 아이들과 접촉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합니다.


이처럼 교장은 교사들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에서의 교육활동 주체가 교사 들인 만큼 교사들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기존의 교장의 권위적 지도, 감독이나 일방적 지시 등으로는 교사들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기존의 권위적, 일방적 지시가 교사들의 '몸'만을 움직였다면, 이제 진정한 학교 변화를 위해서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본업에, 즉 단순히 '업'으로서가 아니라 '업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는 교사들은, 제도적 모순과 폐해가 교사들의 의욕을 억누르고 옥죄고 있을지라도, 교장이 교사들의 바람직한 활동, 노력들을 인정해 주고 지원해 주고, 아니 최소한 격려만이라도 해준다면 대부분의 교사들은 감동하여 아이들을 위한 본업에 더욱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관리자들이 자기의 입장을 과감히 버리고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임할 때 대부분의 교사들이 인정하고 존중하는 교육자 교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즉, '인간적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사들과 교육 활동에 동참하여 어려운 부분을 감당해 준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교사들의 전문성을 향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교장의 전문적 능력이 요구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인간적 권위 이외에 '전문적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사 승진제도로는 기대할 수 없는 능력이지만, 교장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여 교사들을 압도하는 전문적인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장의 전문적 능력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교사양성제도나 재직기간 동안의 연수제도로는 교사들의 전문성을 향상하기에는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학생지도 능력이나 수업 능력 등에 관한 전문적이고 심화된 연수 기회가 제공되지 않고 있음에 이러한 교사들을 향상할 책임을 맡을 수밖에 없기에 더욱더 교장의 전문적 능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정치, 경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교육제도의 개혁을 막연히 기다리기에는 막연한, 그리고 교사들 힘만으로는 개혁 자체가 불가능한 우리 현실에서는 그나마 학교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학교장이라도 먼저 변해야 합니다. 즉, 단위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최우선 방법은 교장이 변화의 촉진자로서 롤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권위주의적이고 관리 위주의 학교 경영과 마인드에서 벗어나 스스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단위 학교의 내적 활성화를 촉진하고 동시에 교사들로 하여금 당연한 의무를 신명 나게 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교장 하기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교장이 관리적 자세를 탈피하고 이렇게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담임이나 아이들을 위한 교육 활동을 힘들다고 미루거나 마다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장의 변화된 모습, 역할이 교사들의 마인드를, 그리고 학교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물론 작금의 학교 실태를 모두 교장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학교를 혁신하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들 모두 현재의 학교교육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단위학교의 실태에 기초한 개혁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개혁에 피동적으로 끌려다녔기 때문입니다. 누누이 학교조직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처럼 단위학교의 관리자들이 개인적인 철학이나 능력을 떠나 관리적 관점을 최우선으로 치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상명하달의 위계적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장 임명 및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상급기관이 단위학교를 평가, 감독하고 통제하고 간섭하는 한 관리자들은 결국 이들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학교를 다녀본 누구나 경험하였듯이 교장, 교감보다 직급이 낮은, 하지만 교육청에 속해있다는 것만으로 장학사가 온다고 하면 수업을 제치고 아이들을 동원하여 학교를 청소해 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상급기관의 위용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교사들, 아이들만을 바라보고 교육적이고 창의적으로 학교 운영을 하기보다는 위로부터 지적받지 않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운신하고자 하는 낮은 자세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자치가, 그리고 학교 변화나 개혁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교육개혁을 위하여는 가장 우선적으로 아래로부터 학교 개혁이 가능할 수 있는 제도의 확립이 시급합니다. 대부분 선진국들의 교육 기조는 교육의 책무성을 일차적으로 단위학교에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장 선발부터 학교평가까지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제도적 기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의 교장들이 교사, 학부모, 아이들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상급기관의 감독,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교장 선발 및 학교 활동 평가 등 모든 기능이 단위학교 자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자율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즉, 관리적 기능 위주에서 탈피하여 오직 교사들과 아이들을 바라보고 노력하려는 교육적 기능이 최우선적으로 작동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1989년 교육개혁을 단행한 뉴질랜드처럼 교장의 상급기관으로 단지 학운위만을 두고, 교장은 매달 학교경영보고를 학운위에만 하면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학교 단위 자치교육을 확립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사 및 교장 임용, 교육과정, 학교정책, 수업 및 학교 평가 등 학교 교육 활동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완벽한 학교 단위 자치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학교 자치만이 교육의 질, 교사의 질 모두를 향상시킬 수 있는 확실한 보장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학교 지원 시스템이 하의상달식, 즉 학교장의 선발까지 포함하여 단위학교 자치경영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가능한 얘기입니다. 그래야 교사들이 신이 나고, 책임지는 교육을 할려고 할 것입니다.


또 다른 대안은, 설혹 제도적 한계로 인하여 교장은 관리적 관점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개혁적이면서도 유능한 교사들을 발굴하여 이 교사들로 하여금 교사들의 리더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학교마다 이러한 리더 격의 교사들은 항상 존재하고, 이들은 나름 자의 반 타의 반 다양한 간접적인 과정을 통해 다른 교사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교사들의 식견과 수업방식, 그리고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및 지도 방식 등은 은연중에 다른 교사들에게 모범이 되거나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식하고, 관리자들은 이들을 부각해 공식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름하여 '프로젝트 팀'을 만들고 이들을 리더로서 활용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관리자들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 다른 교사들의 호응과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현행 제도 내에서 교장이 해야 할 주요 역할은 교사들이 주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현재 학교의 실질적인 주인은 교장입니다. 따라서 교사들은 그저 자기 업무나 그런대로 해나가고 나머지는 교장이 정하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면 됩니다. 굳이 앞장서려고 해 봤자 일만 더 맡게 되고, 잘못되면 비난이나 받게 됩니다. 그러니 교사들이 학생들을 위하여, 또는 자기가 속한 교직사회를 위하여 적극적인 마인드로 기획하고, 실행하려고 하는 자세를 갖추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학교에서는 교장도 그렇지만 교사들도 현상 유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되든, 어떤 교육적 결과를 가져오든 주인이 아닌 이상 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교장이 아니라 교사들이 갖고 있는 역량을 맘껏 발휘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변화와 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여해 줄 수 있는 교장, 즉 교사들로 하여금 주인 의식을 갖게 하는 교장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이러한 학교혁신에 대한 결과가 학교평가에 반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교장은 요샛말로 ‘똑게’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앞에서 부정적으로 언급한 ‘멍부’, 즉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리더가 아니라 똑똑하지만 게으른 리더가 되라는 것입니다. 제도적 병폐나 상급기관의 통제가 있을지라도 교육적인 방향으로 학교 운영의 방향을 잡아주고 교사들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그리고 뒤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능력입니다. 나름 왜곡된 승진제도 하에서 엄청난 고생을 하고 올라간 자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고 보상심리만 작동하여 교장의 권위를 '강요'하지만 말고, 이제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이니 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교사들이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맘껏 베풀면서 제대로 된 권위를 '인정'받도록 변해야 됩니다. 교장이 변하면 교사가 감동하고, 그러면 학교 교육의 질이 높아집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교사 평가, 학생 평가가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