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 전문성
'1정 연수. 답답하기만 하다. 내용들도 구태의연하고, 강사들은 주어진 시간을 때우려고만 하고 있는 것 같고, 교수방법은 강의식 위주이고. 내용만 채워주려고 하지 이를 어떻게 다양하고 재미있게 펼쳐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접근과 실천적 활동은 찾아볼 수가 없다. 초빙되는 강사들의 자원도 항상 그 틀 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그 인물이 그 인물이고. 이는 연수 과정을 내용 위주로 채우려 하다 보니 교과 전공과 관련된 인물들에 한정해서 섭외를 한 결과인 것이다. 교사 혼자서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는 교과 내용 위주의 연수 구성이 갖는 한계이다. 교육을 위한 교사들을 길러낸다는 의식을 가졌더라면 그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다양한 교수 활동에 관한 방법론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했었다. 이를 위해서는 윤리 전공만을 넘어선 교육학자, 현장 수업 실천가 등 교육에 대한 사려 깊은 생각을 이끌어내어 줄 수 있는 그런 다양한 인물들을 포섭했어야 할 것이다.....'
교사 재임 기간 중 전문성 신장에 유일하면서 가장 중요한 1정 연수를 받으면서 느꼈던 심정을 적은 메모인 듯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 교직 경험 10여 년 지난 후 받은 1정 연수였는데 아마 그때도 연수를 들으면서 꽤나 답답했던가 봅니다. 윤리 교과 연수라고 해서 그 분야에 한정된 강사들을 배치하는 미시적인 접근은 오히려 교사들의 안목과 관련 교육 활동을 좁히거나 한정시키는 역기능을 발휘합니다. 교육을 하는 교사들이 교육에 대한, 즉 본업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갖추지 못한 채 단순한 교과교육에만 매달리고 있는 교사들을 양성하는 꼴입니다. 최소한 1정 연수에서만큼은 해당 교과만의 지식들을 전달하는 그런 좁은 역량의 교사 양성 연수가 아니라 지식들을 조작하고 이를 통해 그 분야의 깊은 식견과 지적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수업방식에 대한 심도 깊은 접근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그런 연수이어야 합니다. 내용 위주의 단편적 접근은 그 분야의 지식 전문가를 길러낼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교육전문가를 길러내지는 못합니다.
이런 답답한 경험이 나만의, 내 교과만의 경험은 아닌 듯싶습니다. 다른 교사들도 수업 방식의 변화를 위한 토론, 활동, 경험이 아니라 대부분 내용 위주의 강의식에 질려합니다. 다양한 수업방식에 대한 심도 깊은 접근은커녕 학교에서 아이들과 관계나 활동에서 발생한 다양한 문제 사례들, 그리고 아이들 문제에 대한 각 상담 사례 등 실제 사례를 적용한 케이스 스터디 같은, 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연수 기회는 제공된 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어느 대학 윤리과 교수는 윤리과가 계속 살아남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학회 회원들이 많아야 한다면 회원가입을 권유하는 설명을 강의시간 내내 합니다. 그 대학 출신 연수 동기들에 의하면 학교 현장 논문 심사위원으로 승진 점수에 목매는 교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이랍니다. 그래서 나도 ‘그만하시고 강의하시죠.’라고 브레이크를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 내용에서 벗어난 쓸데없는(?) 강의를 하는 교사를 싫어하는 아이들 마음을 알겠습니다.
교직 초임시절 국내에서는 맘에 드는 연수가 없어 미국대학이 주최하는 3주간의 영재교사 연수를 찾아 미국까지 가본 적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미국 교육학자 벤저민 불룸(B. Bloom)이 주장한 고등사고능력 6단계인 지식, 이해, 적용, 분석, 종합, 평가 등 각 단계별로 수십 개의 하위 사고 기술들로 나누어 개개의 하위 사고 기술들을 가르치는 수업을 하루 종일 3주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는 연수였습니다. 교과 내용, 즉 지식을 어떻게 비판적이고 창의적으로 조작하여 아이들의 지적 능력을 확장, 심화시킬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깨우침을 주었던 획기적인 시간들이었습니다. 교과서의 지식을 다루는 교사에게 내용 전달이 아닌 교수학습 방법의 근간을 이루게 해 주었던 아주 유용하고 심화된 연수였습니다.
이처럼 교직 기간 중 교사의 전문성 신장에 가장 중요한 1정 연수에서만큼은 깨우침까지 줄 수 있는 심화된 접근이 필요합니다. 내 경험으로는 우리 교사들에게도 이런 유용한 연수가 제공된 적이 없는 듯합니다. 지금의 1정 연수는 많이 변화, 발전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교과 내용에 한정된 전문성은 옛날과 달리 주변에 널려있는 좋은 자료들을 통하여 꼭 교과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을지도 교사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매 시간들이 분절되고 단편적인 접근에서 탈피하여 내용을 유의미하게 적용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는 심화된 교수 방식, 교사의 전문적 식견을 넓혀줄 수 있는 심도 있는 연수 기회를 제공했다면 교사들이 최소한 가르침 전반에 관한 깨우침은 얻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적극행정 교육
안전교육
정보 보안 연수
교직원 흡연교육...
개인정보보호 연수
청렴교육 연수
성희롱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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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받는 기계 같아요.'
교사로 일하면서도 맘에 드는 연수를 받아본 기억도 별로 없습니다. 한 젊은 교사가 옆에 있는 노 교사를 위해서 의무적으로 받아야 할 연수 목록들을 정리해 주면서 내뱉는 소리입니다. 교사들에 쏟아지는(?) 연수들은 너무 많습니다. 공공 기관이라서, 그리고 교사라서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강제 연수가 하루가 멀다 하고 던져집니다. 교사에게 필요한 연수라기보다는 교사가 공무원이라서 강제로 부과된 연수도 많습니다. 1년에 공무원이라서, 교사이라서 들어야 하는 강제 연수가 몇십 건이라 합니다. 교사가 되면 1년에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연수들이 거의 100시간이 넘는 것 같습니다. 인성교육, 아동학대 교육.. 등 의무 연수 20여 회, 이를 강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20여 개 이상의 법들.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모든 연수들을 이수하고 담당교사가 집계하여 보고하게 되어있습니다. 한 연수를 끝냈다 싶으면 또 치고 들어옵니다. 물론 교사들이 제대로 알아두면 일부 도움이 되는 내용일 수 있지만 주어진 교사의 전문성 신장과는 거리가 있는, 너무 잡다한 연수들이 강제적으로 부과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일부 연수는 당연히 교사들이 보지도 않을 연수 자료로 만들어 대치하고 서명만을 해달라는 방식으로 메꾸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상 이런 무의미하게 쏟아지는 연수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 교사들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 연수들이 무용하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본 교사들은 그저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합니다. 오죽하면 온라인 원격연수를 켜놓기만 하고, 그것도 두세 개 연수 프로그램을 동시에 띠워놓고 연수시간만 채우던 교장, 교감을 포함한 교사들 몇 십 명이 교육청 감사에 적발이 되었다는 뉴스까지 뜹니다. 이네들뿐이었겠습니까? 나도 연수들을 몇 개 동시에 해치워 보려고 시도했지만 시스템상으로 그렇게 못하도록 되어있다는 메시지가 뜨던데 이네들은 어떻게 동시에 몇 개를 띠우고 때울 수 있었는지 참 재주도 좋습니다.
결국 적실성 없이 효과도 기대하지 못하는 연수들을 밀어 넣는 교육청, 그리고 의례적으로 연수를 때우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느라 기를 쓰는 교사들 간의 기싸움이 벌어집니다. 내가 궁극적으로 의문을 갖는 것은 과연 이런 연수들이 교사들의 자질 향성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밀어붙이는 것인가? 이런 의례적인 교육을 그저 반복 이수만 하면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인가?입니다. 하지만 학교평가에 교사 연수 총시간을 반영하고, 교사들 인사이동에도 반영한다하니 안 들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틀어놓고 시늉만 해도 통과되는 연수에 미이수한 교사가 있으면 그 기관장에 과태료까지 부과하는 웃픈 현실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불거지면 그저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연수’입니다. 교사들의 자체적인 필요성 여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무의미하게 던져지는 연수 속에 교사들의 전문성이 향상되기는커녕 교육에 대한 집중도만 현저하게 떨어트리는 역기능만 이끌어 내는 꼴입니다.
결국 교직 기간 동안조차 연수를 통한 전문성 신장, 역시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이러한 수많은 연수들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전문성이 교사 경력과 비례하여 성장하지 않고 있음이 이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연수들이 교사들에게 충분히 유의미했다면 교직 경력이 많은 교사가 교직 경력이 적은 교사에 비해서 우수한 교사이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교직 경력이 오래된 교사가 젊은 교사들보다 전문성이 더 뛰어나다고 확신할 수 없음에 민망하기만 합니다. 우리 교직 사회가 갖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 중 하나입니다. 내 교직 경력 30여 년을 돌아봐도 1정 연수를 포함하여 교직생활 동안 제공되었던 모든 연수들 중 내가 필요한 연수, 그리고 가치 있고 보람되었다고 기억나는 연수는 없는 듯합니다. 대부분 기능적이고, 단편적인 연수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연수의 내실화가 이루어지고 있느냐, 그리고 그렇게 쏟아붓는 연수들이 과연 교사들의 자질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오히려 연수 내용의 비실용성, 비현실성 등으로 인해 교사의 전문성 향상은커녕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게 하는 역효과만을 불러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 중요한 접근은 연수의 선택 및 평가 방식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배우려고 하는 핀란드에서는 교사가 되고 난 후 교사들이 받는 연수, 그리고 평가 방식에도 우리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교사들 스스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연수 프로그램도 직접 선택하고, 토론·현장체험 위주로 진행된다 합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연수평가 방식입니다. 연수받은 교사는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 만족스럽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를 받도록 되어 있으며, 학생들의 평가는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다시 활용된다 합니다. 우리처럼 그저 던져놓고 제대로 공부했는지 상관없이 그저 형식적인 체크만 되어있으면 문제없는 연수시스템과는 천지차이입니다. 연수 선택부터 연수 과정, 그리고 평가 방식 모두가 우리의 교사 연수 및 평가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형식적이고 부적절한 평가 방식을 모두 배제하고 수업 당사자들인 교사와 아이들과의 직접적인 대면 평가 방식이라는, 요사이 우리가 말하는 ‘리얼’ 실용적인 평가 방식이 놀랍습니다. 핀란드 교육경쟁력의 최대 무기인 양질의 교사들은 바로 이렇게 양성된 결과입니다.
‘올해는 수석교사를 아예 뽑지 않는다네..’
모처럼, 아니 유일하게 교사들을 위해서 교육부가 차려준 밥상인데 제대로 먹지도 못합니다. 내가 근무하는 지역교육청에서는 올해는 수석교사를 뽑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교육청은 증원하려고 했지만 일반 교사들이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적극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교사들을 위한 제도인데 교사들이 반대합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한편으로는 서글픕니다. 교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를 교사들이 거부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앞에서 교사들 중 전문가가 안 보인다고 서술했습니다. 이 진술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수석교사 제도는 교사들을 관리직과 교수직으로 양분한 Y자형 승진 구조의 한 축입니다. 교사 재직 기간 동안 교육부가 가장 잘한 일로 보이는 것이 ‘수석교사제’입니다. 열악한 교사들의 위상과 관련하여 그나마 교사들의 지위와 대우를 향상해 주고자 요구가 제기된 지 20여 년이 훨씬 지나서 만들어진 획기적인 제도라고 합니다. 교사들 전문성 신장에 도움도 안 되면서 과도한 승진 경쟁을 완화하고, 오직 수업에만 전념해도 어느 정도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모처럼 교사들을 위해 바람직한 제도를 던져 주었습니다. 승진을 포기하거나 관심이 없는 교사들에게 수석교사라는 자리는 나름대로 상징적이면서 실질적인 최고의 위상을 제공하는 유일한 출구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주어진 밥상을 제대로 먹고 있는가, 즉 ‘과연 수석교사들은 그 위상에 걸맞은 전문성이 있으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해당 교사들에게도 좋은 제도이지만, 특히 전문적인 지도를 받을 수 없는 초임교사들에게도 수석교사들의 지도는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즉 교사들의 전문성 신장에 엄청난 활력이 될 수 있는 장치입니다. 미국에 있을 때 관찰해 본 학교에서 초임 교사는 선배 교사의 밀착 지도를 5년 동안 받습니다. 교사의 시행착오는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아이들의 성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우수한 선배 교사의 지도는 필수적이고, 그러한 점에서 다른 어느 역할보다는 초임교사들에 대한 수석교사의 역할은 막중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수석교사를 보지도 못했고, 수석교사의 필요성을 인식하지도 못하였는데, 지방 학교로 내려와 보니 수석교사의 필요성과 그 역할이 새삼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집니다. 나만의 시각이지만 그래도 서울 교사들은 배울만한 전문적인 교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방은 배울만한 교사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내가 있던 지방학교들은 초임교사들이 많이 발령받아 오는 곳인지라 수석교사의 역할이 막중합니다. 다행히 지방학교에 내려와 보니 한 학교에 한 명씩은 배치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수석교사들의 역할이 미미하거나 아예 보이질 않습니다. 지방 학교에서 지켜본 수석교사의 역할, 특히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초임교사에게 교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고, 능력을 다듬어주어야 할 역할이 너무 미미합니다. 수석교사에 대한 실질적인 역할이 너무 제한적인 탓도 있겠지만, 학교 현장에서도 수석교사에 대한 관심이나 별다른 기대 어린 시선이 보이질 않습니다. 관리자들에 대한 시선처럼 학교의 전체 교사들을 지도하고 이끌 수 있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교사들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감투만 다를 뿐이지 그저 또 다른 직책의 교사가 있구나 하고 인식할 뿐입니다. 심지어는 수석교사의 명예를 업고 자신만을 위한 요구와 형식적인 활동으로 평교사들로부터도 부정적인 인식까지 생성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제는, 다른 수석교사를 통해 들은 내용으로는, 수석교사들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특별한 심화 양성과정이 없다 합니다. 수석교사 되기 전 인정받은 그 능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합니다. 과연 일반 교사들의 전문성 진장을 위한 수석교사들의 중요성, 그리고 이를 위한 전문성을 제대로 신장시키고는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제도 역시 그저 만들어 줬으니 알아서 운영해라는 식의 생색용 제도로 전락된 듯하여 씁쓸하기만 합니다. 또 다른 교사 양성 제도의 부실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