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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혁신: 지적 성장이 필요하다 1

- 교사의 전문성

by 무상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르러 농약과 화학 비료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극심한 경제적 빈곤에 국민 대부분이 끼니를 잇는 것조차 힘겨워하고 있었다. 국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식량의 자급이었고, 정부는 국가 주도로 석유 화학 공단을 세워 농민들에게 화학 비료와 농약을 대폭 지원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975년에 주식인 쌀의 자급률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101%를 달성하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면서 사회과 동료 교사가 생태 중심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준비한 공유 수업자료 내용입니다. 이 평범한 설명문 격의 제시문에서 생태 중심주의를 강조하는 주장과 근거를 끌어내라는 문제를 제시하였습니다. 생태 중심주의를 강조하고자 하는 주장과 근거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의도를 전혀 접근할 수 없는 엉뚱하면서 단순 사실을 설명하는 설명문에서 주장과 근거를 끌어내라는 것입니다. 이 자료를 준비한 교사는 나름 오랜 연륜이 있는 사회과 교사입니다. 의견을 제시했지만, 관련된 교사들은 내가 제시한 문제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 굳이 바꿔야 하는가 하는 눈초리로 그냥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도 당황스러웠지만, 지금도 이를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보면 자료 유형이 조금 어긋난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넘어갈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교사의 역량에 대해 많은 것을 암시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위의 교사는 논리에서 말하는, 아니 상식적 수준에서도 기초라고 할 정도의 주장과 근거가 무엇인지 조차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과서 지식을 전달하는데 주력한 교사들의 한계입니다. 이러니 최고의 고등 사고 중 하나인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능력신장에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지식을 어떻게 조작하고 활용하는지 모르고 가르친다는 것은 마치 컴퓨터의 다양한 기능들과 그 활용 가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컴퓨터라는 사물에 대하여만 열심히 설명하는 형국입니다.


교육학을 배웠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인지적 영역에서의 최종 목표인 블룸(B. Bloom)의 고등사고 능력 신장은 아예 인식조차 없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수능과 직결되는 교과는 불가피하게 할 수 없다 치더라도, 최소한 일반 교과 정도에서는, 그리고 중학교에서는 지식 전달을 넘어선 접근, 교수방법이 활용되었어야 하지만 이미 공고하게 굳어진 지식 전달 위주의 교수방법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교과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항상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할 지식, 이해, 적용, 분석, 종합, 평가라는 고등사고 단계에서 항상 제일 밑바닥의 지식 단계, 그것도 지식의 활용까지도 가질 못하고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고 있는 것이 교사들의 현재 수준입니다.


교사 탓만 할 수 없는 것이 교사 양성 및 성장 과정에서 논리적 구성이란 것도, 타당한 근거들은 어떤 조건들을 갖추어야 하는지도 제대로, 또는 충분히 배운 적이 없을 것입니다. 하긴 교과서 위주의 강의식 수업 결과로 교사라는 자리까지 올라온 교사들에게 논리적이거나 고등 사고능력 신장 교수 방식은 아마 거의 접해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가르쳐 온 교사들도 지식 위주의 강의식 수업을 해왔고, 본인들도 보고 배운 수업 방식이 내용 설명 위주의 강의식 수업들이었으니까요. 그러니 무수히 많은 정보가, 그리고 거짓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구별하거나 조작,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기본 논리 교육, 기초 사고능력 신장조차 불가능해집니다.


그 결과 앞에서 언급한대로 우리나라 고등학생 학생의 2/3가, 대학생은 1/3이 스위스의 인지심리학자 피아제(J. Piaget)의 지적발달 단계 이론에서 11세 이상이면 갖추어지는 지적발달 능력인 '형식적 조작기'에 미달한다는 것입니다. 즉, 정상적인 지적발달 단계에 미달한다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시행착오적 사고 활동에서 벗어나 직접적인 경험이 없이도 논리적인 추론, 즉 귀납적 추리와 연역적 사고, 그리고 주어진 조건들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 내는 등 추상적 사고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지적 발달단계입니다. 아마 더 심하면 심했지 지금도 나아진 것은 없을 것입니다. 실제 고등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아직도 기본적인 논리없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많이 있고, 우리의 학교교육은 이 사고를 더 강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결과로 베이컨(F. Bacon)이 말한 시장의 우상 오류, 즉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만연하고 있는 논리 자체가 없는 억지 주장들을 자주 들어야 되고, 일부는 이를 무조건 믿으며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미성숙한 어른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교육 영역에서 추구하는 목표 영역들은 크게 인지적, 정의적, 신체운동 영역들로 나누어집니다. 이중 인지적 영역에서 강조하는 것은 지식을 조작하고 활용하는 능력, 즉 교육학자 벤자민 불룸(B. Bloom)이 말한 지식-이해-적용-분석-종합-평가 6단계 지적 능력 단계입니다. 이 중에서 종합 능력이 바로 창의적 사고요, 평가 능력이 비판적 사고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일종의 통합수업을 해낼 수 있는, 교사가 갖추어야 할 필수 관점이자 능력입니다. 미국 국가 과학 위원회도 이미 오래전에 발간한 '21세기를 위한 미국 교육'이라는 보고서에서 모든 학습 영역에서 문제 해결과 비판적 사고를 위한 학생들의 고등 사고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근본적인 목표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의 여러 영역들에서는 각기 다른 접근법들이 필요하지만, 최소한 지식을 다루는 인지적 영역에서만큼은 고등사고능력 신장이 목표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교과 내용 지도의 궁극적인 목표도 학생들로 하여금 새로운 지식과 기존의 지식, 또는 다른 지식과의 조작, 통합 작용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을 각 개개인에게 유용하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지적 조작 능력을 신장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교과에서 주어진 지식 그대로를 습득하는 그것만이 목적이 아닌, 그러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을, 그리고 습득한 지식을 이용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의 신장이 교과 지도의 궁극적 목적인 것입니다.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하여 모든 고등사고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핵심 능력입니다. 여러 이론가들이 지식 이상의 것을 적극적으로 조작, 파악하는 활동을 강조함도, 지식보다 많은 상위의 ‘지적 기능’들을 제시, 강조함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돼야 할 것입니다. 즉, 교과 내용을 바탕으로 한 사고 기능의 훈련은 교과 내용의 이해를 좀 더 정교화시킬 수 있음과 동시에 이해된 정보의 장기 저장을 심화시킬 수 있는 이점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정보 홍수화 시대에 요구되는 고등사고능력 신장을 위한 첫 번째 단계도 정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필요한 정보와 필요하지 않은 정보, 중요한 정보와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다음 필요에 의해 선별한 정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조작하고,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고요. 한 주제에 대하여 역사, 철학, 종교, 지리 등 관련 지식을 서로 연관시켜 새로운 관점이나 결과를 생성해 내는 것입니다. 수업형태만 바뀔 뿐이지, 인지적 영역과 관련된 어떤 수업형태이든 그 근간은 블룸의 지적 능력 각 단계별 사고 기술의 적용 및 활성화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을 조작하고 활용하는 능력, 즉 블룸의 6단계 지적 능력을 인식하고 관련된 사고 기술, 즉 지식 조작 기술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교과서 지식을 열심히 가르친들 고등사고에 도달하지 못하고 단지 단편적이고 분절된 지식 쪼가리를 던져주거나 겨우 이해시키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와 같은 사고기능들을 연구하는 고등사고 이론가들은 공부하는 이유를 추상력과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추상은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압축하는 것이고, 상상력은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읽어 내는 것입니다. 결국 안다는 것은 복잡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적인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간의 주요 차이점은 상황이 요구할 때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용량의 차이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적절한 지도로 인하여 가능하나, 모든 교과에서 모든 영역의 사고력 신장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자기 교과에 적합한 사고력 수업 방법을 선정하고, 수업에서 아이들이 지적인 모험을 강행하고, 탐구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고 노력하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브라질의 교육학자 프레이리(P. Freire)가 말하는 교사의 전문성도 아이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모순을 제대로 봄으로써 사실의 이면에 놓인 원인과 관계까지를 파악할 수 있는 비판적 주체로 만드는 능력이라 말합니다. 물론 최고의 고등 사고는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를 끌어내는 것입니다. 딸아이가 배우던 미국의 교과서를 보면 어느 교과목이든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내용 제시 후에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를 훈련하는 질문들이 항상 제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교육의 핵심은 ‘비판적 사고 기르기’라고 강조하며, 미국의 대표적인 교육평가 기관인 ACT가 실시하는 ‘대학학력평가시험(CAAP)’에 비판적 사고 능력을 측정하는 별도의 시험도 마련할 정도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기 위하여 30여 년 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팀들과 일부 교사들이 참여하여 고등사고능력 신장에 필요한 각각의 사고 기술들을 적용하여 ‘배우며 생각하며’라는 초·중 자료집을 개발하였습니다. 하지만 고생하면서 만든 그 좋은 자료가 입시와 성적이라는 틀로 인해 학교현장에서 이용되지 못하고 사장되어 온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시험만을 위한 지식주입식 교육이 아이들의 생각을 제대로 자라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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