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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혁신: 지적 성장이 필요하다 2

- 교사의 전문성

by 무상

우리가 추구하는 창의력을 아주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세 가지 수준의 문제 유형에 관한 설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시험문제 같은, '문제가 제시되고 정답이 있는' 문제 유형은 가장 기초적인 사고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문제는 있는데 정답은 없는' 문제, 즉 우리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문제들 같은 경우로서 정답을 찾는 과정을 통하여 그나마 고등사고를 길러줄 수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고등 수준의 사고는 남들은 미처 문제로 보지 않는 상황에서 민감성을 발휘하여 문제로 발견하거나 만들어내서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문제도 없고, 정답도 없는' 문제 유형 즉, 없던 문제를 만들어내서 해결해 내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찬란한 문명을 이끌어낸 사람들의 능력이자 미래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창의적 능력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교육의 인지적 영역에서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할 능력입니다.


아주대의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네 반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원, 밥그릇, 나무 막대기, 철사 등의 물체를 가지고 들어가 실험을 합니다. 정확히는 각 반마다 조금씩 다른 처치를 하였지만 크게 나누어 한 그룹인 앞 두 반에서는 먼저 마음에 드는 물체를 5개 고르라 한 후에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어라는 요구를 합니다. 다른 그룹인 뒤 두 반에서는 반대로 먼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상상해 보라는 요구를 먼저 합니다. 그러고 나서 물체들을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물체를 5개 고른 후 먼저 상상한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라는 요구를 합니다. 이 반 아이들이 아주 난감해하면서 끙끙거리며 먼저 상상한 것에 맞추기 위하여 자신이 고른 물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자신이 선정한 그 물체들로 자신이 꿈꿨던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죠. 이후 세계 창의력 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수상한 팀들에게 앞 두 반과 동일한 접근을 하고, 실험그룹인 뒤 두 반의 결과와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일반 아이들로 이루어진 실험 그룹 뒷 반의 결과물들이 창의, 혁신, 개성, 독창성 등 모든 영역에서 세계 창의력 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수상한 팀들 보다도 훨씬 우수한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아이들에, 동일한 물체들을 제공하고 접근 과정의 순서만 바꾸었을 뿐인데 결과물이 엄청나게 차이가 났습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덧붙입니다. 능력이 만들어내는 변수보다 상황에 의한 영향력이 훨씬 더 크다고. 이 실험을 해석해 보면 작게는, 동일한 내용에 교사가 던지는 질문 순서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크게 보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내용일지라도 교사의 관점, 접근 방식의 변화에 따라서 수업, 더 나아가 교육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과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그 내용을 다루는 방법, 역량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미국 코네티컷 대학에서 매년 영재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등사고능력 3주 연수과정을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시험문제 낼 때만 체크하는 이원목적분류표, 그것도 지식, 이해, 적용 칸에만 의례적으로 체크하고 있던 영역들에 다양한 사고 기능들이 훈련하고, 이러한 사고기능들을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 등과 연관하여 하나하나 제대로 훈련시키던 연수였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교과서 위주의 지식만을 강조하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나에게는 어떻게 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능력 신장을 모두 아울러 고등 사고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가에 대한 식견을 넓혀주는 아주 좋은 기회이었습니다. 간판이 ‘영재교사 연수’이었지 아마 2백 명 이상의 상당수 교사들이 모인 것으로 보아 매년 일반교사들도 참가하여 동일한 훈련과정을 받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렇게 미국 교사들은 아이들의 고등사고 능력을 신장하기 위한 노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교사들을 대상으로 고등사고능력 3주 연수과정에서 심화 훈련하는 ‘불룸의 인지적 목표’ 하위 영역별 사고기능들을 몇 개씩만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지식

분류하다(classify)

예를 들다(give examples)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다(distinguish opinion from fact)


* 이해

다시 말하다(restate)

요약하다(summarize)

비교하다(compare)


* 적용

적용하다(apply )

예언하다(predict)

증명하다(demonstrate)

해결하다(solve)


* 분석

대조하다(contrast)

비교하다(compare)

범주화하다(categorize)

도표화하다(diagram)


* 종합

계획을 세우다(plan)

구성하다(construct)

재정렬하다(rearrange)

보고하다(report)

결합시키다(combine)

개발하다(develop)


* 평가

비평하다(criticize)

정당화하다(justify)

이유를 지지하다(support your reason)

결론을 내리다(conclude)

평가하다(evaluate)

변호하다(defend)


여기서는 이론서가 아닌 관계로 각 교과에서 적용 가능한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분석 기능을 통하여 과학에서는 생물과 무생물의 특성 및 진화 과정 요인들 파악하기, 사건, 실험 결과들의 특성들 비교하기, 사회에서는 사건의 원인들, 또는 요소들 분석하기, 개별 사건들의 인과 비교,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지리적 특성들 비교하기, 국어에서는 설명적인 대화의 구성 요소를 인식하기, 기사를 비평하기, 문장을 도식화하기, 문학에서 의미들, 주제들, 구성들, 인물들, 배경들 비교하기 등을 지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가 기능에는 과학에서 발견물(결과)의 의미와 타당성 평가해 보기, 사회에서 논쟁, 결정, 보고서의 타당도, 그리고 그 유의미성을 평가해 보기 등이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이러한 사고 기능들을 하나하나 숙지하고 숙달이 된다면 나름 아이들의 의미 있는 지적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물론 한 가지 주제로 수업하면서 고등 사고기능들을 전부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하버드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正義)란 무엇인가’가 유행일 때 아이들과 ‘정의(正義)’를 가지고 수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과서에 나와있는 ‘정의’라는 개념적 의미에 포함된 분배적 정의, 교정적 정의 등이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 시대에 따라서 그 개념이 어떻게 정의되었나, 우리 시대의 ‘정의’는 어떠한가 등에 관한 설명을 첨부하여 확장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본다면 그리스의 도편추방제(고대 그리스 민주정 시대에 아테네에서 매년 1회 시민투표를 통해 민주제를 위협할 위험인물을 선정, 10년간 국외로 추방하던 제도)를 통하여 추구하고자 했던 ‘정의’와 현대의 ‘정의’, 또는 군부독재 시절의 ‘정의’와 현대의 ‘정의’를 비교해 보게 합니다. 더 나아가 ‘정의’의 기준이나 사상가들의 관점, 특히 센델 교수가 단골로 비교하는 칸트나 공리주의 관점을 들어 우리 사회의 ‘정의’는 과연 바람직한가를 평가해 보고, 센델교수의 스승인 롤스 교수의 절차적 정의론까지 참고하여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바람직한 ‘정의’를 창의적으로 구성해 보기 등 조사, 탐구하고 토론하게 하는 등 고등사고 신장을 위한 수업 장면까지 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이런 수업은 나도 실제 펼치기 쉽지 않을뿐더러, 무리한 욕심이 반영된 수업입니다. 교사도 펼쳐내기 어려울뿐더러 아이들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 수업에서는 잠깐 틈을 보아 고등사고를 할 수 있는 질문(비교, 평가, 종합)을 던져보고 반응을 유도하거나 토론해 보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합니다. 다른 수업에서는 교사들이 알아서 시험에 필요한 지식만 던져주는데, 주요 교과도 아닌 주제에 나만 아이들을 힘들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불러다 수업할 때 도서관 구석에서 책을 보던 교사가 내 수업의 초반부를 몰래 들었는지 ‘샘 수업은 인문학 강의 같다.’합니다. 그랬더니 같이 있는 동료 교사가 말을 받아, ‘그러니 얘들이 못 알아듣지.’하고 예리한 지적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교사가 하나를 가르치기 위하여 열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유창하게 펼쳐놓는 것만으로는 오히려 아이들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특히, 3학년 아이들에게는 이렇게까지 하면 ‘샘, 진도 나가시죠.’하는 말을 듣게 될 겁니다. 교사의 열정에 아이들이 찬물을 끼얹습니다. 수업 자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것도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놈의 입시라는 제도 때문에 아이들 눈치까지 보아가며 수업해야 하니 현실은 이래저래 어렵습니다.


그래서 발표 및 토론 수업에 초점을 맞춘 저학년 수업은 가능한 2년을 통한 단계적 성장 수업으로 진행합니다. 종단적 성장을 목표로는 1학기 처음 단계에서는 신뢰성 있는 자료 조사 및 논리적 발표 자료 구성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합니다. 고등사고의 기초가 되는 주장과 근거와의 관계, 그리고 적절하고 신뢰롭고 충분한 근거자료의 조건을 인식시키고 탐구, 구성하게 하는데 주력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화가 되고 있는 거짓 정보들에 대한 논리적 판단 능력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그다음 단계는 탐구주제 발견하기(?)입니다. 교과서 내용에서 찾아보기도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교과서의 내용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이슈를 자신의 발표 주제로 잡습니다. 창의적 문제 해결을 이끌어내는 고등사고 능력 중 하나 ‘문제 발견(problem-finding)’ 능력, 즉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 그리고 남들이 문제로 보지 않는 현상에서 문제로 보고 발견하는 능력을 신장하기 위한 접근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도 없고, 정답도 없는' 유형의 능력훈련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처음에는 ‘사형제도’ 등과 같은 익숙한 주제로 잡아오다가 조금 더 비교해 보고, 뒤집어 생각해 보자는 등의 권유에, 그리고 내가 던져주는 힌트들을 참고로 조금씩 정교화시키면서 이슈가 될 수 있는 그럴싸한 주제를 잡아와 탐구 허락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이타심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와 같은 아주 흥미로운 주제를 잡아오기도 합니다.


발표 주제가 결정되면 발표 순서에 맞추어 수업시간을 포함해 일정 기간 동안 교과서와 인터넷을 이용하여 타당한 찬성, 반대 근거들을 똑같은 비중으로 조사해서, 논리적으로 구성하여 친구들에게 발표를 통하여 전달해 주는 식입니다. 발표하는 팀은 한쪽 입장을 선택하고, 앉아있는 친구들은 다른 쪽 입장이 되어서 발표하는 내용을 경청하게 됩니다. 그러면 친구들도 발표자가 조사한 찬, 반 내용을 듣고 질문한 후 토론하면서 교과서 내용도 학습하고, 그에 반하는 다른 의견들도 접하게 됨으로써 관점의 확장을 꾀할 수 있습니다. 발표자의 내용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이상한 점 등에 대한 질문 유도는 우리 아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인 질문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입니다. 질문의 적극성을 끌어내기 위하여 질문 횟수를 평가에 반영합니다. 토론 주제가 너무 어려워 아이들의 토론이 지지부진해지면 나도 토론에 참여합니다. 이것이 내 수업의 기본 프레임입니다. 이처럼 모든 교과도 교과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지적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체계적인 수업 프레임을 형성해야 합니다.


내가 인지적 영역에서의 고등사고 능력을 강조하는 이유도 어떤 수업을 하든, 즉 교사가 강의식 수업을 할지라도 고등사고를 인지하고 있으면 틈틈이 아이들의 지적발달을 꾀할 수 있는 접근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질문 하나를 하더라도 유의미한 사고 작용을 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화려한 수업 일지라도 교사가 고등사고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면 그 수업은 지식의 전달과 이해를 위한 수업에 한정되고 맙니다. 내가 수석교사들 수업시연을 참관하고 나서 느낀 것입니다. 지식 전달을 위한 수업은 다양하고 활동적이었으나 수업 수준에서 허전함을 느낀 이유입니다.


어느 날 문득 음악프로그램을 보다가 4명의 기타 합주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흥을 돋우며 아주 즐겁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결과 당연히 좋은 연주로 극찬을 받았고요. 교사들 간 수업도 그렇습니다. 누구는 아이들 주도적인 수업을 하지만 누구는 지식 위주의 수업을 해 나간다고 하면 이미 학습의 수동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선호도는 당연히 편하게 앉아서 듣는 수업을 선호하게 되고, 생각하게 하고 귀찮게 만드는 수업은 욕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사들 간 암묵적인 동의하에 아이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수업을 주도적인 수업 흐름으로 만들어 나간다면, 더 나아가 모든 교사들이 각 교과별 본연의 특징에 기초하여 접근 가능한 사고력 신장 수업들로 해나간다면 교과 간 서로의 부족한 점이 메꾸어지면서 다양한 고등사고력 신장이라는 잘 다듬어진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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