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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말랭이 Dec 15. 2024

“바다는 언제나 바다였다.”



며칠을 업무 때문에 잠을 설친 터라, 나는 바깥바람을 쐬러 잠시 가게 밖으로 나섰다. 


‘빌어먹을, 저 거래처 사장은 항상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다니까.’ 


피로와 술기운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다. 


나는 애써 고개를 휘휘 내젓고, 뺨을 두어 번 때려 잠을 쫓으려 애썼다. 


하지만, 내 잠을 깨운 것은 다른 이의 목소리였다. 


“그런다고 술이 깨나? 껄껄, 잠을 자야지.” 


걸걸하고 호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니, 상자 위에 걸터앉아 있는 한 노인이 보인다. 


그는 자신은 살 만큼 살았다는 듯이, 아주 위험하게 바다를 등지고 부두 끝에 앉아 있다. 


나는 첫눈에 그가 범상치 않은 것을 깨달았다. 


그에게서는 뭔지 모를 기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옷은… 영락없는 거지꼴인데, 웬 선장모자를…’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한 번 더 호탕하게 말을 건넸다. 


“자네, 몇 살인가?” “서른넷이요.” 


“핫! 좋을 때구먼!” 


나는 그 말이 썩 불쾌해서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속에선 술기운이 올라왔다. 


‘망할 바닷바람은 이럴 때는 왜 안 부는 거야!’ 


나는 괜히 바다에 화풀이를 하며, 그 영감에게서 돌아섰다. 


그리고 왼쪽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서 하나 꼬나물었다. 


‘그래, 이거라도 한 대 피우면 좀 낫겠지.’ 


곧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과장님한테 불려가겠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등 뒤에서는 망할 영감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내가 왕년에는 선장이었는데 말이야. 요 모자를 쓰고…” 


불을 붙이려고 라이터를 켜자, 여지없이 바닷바람이 불어와 불을 꺼버렸다. 


“에잇 쯧. 칙칙칙 후우” 


“자네 나이 때는 바다에서 대단한 걸 찾을 줄 알았어. 그래, 정말 모든 일들이 새로웠지…” 


‘과장님도 많이 마셨는데, 별일 없겠지?’ 


“나이가 더 들어서는 바다가 미웠어. 나를 배신했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설마… 4차 가자고 하진 않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때도 지금도, 바다는 항상 바다였다네.” 


“아잇 제발 좀 그만 닥쳐!” 


아차차, 그만 너무 크게 소리쳐버렸다. 


이 정도 목소리면 분명 거래처에서도 들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곧 가게 안에서 무슨 일이냐며 소리치는 과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그만 이마를 짚었다. 


‘큰일이다!’ 


나는 그 영감 쪽으로 다가섰다. 


그에게 상황설명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그러니까 등 뒤에서 가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할 때즈음 


내가 해명할 말을 생각할 때즈음 


놀라 까무러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부두 끝에 걸터앉아 있던 그 괴이한 노인이, 


나를 바라보며, 


그것도 웃으며, 


산들바람에 도미노가 자연스럽게 뒤로 넘어가듯이, 


마치 원래 그러려던 것처럼, 


슬며시 뒤로 떨어졌다. 


그리고 떨어진 노인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다와 인사했다. 


-푸웅덩! 



나는 사고가 멈췄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머리가 돌에 맞은 것 같다. 


놀란 과장과 소리 지르는 거래처 사람들이 보인다. 


큰일이다. 거래를 잘 마쳐야 하는데…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아 구급차가 왔구나. 


한 번 더 사이렌이 울려왔다. 


엥? 왜?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그들이 내게 수갑을 채운다. 


나는 억울함에 고개를 돌렸다. 


왜 나한테 이런 걸? 


내 시선이 향한 곳에는 나를 경멸하듯 쳐다보는 과장과 그의 옆에 선 경찰이 보였다. 


잠시 후, 나는 어디론가 향하는 경찰차 안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


 “자꾸 솔직하게 말 안 하시면, 재판에 불리하세요.” 


“아니, 진짜 저는 모른다니까요. 제가 왜 그 영감을 밀어요.” 


“이보세요. 당신이 소리친 거 들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녹음된 것도 있고.” 


“아니라니까! 그거 말고 다른 걸… 그래! CCTV 같은 걸 좀 확인해 봐요. 난 진짜 모른다니까!” 


나는 억울함에 몸서리쳤다. 


일면식도 없는 노인이 그런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누명을 쓰게 되다니! 


이런 빌어먹게 곤란한 상황 탓에, 입이 바짝 말라 왔다. 


그리고 과장… 그래, 그 인간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었어.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


처음엔 누명을 벗는 게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희망은 의욕에 찬 젊은 검사를 만났을 때,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그 호전적인 검사 때문에, 재판이 질질 끌린 것이다. 


말해 뭐 하나. 


그 새끼 때문에 내 인생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직장에서 잘리고, 이혼하고, 명성도 재산도 모두 잃었다. 


그리고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은 재판에 이겼다 한들 다시 돌아올 리가 없었다. 


“후우 X같구먼.” 


나는 연기를 깊이 빨아들인 뒤, 속에 담은 것을 뱉었다. 


그곳에 왔다. 


그래 여기는 그날, 그 일이 있었던 그 바닷가다. 


그 영감이 뛰어내린 부두에는 가슴 높이쯤 되는 펜스가 쳐져 있다. 


아마, 누군가 또 뛰어내리는 걸 막기 위해서겠지. 


“에잇쯧, 진작 좀 쳐뒀으면 이럴 일도… 앗 XX.” 


갑자기 불어온 바닷바람에 그만 또 나는 욕을 뱉었다. 


왜냐하면 바람에 흩뿌린 담뱃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덕에, 여태껏 속에 담아뒀던 울분이, 둑이 허물어지듯 쏟아져 나왔다. 


“모든 것이 저 바다 때문이야! 언제나 저 바다가 문제였단 말이야! 어릴 적 무릎에 생긴 흉터도, 무역회사에 다녀서 망가진 건강도, 해변에서 만난 아내도, 그리고 그 망할 영감도 다 너 때문이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 대체! 아아아아!”


하지만, 내 말은 공허하게 울리며 파도소리에 묻혀 갈 뿐이었다. 


나는 펜스에 바짝 붙은 채,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그 영감이 어느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을 이유로 넉넉한 위치에 설치된 펜스 탓에 아래쪽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 안 보이네. 조금만 올라가면, 이렇게, 이렇게’ 


나는 펜스 위쪽을 손으로 잡고 아래쪽을 바라보려고 애썼다. 


자꾸 보일락말락하는 탓에, 나는 점점 위쪽으로 올랐다. 


“아저씨 뭐 하는 거예요!” 


등 뒤에서 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과 발은 그대로 펜스에 둔 채로, 고개만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어정쩡한 자세 탓에, 나는 곁눈질로 그녀를 볼 수밖에 없었다. 


고등… 아니 중학생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가 보였다. 


그녀는 교복을 입고 내 쪽으로 힘껏 달려오더니, 일체의 고민도 없이 나를 펜스에서 끌어내렸다. 


갑자기 펜스에서 떨어진 터라, 나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었다. 


시멘트에 부딪힌 꼬리뼈가 찡하게 아프다. 


얼마나 아픈지, 바닥에 갈린 손바닥은 하나도 안 아플 정도였다. 


“아악! 아저씨 괜찮아요?” 



그녀는 내 손목을 끌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그 씩씩한 모습에 넋을 잃고 거절할 생각조차 못 했다. 


‘그나저나, 어린 여자애가 겁도 없나…’ 


그녀는 거실 서랍 한 켠에서 빨간 약과 붕대를 꺼내 내 손에 얹었다. 


요즘 학교에서 이런 것도 가르치는지, 그녀는 그 작은 손으로 꼼꼼하고 탄탄하게 붕대를 감았다. 


잠깐의 적막이 흐른 뒤, 나는 머쓱해서 괜히 말을 꺼냈다. 


“부모님은 언제 오시니?” 


“안 오세요.” 


“어… 응? 왜?” 


“두 분 다 돌아가셨거든요.” 


“아니… 어쩌다가…?” 


나는 그녀에게서 그 이유를 들었다. 


그 어린 것은 이미 그 말을 수십 번 해본 듯 능숙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그녀의 집안이 대대로 뱃사람이었다는 것부터, 


그녀의 부모님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실종되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벌써 10년이 흘러 사실 가망이 없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러네 가망이 없겠네…”라는 말을 하려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사실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별로 기억도 나지 않는걸요. 고통스러웠던 쪽은 아마 할아버지였겠죠. 그래서 미쳐 버리셨는지도 몰라요.” 


“할아버지라니…?” 


나는 언제부턴가 할아버지나 영감 같은 단어를 들으면 소름이 끼쳤다. 


그 망할 영감이 생각나서였다. 


나는 애써 머리를 한 번 털어, 그 증오스러운 얼굴을 잊으려 애썼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나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혹시… 머리도 다친 건 아니죠?” 


“아니야. 괜찮으니까, 계속 이야기해.” 


“아…네. 할아버지는 제 부모님을 찾겠다고 온 바다를 돌아다니셨어요.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무인도나, 지도에 없는 섬이 있을 거라면서… 마지막에는 상태가 너무 안 좋아지셔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셨어요.” 


“마지막이란 말은…” 


‘아뿔사, 무심코 생각 없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뱉고 바로 후회했다. 


그것은 물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뭐, 괜찮아요. 사실인걸요. 할아버지는 재작년에 자살하셨어요. 생명보험 몇 개를 들어 놓고.” 


나는 도무지 그녀의 말에 대답할 엄두가 나지 않아 묵묵히 들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변호하려는 듯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거액의 빚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느니, 치매가 일찍 왔을 수도 있었다느니, 그냥 우울증이였을 수도 있다느니 말이다. 


그리고 자꾸 이상한 말을 했는데, “바다는 언제나 바다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도통 집중하기 어려웠다. 


머릿속에 자꾸 그 영감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그녀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미안해요. 사실 아까 아저씨가 있던 곳이 할아버지가 뛰어내린 곳이었거든요.”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아저씨가 있던 펜스 바로 건너편, 부두 아래에 떨어져서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아저씨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 


나는 갑자기 몰려오는 놀람과 분노와 혼란스러움에, 그만 소리를 질렀다. 


머릿속으로 망할 영감의 얼굴과 과장, 나를 버린 와이프, 잃어버린 2억 2천만 원이 지나갔다. 


그리고 놀란 그녀는 눈이 두 배는 커져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나는 그 모습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위협하듯, 그 어린 것에게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여 달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확인한 사진은 어김없이, 그날 보았던 그 망할 영감이었다. 


“내가 XX 너희 할아버지 때문에!” 


분노가 터져 나왔다. 


참을 수 없었다. 


아이에게 추한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녀가 어리건 말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세상에 하나 남은 썩을 영감의 핏줄에게 그 말들을 퍼붓고 싶었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한쪽은 소리치고, 한쪽은 아무 말 없이 울면서 


“후우 뭐 됐다. 그게 네 잘못도 아니고.” 


마음에 있던 것들을 조금 비워둔 나는 약간은 후련해져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일이 많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나를 잡아두더니, 방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왔다. 


그리고 그것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한 번만 읽어보세요.” 


“이게 뭔데?” 


“유서요.” 


“누구?” 


“할아버지요.” 


“아니.” 


나는 전혀 읽을 마음이 없었다. 


“그치만 이걸 읽으면, 할아버지가 그랬던 이유를 알게 될 거예요.” 


하지만 그녀한 말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도 없었다. 


“보험금 때문이라면서.” 


“아니에요. 다른 이유가 있어요.” 


“그게 뭔데?” 


“읽어 보셔야 해요.” 


“지금은 읽을 생각 없어.” 


“그럼 가져가세요. 저는 수도 없이 읽었으니까.” 


“안 읽을지도 몰라.” 


“저는 아저씨가 꼭 가져가셨으면 해요.” 


*** 


그날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때는 정말 막막했는데, 하루하루 살아 보니 또 살아는 졌다. 


새로운 직장에도 적응하고, 재혼도 했다. 


요 몇 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나는 그 영감을 떠올렸다. 


이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다. 


그 소녀에게서 사정을 다 들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시간이 많이 흘러서일까? 


나는 간만의 휴일에 소파에 앉아, 그 생각을 곰곰이 하다가 그날 받았던 편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한 번도 읽지 않았지.’ 


오래된 서랍을 뒤졌다. 


내 기억이 맞기를 바라며. 


‘분명… 이쯤… 아! 여깄다.’ 


나는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미친 영감이 썼다기엔 꽤 잘 쓴 그 유서를 


-


은서야 미안하구나. 이 못난 할아버지를 용서하렴.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단다. 네 부모가 죽었다는 걸 말이다. 


젊을 때는 바다가 좋았다. 드넓은 대양을 누비며 기뻐했지. 


저 넓은 세상에서 무엇을 찾을까 너무 설레었다. 


그래, 그때는 바다가 넓은 것이 좋았다. 


내 꿈이었고, 세상이었지.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바다가 넓은 것이 증오스럽더구나. 


 만약 바다가 좁았더라면, 금세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분노했다. 


바다를 저주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만 너마저 내팽개쳐 버리고 말았구나!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는 걸.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 


언제부턴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더구나. 


이젠 정말 벼랑 끝에 서버렸다. 


 몇 년 동안 써댄 막대한 기름값에, 이자에, 연체된 세금까지... 


그런데 내가 마지막 순간에야 깨달은 것은, 바다는 언제나 바다였다는 거야. 


바다는 죄가 없었단다. 늘 거기에 그대로 있었을 뿐이었어. 


문제는 바로 나였지, 암, 나였어. 


 바다를 바라보는 내가 잘못됐던 게야. 


은서야, 바다를 바다로 바라봐야 한다! 


힘들겠지만, 바다를 증오하지 말 거라. 


그런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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