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한’은 무슨 접두사인가요?”
한 남자아이가 말했다.
무언가 장난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이다.
교직 생활 8년 차인 국어 선생 김 씨는, 거기에 동요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어…그건 강조하거나, 특정한 장소나 시점을 정확히 짚기 위해서 쓰는 말이야. 예를 들면 … 그래! 한여름, 한가득, 한복판처럼!”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그 아이가 말했다.
“그럼, 한녀는 무슨 의미예요?”
국어 선생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설마 했는데, 결국 그 말이 나온 것이다.
그녀는 오늘 아침, 당부하던 교무부장의 말이 기억났다.
“김 선생도 잘 알고 있겠지만, 요즘 혐오 방지법인지 뭔지… 무슨 말 하는지 알죠? 그런 말 절대 나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고 했다.
“자, 이제 그 아래를 한 번 봐보자. 자 접미사는 말끝에 붙어ㅅ…”
“선생님, 아직 제가 물어본 거 대답 안 해 줬는데요!”
그 아이가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리고 거기에 누군가 참지 못한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야! 그만해. 선생님, 저런 한.남. 말은 그냥 무시하죠!”
한 여자아이는 잔뜩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다른 아이들도 동요해서, 교실은 온통 ‘한남’과 ‘한녀’란 말로 가득 찼다.
이쯤 되니, 베테랑 교사 김 씨도 더 이상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녀는 결국 용감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정면돌파 하기로 한 것이다.
-탕탕
그녀가 출석부로 교탁을 내려쳤다.
그리고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별 뜻이 아니야. 그냥 ‘한국’이라는 뜻이야!”
남자아이가 물었다.
“그럼, 굳이 왜 붙이는 거예요? 한국여자나, 그냥 여자나 다를 게 없잖아요.”
선생이 대답 못 하자, 다른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진짜 한국이라는 뜻이에요? 한남이 한국남자라면, 저는 왜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이들의 입에서 수많은 예시 단어가 나왔다.
한국남자, 한국여자, 한국청년, 한국중년, 한국스포츠, 한국언론, 한국정치, 한국기업 등등
어떻게 아이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지, 김 씨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아마, 어른들이 한 말을 들은 걸 테지…’
그리고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계속 물었다.
“선생님, 무슨 뜻이에요? 알려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단지, 혐오 방지법 때문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