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고 꾸덕하게
로마에서의 둘째 날 오전에는 바티칸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교황이 사는 곳이다. 바티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투어 가이드와 동행하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아침에 집결지에서 가이드를 만났는데, 밝은 에너지를 가진 한국인 여성 가이드였다.
천지창조와 아테네학당 등 유명한 그림이 있는 바티칸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로 ‘지도의 방(Galleria delle carte geografiche)이었다.
입구에 들어가기 전부터 가이드가 지금부터 바티칸에서 제일 예쁜 곳에 들어가겠다며 동영상을 찍을 준비 하라고 말했는데, 정말 카메라를 안 꺼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문으로 들어가자 통로로 쭉 이어지는 길에 천장엔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림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고, 양 옆 벽에도 창문 사이사이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위에 그림을 보느라 모두가 위를 보고 느리게 걸었다.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바티칸 투어가 끝나자 가이드가 함께 밥을 먹으러 갈 사람이 있냐고 질문하였다. 우리는 다음 식당을 정하지 않았던 터라 가이드가 추천해 주는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고, 가이드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바티칸 근처에 위치한 ‘L'Insalata Ricca’라는 식당이었다.
가이드는 부모님이 이탈리아에 계셔서 이탈리아에서 생활을 하게 됐고, 이탈리아 가이드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오지 않아 힘들었고, 자격증 시험도 열리지 않았는데, 이번 해에 열려서 다시 준비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어를 잘했고, 식당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음식들을 가이드가 대신 주문해 주었다.
예전에 나 또한 가이드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바티칸 투어를 통해 가이드가 일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니, 내가 직업 일을 하기에는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가이드는 업 자체가 많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또한 투어 중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체력이 부족해서 걷기조차 힘들어했다. 가이드가 되면 훨씬 오래 걸어야 하고 지친 티도 내면 안된다는 점이 힘들게 다가왔다. 또한 외국에서 가이드 생활을 하려면 자격증을 따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지 자격증과 함께 현지 언어가 가능해야 하는 것을 보고 뭐든 쉬운 직업은 없다고 생각을 했다.
가이드가 크림파스타가 유명한 이탈리아 식당을 추천해 줘서 저녁으로 예약을 한 상태였다.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민아가 몸이 안 좋다고 먼저 숙소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말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 저녁을 못 먹게 된 것이다.
그렇게 민아는 먼저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고, 식당을 이미 예약했기 때문에 나랑 오빠는 파스타를 먹고 돌아가기로 했다. 앞서 말했듯이 원래 우리는 4명이서 여행을 왔지만, 같이 여행 왔던 친구 중 한명인 윤솔이는 우리와 따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4명이서 왔는데 오빠랑 둘이 돌아다니게 된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오빠랑 단둘이 여행이라니!
약간은 어색하고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 예약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광장마켓을 구경하러 갔다. 마켓에 갔는데 식당도 있고 바도 있고 가게도 있는 곳으로 각 마켓이 다른 색으로 빛나 아름다웠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켓 중앙에서 장난감을 파는 상인을 만났는데, 한국어를 매우 잘해서 놀라웠다. 한국에서 살다 온 것처럼 한국어를 능통하게 해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거리를 걷다가 한 공원 의자에서 잠깐 쉬기로 했다. 밤이라 플래시를 안 키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공원이었다. 벤치에 오빠랑 앉아있는데 오빠 핸드폰 배경화면이 에드시런의 콘서트 사진이었다.
“오빠 에드시런 콘서트 갔었어?”
“응 예전에 갔었어. 에드시런 노래 어떤거 좋아해?”
“나 thingking out load!”
“어 나도 그 노래 좋아하는데!”
우리는 갑자기 노래가 듣고 싶어서 thingking out load를 틀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오빠는 귀국 언제 하는지 물어보니 1월 15일에 한다고 했다. 당시 1월 15일이면 한 달 정도 빨리 한국에 가는 거라서 놀라서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물어보니, 그냥 끊을 때 왕복으로 구매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쉽지는 않냐고 물어보니까 오빠는 사실 지금도 그냥 한국에 가도 상관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나는 오빠의 그 대답이 매우 충격적이었는데, 나 또한 어느 정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교환학생을 온 것은 좋지만 막상 생활을 하다 보니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여행도 충분히 해서 유럽 건축물과 풍경에 질리던 때였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에 공감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식당 예약 시간이 되었다.
식당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정말 좋았다. ‘luciano’라는 이름의 식당으로, 마치 파인다이닝을 먹는 것 같은 분위기에 크림파스타가 맛있는 레스토랑이었다. 밖으로 자리를 안내 받았는데, 야외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완벽한 자리였다.
까르보나라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노란 색감이 강했고, 더 꾸덕한 식감이었다. 이게 이탈리아 정통 까르보나라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탈리아의 까르보나라와 한국 까르보나라, 둘 중 무엇이 더 맛있냐고 물어보면, 당시 이탈리아에서 배가 부르기도 했고, 한국에서 까르보나라를 처음 접하기도 해서 한국의 것이 더 취향에 맞다고 말하겠다.
또 하나 이 식당에서 유명한 것은 숟가락으로 깨뜨려서 먹는 티라미수였다. 먹기 전에 티라미수를 깨뜨려야 하는데,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릇 아래쪽으로 티라미수가 흐른다. 티라미수도 케이크라기 보다는 무스케이크 같이 부드러운 식감을 가지고 있다.
당시 레스토랑이 너무 마음에 들어 오빠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꽤 많이 찍은 것 같은데 오빠는 아무런 불평 없이 사진을 계속 찍어주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115장이나 찍혀있었다. 그만 찍으라는 말도 없이 사진을 100장 이상 찍어준 오빠에게 지금이나마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