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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즈음에 Nov 21. 2024

곤란한 질문과 답변

비장애형제 이야기

 첫 만남, 혹은 이제 막 알아가는 사이에서는 으레 형제가 어떻게 되는지 묻는다. 내가 동생이 둘이라고 하면, 나이를 또 묻는 경우가 있다. 막내가 초딩이라고 하면 아주 놀란 뒤, '와 거의 너가 키웠겠네~' '거의 엄마네~' '동생 엄청 귀엽겠다!!' '부모님 금슬이 좋으시네~' 와 같은 말들을 한다. 굉장히 곤란하다. 나는 일단 엄마가 발달장애인인 막냇동생을 키우는 과정에 1도 도움을 주지 않았으며, 엄마는 커녕 남보다 못한 형제에 가깝고, 귀엽게 보기보다는 앞선 글들에 서술한 죄책감, 무시 와 같은 감정으로 바라볼 때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금슬은 최근 좋아졌기는 하지만 이혼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싸웠기 때문에 마지막 반응도 틀렸다. 하지만 초면 혹은 이제 막 알아가는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 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허허' 웃어 넘기거나, '요즘 말을 엄청 안들어~' 같은 말로 둘러대고는 한다. 그렇게 둘러대면 금슬이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 귀여운 늦둥이 막냇동생을 둔 괜찮은 가정의 일원이라고 나를 포장한 것 같아서 너무 찜찜하다. 가족에 대한 내 마음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힘든데, 내가 왜 괜찮은척 해야하지?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막냇동생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빨리 알려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막냇동생의 나이를 듣고 차라리 '요즘 사춘기 시작하겠네' '공부 스트레스 받기 시작할 나이네' 등의 반응을 보이면 냉큼 우리 동생은 발달장애인이라 일반적인 애들보다는 많이 느리다는 식으로 이야기 해줄 수 있어서 좋다. 그러면 상대방은 조금 놀란 눈치를 보이거나, 내가 말한 '발달장애인'이라는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눈치거나,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해당 대화주제는 마무리 된다. 나는 이렇게 당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가정환경에 사는 괜찮지 않은 사람이에요 광고라도 하고 싶은건가? 난 관종인가? 힘들었겠다 라는 말을 듣고 싶은건가? 나도 모르겠다.


 발달장애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는 된다. 주변에 발달장애인이 없다면 사실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없다. 나도 생각해보면 막냇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발달장애인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그냥 거리를 두고 싶고, 조금 무섭고, 불쌍한 사람, 나와는 상관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마 막냇동생이 아니었으면 나는 어쩌다 마주치는 발달장애인을 동정하거나 무시하고 슥 지나쳤을 것이다. 나 역시 곤란한 질문과 반응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가 비장애형제라는 사실이 감사한 몇 안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사회의 그늘진 부분, 고통들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 그들이 인생 가운데 겪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모른척하고 살아갔을 나에게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다.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하고 희생하고 책임지는 장애아 부모님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묵묵히 감당하시는 복지사 및 봉사자들, 장애인들을 품을 수 있는 사회로 바꿔나가려 노력하는 사람들... 세상에 아직 아름다운 면이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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