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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란 Aug 22. 2024

회사보다 씁쓸한 아메리카노는 없어

여기는 텔레토비 꿈동산이 아닌데

회사원이 되니 커피를 물보다 더 많이 마신다. 비슷비슷한 프랜차이즈 카페들. 저마다 자기들의 원두는 스페셜하다는데. 중요하지 않아. 출근길부터 함께하는 직장인의 필수템일 뿐. 하다 하다 집에 커피 머신도 사뒀다니까. 

기계에 기름칠을 하듯 주말에도 눈 뜨자마자 카페인을 수혈해 줘야 끼긱대는 관절들을 겨우 움직일 수 있거든. 시럽은 물려서 싫어. 휘핑크림? 그거 전화 좀 받다 보면 금방 망가지잖아. 안돼. 뜨거운 커피? 장난해? 나 지금 회사에서 열받은 거 안 보여? 절대 안 돼. 결국 내 손에 들린 건 언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난 아아인간이다. 겨울에도 포기 못하는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너 커피 진짜 좋아한다. 인생이 그렇게 쓰냐?”

동료의 농담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어보인다. 그런 게 어딨어. 일단 들이붓는 거지. 그런데 왜 그 말이 귓가에 맴도는걸까. 언제부터지. 이 쓴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기 시작한 게. 분명 학생 때는 한입도 버거웠는데 말이야. 카페에서 즐거운 사람들만 만나던 시절. 그때는 아바라를 좋아했어. 달달하니 시원한 아이스 바닐라 라떼. 그 시럽만큼 달콤했던 시간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수 있던 순진함. 싫은 사람은 퇴식구에 쏟아버리듯 손절하면 그만. 골치 아픈 일은 내일의 나에게 패스. 좋았지.

월급쟁이가 되니 아무리 쓴 말을 들어도 꿀떡꿀떡 잘만 삼켜낸다. 지금처럼 안락하게 살아가고 싶다면 싫어도 해야 하고 미워도 봐야 해. 내일은 내일의 쓴 맛이 있으니 오늘 몫을 마냥 미룰 수도 없어. 월급의 대가를 참아내냐고 새까맣게 타버린 속. 뱉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참느라고 텁텁해진 입안. 이 와중에 언짢은 마음을 숨기고 멀쩡한 표정까지 지어내야 한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이 모든 감정의 잔흔을 아아 한잔으로 씻어낸다. 회사에 불을 지를 수는 없으니 소화기 대신 시원한 커피로 일단 급한 불씨를 잠재우는 거지. 실업에 대한 공포를 시럽 삼아 삼키니 하나도 쓰지가 않아. 달다 달아. 아마 내 혈관 속에는 피보다 진한  카페인이 돌고 있을 것이다.


"원두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가끔 스스로를 위해주고 싶은 날. 직접 원두를 볶는다는 로스터리 카페를 찾아가 핸드드립커피를 시킨다. 거대한 로스팅 기계와 살짝 매캐한 공기. 식당 못지않게 두꺼운 메뉴판의 글자를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인도네시아, 케냐, 브라질. 익숙한 나라들이지만 그 이름만으로 맛이 떠오르지 않아 설명을 정독한다. 가게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고만고만한 콩들인데 내려진 빛깔도 거기 담긴 향도 가지각색이라 재밌다. 고민하는 척하지만 고르는 맛은 거기서 거기. 산미 없고 깔끔한 맛. 깊이는 부드러운 것부터 진한 다크로스트까지 그때그때 달라. 무더운 여름날에는 입맛을 돋워주는 플로럴향도 즐기지만 한 끝 차이로 시트럴, 베리 쪽은 너무 셔서 손이 안 간다.

선택장애가 오면 친절한 미소의 바리스타님께 추천을 받는다. 조근조근한 설명과 샘플 원두 시향. 으으. 냄새만 맡아도 시다. 결국 보리차 같이 구수한 시그니처 블렌드 선택. 히히. 여기는 제조과정이 잘 보이는 바 자리가 좋아. 선택받은 원두가 곱게 갈려나간다. 소리 좋다. 가게 스타일마다 다른 드립퍼에 가루들을 조심스레 옮겨 담고 소복히 부풀어 오르는 원두를 다독이듯 주전자로 찬찬히 차곡차곡 물을 쌓아 내린다. 매일 남을 위하는 나에게 타인이 공들여서 내려주는 커피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잔잔한 위로가 된다. 거기에 원두에 어울리는 커피잔까지 더해지면 정말 더 바랄 게 없고. 

하지만 커피맛에서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함께하는 사람이지. 별로인 사람과 억지로 마셔야 하는 커피는 누가 뭘 내려도 그냥 써. 차라리 혼자가 낫지.


지금 내 아메리카노가 그래. 평소 즐겨 먹는 프랜차이즈 커피인데 익숙한 그 맛이 아니다. 오늘 여기 원두가 상했나? 부서 옆에 있는 작은 회의실. 불투명한 유리가 사면을 가로막고 있는 이곳. 거기에 몹시 껄끄러운 상대까지. 감옥이네 감옥. 잘못 태운 원두처럼 시큼텁텁한 공기. 이상하게 커피를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만 더 올라온다. 그런데도 싫다고 퉤 뱉어낼 수 없는 불편한 자리. 그래도 밥이 아니라 다행인가. 

물론 마주 보고 있는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회사 탓이다. 다르게 만났으면 제법 친하게 지냈을지도 모를 K과장. 그 또한 불편한 건 마찬가지인지 손에 들고 있는 아이스 라떼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나는 단독업무를 선호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회사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가 않다. 아무래도 투명성과 청렴이 중요한 공공기관이다 보니 업무 단계별로 해당 권한이 있는 부서나 별도 조직의 승인이 필요한 경우가 많거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타 부서 직원과 업무상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간혹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상황들이 발생한다는 것. 회사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K과장은 분기마다 열리는 큰 외부회의의 담당자다. 관련법에 따라 이 회의의 승인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안들이 있고 그 안건의 담당자들은 매뉴얼에 따라 사전에 이 과장님과 상의를 거쳐야 한다. 사전협의를 통해 회의에 대한 주요 사항을 조율하고 공식적으로 업무협조 문서를 보낸다. 그러면 과장님이 참여하는 전체 안건을 정리하고 회의자료를 취합해서 책으로 뽑고 위원들에게 참석요청을 보내고 기타 등등. 생각만 해도 숨 막히는 일정 끝에 회의를 개최하는 것이다. 끝나면 담당자들에게서 받은 회의록을 취합해서 결과보고까지. 정말이지. 듣기만 해도 질린다.

각 부서 담당 팀장, 부장, 실장, 사무관, 외부 자문위원까지.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물들이 참여하는 대회의의 총괄 담당자. 워낙 티가 많이 나는 업무라 승진에는 유리하지만 그 수많은 담당자들과 그들의 상사에게 치이는 일이 많아 요즘은 모두가 기피하는 자리다.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 그래서 이 회의에 참여할 때면 매뉴얼을 칼 같이 지키면서 정석으로 일해왔는데 이제 다 소용없게 되어버렸다. 이번에 미운털이 제대로 박혀버렸거든.


회의 1주일 전 갑자기 폰으로 사무관의 전화가 왔다. 이 사람 사무실로만 전화하는데 무슨 일이지? 다급한 목소리가 불안감을 치켜세운다. 

“저희 다음에 올리려던 그 건 있잖아요. 그거 이번 회의에 올려서 꼭 통과시키래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다음에 가기로 했잖아요.” 

“지금 상황이… 아니 어제 다른 안건으로 과장님한테 보고를 들어갔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뭐라 하시잖아요. 이걸 왜 아직도 질질 끌고 있냐고.”

여기서 나오는 과장님은 나같은 4급 과장 나부랭이가 아니다. 우리 이사님도 벌벌 떠는 정부부처의 각 과를 담당하는 높디높은 분. 그 분의 불호령이라니 상대의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도.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요. 이게 그렇게 뚝딱 되는 게 아니라니까요?”

된다. 사무관이 밀어붙이면 절대 안 된다던 일도 이루어지더라. 절대 수용불가라는 K과장의 단호한 말에 내가 쩔쩔매는 사이 팀장님과 부장님을 거쳐 우리 실장님이 K과장의 실장님께 다이렉트로 전화를 했다. 그쪽 실장님이야 실세 중의 실세인 과장님을 앞세워 달려드는데 당연히 된다고 했겠지. 

얼마 후 요란히 울려대던 수화기 속 K과장의 목소리에 바짝 날이 서있다. 

“일단 문서부터 빨리 보내세요. 뚝.”

그래. 찍어 누르는 거 기분 더럽지. 이해해. 얼마나 짜증 날까. 미안한 마음에 그쪽이 싫은 티를 낼 때마다 사과하고 또 사과했는데 이 패턴이 계속 반복되자 점점 기분이 상했다. 나도 갑자기 회의자료 만드냐고 매일 야근인데 짜증을 너무 내잖아. 회의 전날. 또 전화벨이 울린다. 후우. 참자. 참아야 한다. 지금 급한 건 내 쪽이다.

“하아. 저기요. 제가 지금 그 쪽 때문에 얼마나 곤란한지 아세요?”

이제는 그냥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짜증이구나. 내가 뭐 실수한 거 있냐니까 그건 아니란다. 근데 왜 전화한 거지? 아니 상황을 제대로 말해주던가. 아 내가 너보다 후배다 이건가? 그래도 1주일 내내 사과했잖아.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지. 그리고 내가 하고 싶어서 이래? 알만한 사람이 왜 이럴 실까 진짜. 하지만 그 말을 뱉을 수는 없다. 

“과장님. 저도 갑자기 회의자료 만든다고 1주일 내내 야근했어요. 이런 상황 저도 원하지 않는 거 아시죠?”

내 한마디에 상대가 조용해진다.

“다음부터 제발 좀 이러지 마세요. 뚝.” 

통화가 끊겼다. 

“하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탁! 그러면 안 되는데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아차! 감정이 태도가 되면 안 되는데. 바로 후회 중.  

“뭔데? 무슨 일이야?” 

평소 안 하던 내 행동에 놀란 팀장님이 물으신다. 이때다 싶어 다다다다 털어놓는다. 억울해! 화나! 분해! 쒸익쒸익 내 이야기를 들은 팀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너무하네!” 

팀장님의 얼굴에도 후끈후끈 열이 잔뜩 달아오른다.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런데 한바탕 쏟아내고 나니 그 사건을 직접 겪은 나는 도리어 차분해진다. 원래 그래.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그 감정에 정당성이 생긴 것 같거든. 그것만으로도 좀 홀가분해져.


누구랑 그렇게 채팅을 하시는 건지. 팀장님의 키보드가 곧 부서질 것 같다. 다다다다다. 그 경쾌한 소리는 점점 느려지더니 곧 조용해졌고 빼꼼. 팀장님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우리 일로 그쪽 팀이 고생을 좀 많이 했대.” 

갑자기 내 업무가 회의안건에 추가되자 평소에는 매뉴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절대 안 받아주면서 왜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냐고 타 부서 민원이 빗발쳤다고 한다. 후우. 그래.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지. 나도 비슷한 일 당해봤어. 그 말을 들으니 과장님에 대한 분노가 가신다.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 그래. 그쪽도 화날 만하네. 근데 그래도 좀 너무하긴 했어. 에이 그만 생각하자. 어차피 내일만 지나면 다 끝나.

“거기 팀장이 미안하다고 나중에 같이 술이나 한잔 하재.” 

아하 팀장님끼리 친하셨나 보네. 진짜 미안하다고 했는지 안 했는지 진실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걸로 하자. 

“아 됐어요. 술은 무슨”

그냥 집에나 빨리 보내달라고! 그런데 퇴근시간을 코 앞에 두고 익숙한 얼굴들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K과장과 담당팀장. 보고가 끝나고 잠깐 들렀다는 손에 커피가 잔뜩 들려있다. 나랑 팀장님의 커피라고? 하나도 안 반갑네. 하는 수 없이 마침 텅 빈 회의실로 그들은 안내하고 팀장님 두 분과 나, K과장까지 네 사람의 사자대면이 시작되었다.

종류별로 놓인 음료 중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골랐다. 술자리를 반기지 않으니 내 취향에 맞춰 커피를 들고 온 듯하다. 우리 팀장님이 귀띔해 줬겠지.  내 얼굴을 바라보지도 않고 커피를 건네주는 K과장. 여전히 까슬한 감정이 남아있어서 지금은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방금 다녀왔다는 보고 때문인지 지금 이 상황 때문인지 붉어진 홍조와 광대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이 보색대비를 이루고 있다. 

후우. 그래. 사실 다 같은 처지잖아. 너나 나나 위에서 떨어진 폭탄에 피폭된 피해자인 건 마찬가지인데. 근데 여기까지 와놓고 저 뚱한 표정은 또 뭐야. 혹시 싫은데 억지로 끌려온 거 아니야?


“우리 과장님이 원래 그럴 사람이 아닌데.”

학부모도 아니고 왜 본인은 가만있고 상사가 나서서 변호를 하지? 상황을 살펴보니 내가 여기저기 고자질을 하고 다니는 것 같은데 이 일로 자기한테 불똥이라도 튈까봐 상사가 어거지로 붙잡아온 게 틀림없다. 가끔 그런 상사들이 있거든. 같은 회사 다니는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 말로 나를 원치 않는 모임에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내 잘못이 아닌데 억지 사과를 시키는 선배들. 나를 위한다는데 왜 나는 점점 불행해지는지.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어.”

내 팀장의 답변이 아니꼽게 들린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우리가 무슨 신입도 아니고 과장씩이나 돼서 알아서 풀 문제잖아. 안 풀리면 안 풀리는 대로 사는 거지 뭐. 우리가 멱살 잡고 싸우기라도 하겠냐고. 억지화해라니 초딩도 아니고. 속이 탄다 속이 타. 얼른 아메리카노를 한입 하는데 으엑 이거 왜 이래. 맛없어.


“제가 아까 좀 말을 이상하게 한 것 같아서어…”

드디어 K과장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없는 알맹이 빠진 사과. 지금 보이는 이 태도로 미루어봤을 때 과연 이 사과에 진심이 있긴 한 걸까. 아까까진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던 불도저 양반이 왜 갑자기 순둥이 시골강아지처럼 깨갱하는 걸까. 의심만 점점 더해진다.


회사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우리가 또 어디서 어떻게 엮일지 모르지. 하긴 앞으로도 같이 협업도 해야하고. 자기도 이 상황이 피곤하긴 할 것이다. 그래서 뒤늦게 뒷감당 생각이 들었나. 아 맞다! 지금은 진실을 따질 때가 아니야. 이제는 내 차례거든. 내 진심과 상관없이 여기서 안 받아주면 그 화살이 다시 나한테 돌아오게 되어있어.

“아... 네... 뭐 근데 저도 원인제공을 한 건 맞으니까요.”

사과도 싸움도 뭣도 아닌 빙글빙글 겉핥기 대화. 당사자들의 표정을 떨떠름한데 두 상사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짜증나. 아오 답답해. 손으로 계속 들고 있던 탓에 얼음이 반쯤 녹아내렸는데도 맹맹해진 아메리카노가 짜증스러울 정도로 쓰다. 오늘 여기 원두가 상했나? 지지들이랑 마셔서 그런가. 으으 흙탕물 맛이야. 아 됐고.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어. 서로 고생했다고 하니 적당히 퉁치고 끝내자. 

“오늘은 야근 안 하세요?” 

일부러 살가운 척 말을 건넨다. 내 기분이 풀려 보여야 얼른 갈 거 아니야. 

“어... 이제 가서 해야죠.” 

후우. 봐바. 너도 바쁘잖아. 나도 덕분에 칼퇴는 글렀어. 드디어 상대 팀장이 남은 회의준비로 바빠서 이만 가보겠다는 소리를 한다. 그래도 공짜커피를 받고 빈 손으로 보낼 수는 없지. 헐레벌떡 탕비실에 들어가 서랍 속 과자를 건넨다. 터덜터덜 돌아가는 두 사람. 잘 끝낸 거 맞겠지? 마치 면접이라도 본 듯 온몸의 기가 다 빨려나가 버렸어. 후우. 응? 무심코 들이킨 아메리카노가 내가 아는 그 맛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야.


회의는 무사히 끝이 났다. 이거 때문에 그 고생을 하다니 징하다 징해. 회의실을 나가다 마주친 K과장. 꾸벅. 목례를 나누고 지나치려는데 대뜸 나를 불러 세운다. 또 뭐야? 살짝 긴장이 되려는데. 

“점약이요?” 

대뜸 다음 주에 점심을 같이 먹잖다. 직장인들의 단골 멘트지. 근데 오늘은 좀 당황스럽네. 

“저희 두... 울이서요?” 

아! 그쪽 팀장님이 사주신단다. 그래. 인싸 팀장님이 계시니까 과장님이랑 둘이 먹는 것보다는 좀 나으려나? 

그냥 어제 커피 마신 걸로 끝낼 수는 없는 걸까? 요즘은 소개팅도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고 끝낸다던데. 후우. 과장님도 팀장님 오더대로 하는 거겠지. 기껍지는 않지만 거부하기도 힘든 지극히 회사스러운 약속. 에효. 그래 뭐 앞으로 안 볼 사이도 아니고. 

근데 윗분들은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자꾸 같이 밥을 먹자는 거야. 밥을 먹어야 친해진다니! 친해져야 밥을 먹는 거지! 아니 그리고 왜 자꾸 친해지자는 거야! 그냥 일만 하면 안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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