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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전문변호사로 일하면서 알게 된 멈춤의 미덕

by 오아영 변호사

요즘 나는 '무리하지 않고 멈추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혼전문변호사로 일하다보면 늘 결과에 쫓기게 마련이다.

빼곡한 변론기일, 서면 마감, 상담 일정, 밀려드는 전화.

하루하루 시간은 언제나 빠듯하게 흘러간다.


끊임없이 밀려오지만 도무지 미룰 수 없는 일정들.

자연스레 나는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되었다.

"조금만 더 해보자"

"이 정도는 더 할 수 있잖아"


'이번 건만 마무리하고'라는 생각은

'이것도, 저것도 하고 나서'로 이어졌고,

서서히 하루의 끝은 점점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예전의 나는 피곤해도, 머리가 아파도, 감정이 소진되어도,

"일단 이것까지는 끝내고 퇴근하자"는 마음으로

일단 책상에 붙어있곤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일상이 반복되자,

몸도 무거워지고, 건강에도 서서히 적신호가 켜졌다.


특히 출산을 하고 나니

예전처럼 무리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을 절감했다.


아이를 안아올리는 동작 하나에서도

손목은 어찌나 아픈지.

특히 밤중에 아이가 잠 못 드는 날에는

다음 날의 업무 집중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던 일들이

이제는 체력과 감정으로 조율해야만 하는 일들이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스스로에게 '멈추어야 하는 타이밍'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한 것은.


"오늘은 흐름이 좋지 않다"

"이 서면은 내일 맑은 정신으로 한번 더 봐야겠다"

"지금은 내 마음부터 먼저 챙겨야 한다"


이런 생각들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이 더 쉬워지기 시작했다.


조금 쉬었을 뿐인데 막혔던 서면이 의외로 잘 써지기도 하고,

상담을 하면서 마주하는 의뢰인의 감정을

더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리하지 않아도 "오늘도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끝까지 해내는 것이 인내심이다"

"참고 견뎌야 프로다"라는 말을 듣고 살아온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스스로의 흐름대로, 내가 소진되기 전에 다독일 줄 아는 사람이

더 오래, 더 제대로 일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일을 오래 잘하는 법보다 멈춰야 할 때를 아는 법.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이다.


8년차 이혼전문변호사로 일하면서 배워가고 있는

멈춤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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