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결혼 안 하셨죠?
이혼전문변호사의 결혼
1년 차 변호사 시절 자주 들었던 말.
"변호사님 결혼 안 하셨죠?"
이제 갓 변호사가 된 내게서 어딘가 서툰 느낌이 나서기도 하겠지만, 기혼 입장에서는 미혼을 보면 묘하게 티가 난다. 가정사에 찌들지 않은 어딘가 파릇파릇한 느낌이랄까.
미혼이라고 답변하면 "변호사님은 결혼 안 해서 모르시겠지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들. 그때는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이 들려 기분이 썩 좋진 않았는데, 내게 연차가 쌓이자 질문이 바뀌었다.
"변호사님 이혼전문이시라 비혼이신 거 아니에요?" 이젠 변호사로서 노련해 보이기는 하는데, 여전히 미혼인 티가 났나 보다.
실제로 나는 결혼이 많이 늦었다. 변호사 6년 차이던 38살에서야 결혼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결혼이 늦어진 데에는 직업적 영향도 없지는 않았다. 나는 사건과 함께 수백 번 결혼하고 수백 번 이혼했고, 부부가 이혼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대부분 경험했다.
간혹 유독 힘든 결혼생활을 했다고 호소하며 "변호사님 저 같은 경우도 보셨나요?"라고 묻는 의뢰인도 계신데, "선생님 정도면 양호하신 편입니다. 더한 경우도 많이 봤어요."라면서 웃을 정도로 별의별 경우를 다 겪었다.
그리고 이혼 사건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부부 사이의 분쟁에 대한 나름의 빅데이터가 쌓였다. 이제는 상담 중 몇 마디만 듣고서도 "아~ 남편 분이 자기 말 틀리다고 그러면 꼭지 돌아서 대화 안 통하죠?"라고 덧붙이면, 다들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한다.
남편의 유형에 대한 나름의 데이터가 생기고, 한 가지 면만 보아도 열 가지 상황이 추측이 되니 결혼을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고. 이 사람은 나중에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미혼인 이혼전문변호사는 대부분 결혼이 늦다. 일을 하다가 회의론에 빠지면 그때부터 비혼주의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찌어찌 결혼은 했다.
그렇게 남자에 대해 잘 안다고 하니 결혼생활은 잘하는 거 아니냐고?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더라. 나도 의뢰인들과 똑같은 이유로 남편과 싸운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경험한 것은 천지차이였다. 의뢰인들과 비교했을 때 부부싸움이 월등하게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분쟁을 빠르게 해결하는 편이다. 짧고 굵게 싸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이혼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 마치 직장인들이 가슴팍에 사직서 한 장씩 품고 다니듯이. 언제든 이혼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함께 하는 이 순간들이 소중해지니까.
이혼전문변호사의 결혼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