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법
신입 변호사의 열정과 눈물
요즘 드라마 굿파트너를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참 묘하다. 한유리 변호사는 초년차 시절의 나 같고, 차은경 변호사는 현재의 나 같다.
한유리 변호사처럼 나 역시도 이혼전문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변호사가 되어 맨 처음 놀랐던 것은 선배 변호사들이 생각보다 의뢰인에게 쌀쌀맞다는 점이었다.
우리에게 비싼 돈을 지불하는 고객이고, 변호사도 일종의 서비스 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선배들처럼 되지 않겠다 결심하며 최대한 친절하고자 했다.
그래서 하루의 절반은 의뢰인의 하소연을 듣는 데에 시간을 쏟았다. 나는 의뢰인의 전화를 끊어내지 못했고, 한번 전화가 오면 한 시간은 기본이었다.
어떤 의뢰인은 거의 매일 나와 한 시간씩 통화했다. 나는 그녀를 하루속히 이 지옥에서 꺼내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첫 조정기일에 그녀와 함께 출석했는데, 상대방이 제안한 안이 썩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한참이나 설득해 조정성립을 시켰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신속하게 이혼을 할 수 있었고, 끝까지 판결로 갔을 때의 결과보다 재산분할을 더 많이 받아올 수 있었으니 완전한 승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그녀는 조정성립 그다음 날부터 매일 전화하여 내게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죽도록 미운 남편이 제시한 조정안을 왜 받아들였냐는 것이었다. 변호사님은 내 편이냐 남편 편이냐는 소리도 들었다.
판결로 갔으면 이것보다 재산분할을 못 받았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훨씬 유리한 결과였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그녀는 매일매일 나를 원망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며칠 동안 의뢰인의 원망에 시달린 나를 본 선배 변호사님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럴 땐 조정하지 말고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해"
충격을 받은 나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이 변호사 아닌가요?"라고 되물었고, "그게 본인에게 이득인지 알지도 못하는 의뢰인을 설득할 필요는 없어. 의뢰인은 그걸 원하는 게 아니라니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의뢰인과도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게, 선배 변호사님의 말씀은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 주었다.
한유리 변호사와 비슷했던 초년차 시절의 나는, 법률과 판례에서 배운 대로 무조건 양육권을 사수하는 것이, 더 많은 재산분할을 받아오는 것이 승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뢰인들이 원하는 것은 생각 외로 다양하다. 돈보다도 빠른 종결을 원하는 분도 있고, 최대한 상대에게 생채기를 내고 싶어 하는 분도 있고, 아이를 데려오지 않는 것이 목표인 분도 있다.
선배의 말은 의뢰인의 이익을 네가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었을 거다. '내 생각에' 의뢰인의 이익일 것 '같은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초년차 변호사들이 사건에 감정을 이입하며 흔히들 하는 실수다.
선배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쌀쌀맞은 이유, 차은경 변호사가 한유리 변호사에 비해 사건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이유는, 사건과 적당한 마음의 거리를 유지해야 진짜 의뢰인의 이익이 보이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