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우리 동네 맛집탐방
상표권문제로 지금은 그 수가 크게 줄었지만 김밥천국이 있죠.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전설적인 분식집. 김밥천국에 가면 우리를 압도하는 게 메뉴판입니다. 벽면 절반을 채운 그 위풍당당한 메뉴판. 2024년판 메뉴가 모두 77가지인데요, 누가 설마 했는데 40일에 걸쳐 하나씩 모두 주문해 봤더니 음식이 모두 나왔다는군요. (믿거나 말거나)
오늘 소개할 곳은 김밥천국이 아니라 인계 수제비 입니다. 전에 토요일 점심이면 부모님을 모시고 가끔 찾곤 했는데요. 평소 어르신들이 찾는 메뉴라는 게 순댓국, 뼈해장국, 메밀국수, 추어탕으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죠. 원래 이런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셨지만, 어르신들이 늘 그렇잖아요. 가성비 운운하며 저렴한 음식들만 찾는 거 말이죠. 그래서 찾은 곳이 수원 인계수제비였어요.
인계동 수제비의 메뉴판을 보면 21개입니다. 라면, 김밥에서부터 칼국수, 얼큰 수제비, 더 나아가 부추전, 호박전, 감자전까지 주문하면 모두 가능한 음식들입니다. 당시 부모님은 품목에 놀라고 맛에 놀라고. 그 후 인계 수제비는 우리 가족의 단골식당이 됐고요. 부추전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늘 그러셨죠. "이 집 음식은 어느거 하나 빼놓지 않고 다 맛있다". 저는 이 말에 백번 동의 합니다. 우엉이 가득 들어간 김밥부터 특별한 마법을 부리지 않은 라면의 맛은 또 어떻고요. 시그니처인 수제비를 말할 것도 없고 누구나 탄복하는 부추전, 호박전, 감자전 등 각종 전에 이르기까지. 인계동 주민들을 넘어서 수원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인계동 수제비. 제가 젤 좋아하는 것은 '웰빙 비빔밥' 전으로는 '부추전'입니다.
이제 인계동 수제비의 규모가 꽤 커졌고 점심식사 때는 웨이팅이 걸릴 만큼 번잡합니다. 손님들의 표정은 웃음이 가득하기만 합니다. 가끔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맛집 하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저는 또 다른 면에서도 인계수제비를 주목합니다. 손님이 많이 찾아와도 초창기 메뉴인 김밥 라면을 메뉴에서 빼지 않는 사장님의 고집. 저는 이에 늘 경의를 표합니다. 이게 진정한 동네 맛집이 아닐까요. 라면을 찾는 이가 하루에 불과 1~2명에 불과할지라도 바쁜 점심시간에 라면 김밥 주문을 받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무제한으로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그 유명한 '물김치'만 해도 그렇습니다. 야채값이 폭등했음에도 흔들림 없이 제공하고 있고요. 우리는 많은 음식점들이 손님들이 늘어나면서 메뉴판이 바뀌고 음식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수없이 겸 험하곤 합니다. 그런 집들이 크게 번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몰락하는 것도 수없이 목격했고요.
2015년 탁자 2~3개로 문을 연 인계동 수제비. 당시 주 메뉴 중 하나였던 팥 죽과 팥 칼국수를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지금은 메뉴에서 없어졌지만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날, 사장님이 정성스럽게 끓여주었던 팥 죽의 맛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팥죽과 팥 칼국수가 다시 메뉴판에 올라오길 기대해 보는 이유입니다. (그럼 메뉴가 23개로 늘어나게 되겠군요)
인계 수제비의 번영을, 그리하여 50년 100년 뒤에도 인계 수제비가 존재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