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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데이션의 션 Oct 14. 2024

돈가스 집 스텝을 그만두고 우도를 가다

너를 만나기 전의 이야기

나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를 하러 왔다.

내향인인 나는 사람 많은 곳에서 에너지가 쭉쭉 빠지기 때문에 나의 에너지를 충전시켜 줄 수 있는 잔잔하고 평화로워보이는 동네를 골랐다.

서귀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표선'.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바다 보이는 조용한 카페에서 글 쓰면서 한 달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달의 숙박비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돈가스 집에 스텝으로 지원해서 무급으로 근무하는 대신 한 달간 머물 숙소를 제공받기로 했다.

한 달간 10번의 풀타임 근무를 하기로 했다.

3주동안 7번의 근무를 마쳤고, 마지막 주에는 3번의 근무가 잡혀 있었다.

나는 우도를 가보고 싶었지만 마지막 주에는 근무가 3번이나 잡혀 있어서 나의 체력과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보면 못 갈 것 같았다.

아쉬웠지만 또 언젠가 제주도를 오게 된다면 그때 우도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주의 근무를 시작하기 직전, 돈가스 집 사장님과 갈등이 생겼다.

3주 동안에도 쌓여온 게 많았지만 그때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선을 넘지는 않았기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사건은 더 이상 내가 참을 수 없는 인간적인 선을 넘었고 나는 나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사장님이 나에게 보여줬던 태도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중이 아니었기 때문에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사장님이 내 말투를 지적하며 나갈거면 나가라고 하셨던 말은 내 마음 깊숙히 상처를 남겼다.

나가기로 결심했음에도 그 순간의 감정은 굉장히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 상태로 새로운 숙소를 구하고 앞으로 남은 1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할 수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과 쏟아지는 눈물에 블로그에 나의 상황과 힘든 마음을 짧게 올렸다.

그런데 그 글을 보고 블로그 이웃님 중 한 분이 션님 무슨 일이냐고 바로 연락이 왔다.

고맙게도 나의 이야기를 공감하면서 들어주었고 덕분에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려나기 시작했다.

마음이 나아지기 시작하자 상황을 해결할 힘과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카톡의 막바지에는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나 우도 가고 싶었잖아. 그대로 근무했더라면 못 갔을 텐데 1주일이라는 시간이 통으로 생겼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가고 싶었던 우도나 가자.'


그렇게 다음 날 짐 싸서 나와 월정리 숙소에서 하루를 머물렀고, 그다음 날 바로 우도를 갔다.

나는 1박 2일로 머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첫째 날의 우도는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환상적이게 좋았다.

전기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만끽하며 시원하게 달리니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니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들렸고, 자연을 가로질러 달리니 이름 모를 초록 풀들이 드넓게 펼쳐졌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했고, 자전거를 타고 맞는 바람은 너무나도 시원했고,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우도에 반해 빠져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다음 날 나간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대로 나가면 아쉬울 것 같아. 어차피 계획한 일정도 없는데, 하루 더 머무르자.'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하면서 추가로 숙박을 예약했다.

기존의 숙소도 좋았지만 여러 이유로 새로운 숙소를 예약했다.


다음 날,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을 하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기존의 숙소와 새로운 숙소 사이의 거리는 걸어서 35분이었다.

전기 자전거로는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기에 대여해서 타고 가려 했다.

그런데 대여점마다 하는 말이 당일 오후 5시까지는 반납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반납할 생각이었던 나는 절망스러웠다.

당일에 반납을 해야 하면, 반납하고 나서 다시 35분을 걸어서 숙소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빌리는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35분을 내 튼튼한 두 다리만 믿고 걸어가기로 했다.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하는데 어떤 전기차 대여점에서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가세요?"


전기차 대여점에서는 영업을 적극적으로 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자주 거는 편이다.


'영업하시려나 보다.'


거절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아저씨께 대답을 했다.


"아, 제가 사정이 생겨서 35분을 걸어가게 됐어요."

"(눈이 커지며) 35분을 어떻게 걸어가요? (전기 자전거를 가리키며) 이거 빌려서 편하게 가요."

"아, 그러고 싶었는데 다들 다음 날 반납은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일에 반납해야 하면 반납하러 돌아왔다가 다시 숙소까지 35분을 걸어가야 해요."

"그렇구나. 알겠어요. 조심히 가요~"


대화가 끝났구나 생각하며 다시 갈 길을 가려는 순간, 옆에 있던 또 다른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태워다 드릴까요?"


너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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