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현장 속에 녹아진 민주주의
- 부르짖음의 변화
그날의 시위가 때리고 부수고 야유와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는 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장소에서는 정치와 경제에 대해 조금은 다른 방식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증오,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욕설들 만으로 그렇게도 많은 군중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었을까.
분명 아니었다. 누가 봐도 그날의 집회는 다소 위력을 수반하고 있었음에도 우리 사회의 주류인 대다수 시민들은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들도 이런 위협적인 표출에 묵시적인 방법으로 동의하고 더 나아가 심리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이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목소리 중에 하나가 다소 폭력적인 방식으로 나오고 있다고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정도의 건조함 이였을까.
단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사회라는 이름으로 그날의 외침과 행동을 이성의 공간으로 이해하기엔 그날의 현장은 가히 전쟁터를 연상케 했고, 한편으론 수사관 입장에서 사람이 뭔가를 이루기 위해선 이 정도는 간절하게 해야 하나보다, 이렇게 간절함이 베여있는 집회중에 위법한 부분을 수사해야 한다면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고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였다. 작용이 반작용을 견인하고 있다.
그러한 집회시위의 부르짖음도 소비하는 대중의 가치관의 변화에 의해 다양하게 재편되고 있다. 그야말로 집회도 대중 소비시대에 맞게 진행과 방식에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집회 시위 방식은 순간의 힘을 써서 단번에 큰 변혁을 이끌어 내는 물리적인 폭력보다는 인내라는 무기와 각종 SNS를 이용하여 참여의 방식을 넓히고, 지치지 않고 꾸준한 목소리를 내며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의 영역을 넓혀가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실제 집회현장이 스마트폰을 통해 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누구라도 선택하여 마음과 물질을 동시에 후원할 수 있게 되었다.
- 타인의 일상을 보장하는 집회 시위의 기준과 균형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이건 분명 커다란 힘이다. 이런 조건을 완전하게 보장받는 사회가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눈에는 지금의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일까. 조금은 억압당하고 답답함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그런 힘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과 같은 공간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은 어떻게 될까? 그저 조용한 삶을 살고자 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은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린 균형을 정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이 정도의 소음과 혼란은 참을 수 있는 설득의 영역과 기준, 즉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라는 개념을 법으로 규정해 둔 것이다.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집회로서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선량한 타인의 일상도 평온하게 보장해 주는 균형감각이 살아있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집회 시위라는 것이 나와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말과 행동을 통해 공감대를 만들고, 동조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실제 집회가 실현되는 장소는 사람이 많이 모인 주요 도심 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주요 도심이란 곳이 그곳을 터 잡아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이들의 욕망을 모두 담고 있는 곳이라 그 누구의 전유물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곳이다. 만약 누군가 이런 도심 일부를 오직 집회를 위해 온전히 점유해 버린다면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식과 욕망을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공재를 지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균형 잡힌 기준이 필요하다. 그 균형과 기준을 우리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라고 부른다. 오로지 이 기준만이 누구나 공감한느 균형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의 선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온갖 사회적 안전장치를 만들어 내고 실천하고 있지만, 사실 궁극적으론 '공공의 안녕'으로 수렴된다.
길거리에서 시작한 민주주의는 투쟁사였다. 그런 투쟁의 현장에서 단순한 원리인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지를 묵묵히 바라보며 이를 어기는 자에 대해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 수사관으로는 그 대상이 보수이든 진보이든 직업과 직책이 무엇이든 아무것도 고려가 없다.
만약 무너진 공공의 선이 있다면 당당히 수사하고 법정 판사에게 ‘지금 이 법정이 정의롭다는 것을 보여달라’는 수사관의 결기도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편안한 민주주의를 곧게 세울 수 있다.
이렇게 막중한 '공공의 선'을 지키는 수사관은, 오직 모두가 수긍하고 편안한 민주주의 맥락 속에서만 사회의 균형자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 외에 어떤 기준도 고려도 없다. 누군가 우리의 질서를 깨뜨리는 자가 있다면 법의 잣대로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이다.
- 진짜 민주주의는 상생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내야 할 삶의 규칙과 가치들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고 저마다의 우선순위가 있을 것이다. 그런 가치들이 제약 없이 균형을 잡고 우리의 삶 속에서 온전하게 숨을 쉬고 있어야만 이 사회는 건강한 내일과 모레를 희망하고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도 선한 삶의 가치들 중에 현실 집회를 통해 확인하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자리를 얼만큼 차지할까? 그마저도 타인의 우선순위 가치를 헤치지 않아야 집회현장의 구호들이 설득력과 공감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 있을 불공정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많은 집회현장에서 질서와 균형이 깨지지 않는 것은 집회를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도로와 광장을 관리하는 공무원, 현장관리 경찰관, 그리고 이 모든 소란을 묵묵히 참아주고 지켜주는 시민들 또한 함께 있기에 가능하다. 사회가 정의롭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사회전반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쉽게 예상하지도 못할 정도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를 살고 있지만, 완벽하지 못한 사람은 본성적으로 스스로에게 유리한 판단을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린 어느 상황이나 장소에서건 극단으로 이어지는 나만의 외침보다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대중들과 긴 호흡을 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오늘도 이런저런 집회를 누비던 수사관은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서서 생각해 본다. 집회가 어떤 이념과 사상을 담고 있건 결국엔, 다 사람과의 상생을 위한 길일 때 비로소 길거리 민주주의는 의미가 있다고... 그런 게 사람이 우선인 민주사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