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무실에 다른 유형의 꼰대들이 나타났다. 기존 꼰대들의 행동양식에 뭔가 헐렁한 생각들로 똘똘 뭉친 MZ세대 꼰대들도 수사부서에 출현했다. 내가 경험한 그들의 등장과 퇴장의 반복은 통상 이러했다.
1990년대에 태어나 5~6년 동안 경찰 내 다른 부서를 경험한 뒤 자신의 색깔에 맞는 분야를 찾고자 삶의 전환기에 선 MZ세대. 그들이 수사부서에 대거 등장한다. 온라인 친밀감으로 네트워크 형성과 여론전에 강하고 정보수집과 활용에 특별한 속도와 적응력을 탁월하게 발휘하면서, 틀이 정해진 매뉴얼적 수사방식에는 절대적 강점을 가진 그들이 수사파트에 진입하고 나서 신선한 변화가 생겨왔다.
그들의 초기 적응력은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그간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속도감 있는 선택에 적응하다 보니, 하나하나의 인과관계에 의미를 살려 그 원인과 이유를 파악하고 한 치의 오차가 없는 판단을 해야 하는 수사파트에서도 MZ세대은 적응된 속도감을 내세워 모든 상황에서 자신들의 판단구조가 더 우월하다는 감정을 단호하게 드러낸다.
그러한 신인류에도 한계가 있다. 그렇게 드러낸 감정을 한껏 품내고 있지만 그들에게 취약한 약점이 있다. 질서가 빈약하다. 그들은 지금의 사무실을 유지하게 하는 검증 된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일단 부정한다. 그 질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함으로 인하여 그들도 그 자리에 올 수 있었음에도 기존 수사관들이 정립해 놓은 낡고 허술한 가치가 서려있는 사회적 질서를 통째로 부정해 버린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독단의 유혹에 빠지고 되고 그렇게 실패를 시작하고 결국 내 맘대로 안된다는 심리적 꺾임을 통해 자신감은 곤두박질 하락되고, 주변의 도움이 단절 된 이유를 마치 조직의 관리체계에 문제가 있는 양 마구 떠들어 댄다.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질서 부재는 영혼 없이 만들어 놓은 형식적인 매뉴얼만으로도 수사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결국, 지속력 없이 단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한 채 서서히 침몰해 버린다. 그렇게 수사부서를 떠난다.
어느날 진또배기 젊은 형사가 등장했다. 몇 년 전 우연히 의지를 가진 다른 MZ형사가 다시 한번 수사부서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나는 그 의지를 다시 한번 믿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핵심 부서인 수사파트에 오겠다는 젊은 형사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수사에 대한 열정은 대충 이러했다. 먼저 기존의 질서를 인정했다. 고참 형사들로부터 수사 형식뿐만 아니라 사건에 임하는 자세, 진행 과정에 가져야 할 핵심 의지, 필요한 증거수집 방법과 관련 노하우 등등 그의 정신까지 속속히 배우려는 자세가 확연했고, 그런 의지가 늘 선하게 표현되었다.
사실 그가 인정하는 기존의 질서는 과정에 대한 선한 정당성이 있어야 결과도 정의롭다는 단순한 논리였지만, 그런 순수함이 무뎌진 고참들 눈엔 그저 신선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론 이겨야 힘이 생긴다는 다른 고참들 눈엔 그가 너무도 약해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절실함을 이용한 일부 고참들이 자신들의 사건에 무분별하게 개입시켜 편의를 도모하는 이기적인 꼰대들도 있었고, 어떤 경우엔 그의 업무능력이 고도화 되어감에 따라 자신들의 무지가 드러남을 직감하고 서서히 경계하기도 하였다. 관리자인 나로서는 그런 고참 형사들의 나쁜 습성까지 전이되지 않도록 지혜를 주는 정도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그도 그 정도는 분별하는 지혜가 생겼고, 그렇게 온갖 성장통을 홀로 묵묵히 버터온 의지가 결국 많은 사람들로부터 젊은 형사들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 내, 그간 단절되었던 젊은 형사들의 수사부서 재 입성의 기회를 열어주게 되었다.
젊은 형사와 늙은 형사를 관통하는 3가지가 있다.
그간의 정서적인 혼돈과, 자초한 고립, 각종각색의 사건사고를 접하고 난 뒤, 나름의 시대를 관통하는 업무상 기준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어렵다는 사건을 달라고 하고 항상 정면승부를 한다. 어려운 사건이란 손이 많이 가거나, 고도의 지식을 요구하거나, 사회적인 저명인사를 수사 대상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어려운 사건은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담당 수사관을 억압하는 종말단계 악성민원인 사건이다.
어차피 수사관의 삶 속에 피할 수 없는 인연이라면 오히려 정면 승부로 사건을 휘게 하는 이런저런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마음을 장착해야 한다.
둘째, 아무리 어렵고 힘든 수사에 직면하더라도 기본부터 충실해라.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어떤 사건에서는 본질이 아닌 숨겨진 이익을 좇을 때가 있다. 이럴 땐 숨어있는 거악을 잡겠다고 헛심만 쓰고 분주하기만 하다 결국 지쳐버려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도 못한 채 꺾이게 된다.
자신의 단점을 의지로 채우고 마음의 빈 공간을 겸손으로 메꾸다 보면 조금씩 알게 된다. 수사는 자신을 통제하는 힘,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 예의와 겸손을 바탕으로 세심하게 묻고 또 물어 상황을 재연하는 창조적인 마음이다. 그 마음을 느껴야 하고, 그래야 타인의 행동을 법이라는 테두리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셋째, 포기하지 마라. 포기한 사건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 좌절감과 패배감뿐이고 그건 나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같은 영향을 주는 것이다. 세상에 젤 편한 게 포기다. 단 한 번의 포기가 주는 순간의 편안함에 취해 다음 사건도 딱 힘든 시점에 도달하면 또다시 포기를 하거나 다른 부서로 도망쳐 버린다.
그 강렬한 포기라는 유혹이 결국 사명감을 빼버린 월급쟁이 공무원으로 전략시킨다. 힘든 시간 속 쌓인 불만은 사실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순간의 위로는 되겠지만 그렇다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수사부서에 남는 자는 일어나는 자이다. 일어나는 자만이 자신의 무지와 편협했던 솔직한 마음을 보고 깨닫는다.
어떤 경우엔 그렇게 고민스럽게 매달렸던 사건이 그를 구원하는 경우도 있다. 사건에 들이는 시간은 거의 배신하는 법이 없다. 고민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종결이 주는 교훈들이 마음에 용기를 심어 자신감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진심을 다해 법리를 세우고 실체를 파악한 경우만이 자신을 믿게 되고 그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형사의 가치는 결코 물리적인 나이로만 규정되는 건 아니다. 그 마음속에 어떤 빛을 담고 지켜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저 원칙이 상식인 형사의 삶과 같이 마음의 문을 열어 인풋을 열어놓고, 끝까지 나약하지 않으며, 실체를 확인고자 하는 꿋꿋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면 젊은 형사와 늙은 형사가 하는 수사는 빛바래지 않은 채 모두를 구원할 수 있다.
오늘도 늙은 형사는 오직 진실을 찾는 수고에 희망을 걸고,
오래전 내가 그랬듯이 출발점에 선 젊은 그들과 눈과 어깨를 마주하며 사건 속으로 힘을 주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