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사각 변소창

왜 항상 옛날 변소에 귀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by 그길에

어릴 적 나는 정말 무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열 살을 전후한 시점이 아마 무서움을 많이 타던 정점이었던 것 같은데 어두움과 귀신이 주로 그 대상이었다.


1980년대 그 시절 내가 살던 부산 반여동은 날이 어두워지면 골목 끝 차도까지 걸어 나와야 가로등이 하나 있는 깜깜하고 외진 곳이었고, 우리 집은 하필 그 골목의 중간에 위치하여 좌로도 우로도 가로등 있는 곳까지 나오는데 아이 걸음으로는 꽤 오래 걸어 나와야 하는 거리가 되었다.


밤에 혹시라도 집을 나서 그 골목을 벗어나야 할 일이 생기면 귀신이라도 나올까 봐 무서워서 너무너무 싫었는데 누나들이 겁쟁이라고 놀릴까 봐 내색은 못하고 속으로는 참 죽을 맛이었다.


특히 바깥집 어두운 사각 변소창이 문제였다.


반여동 집들은 대략 서른 평이 안 되는 집들이 동네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늘어서 있었는데 한 가구가 그 서른 평 되는 필지를 온전히 차지한 것이 아니라 바깥집 안집으로 나누어 두 집으로 구분 등기되어 있는 참 작은 집들이었다.


우리 집은 안집인지라 좁은 집 통로를 거쳐 바깥집까지 벗어나야 비로소 동네 골목에 이를 수 있었는데 바로 그 동네 골목과 맞닿는 지점에 바깥집 변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 변소는 골목 쪽에 뻥 뚫린 변소창이 하나 있었는데 밤에 골목 쪽에서 그 변소창을 보면 안 그래도 그늘진 변소창이 더욱 깜깜해져 깊이를 알 수 있는 시꺼먼 동굴 같은 느낌이 되었다.


나는 그 깜깜하고 어두운, 속에 귀신이 들어앉아 있다가 머리 헝클어지고 새하얀 얼굴을 불쑥 내밀 것 같은 그 사각형 변소창이 너무너무 싫고 무서웠다.


당시 어무이가 반여동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셨는데 시마이(장사를 마침) 할 저녁 아홉 시 무렵에 시장으로 내려가서 어무이 점심 드신 빈 밥바구니며, 팔다 남아 찬거리로 준비한 생선들이며 그날그날 몇 가지 짐들을 챙겨 오는 심부름을 주로 내가 맡았었다. 가끔 시마이가 빨리 끝나면 어무이랑 같이 집으로 오기도 했는데 이 때는 관절염 때문에 다리가 불편한 어무이를 반여동 비탈길에서 허리깨를 힘껏 밀면서 집까지 걸어 올라오도록 돕는 일도 추가되었다.


그런데 짐이며, 밀고 오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는 그 어두운 골목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집에서 골목 끝으로 나갈 때 운이 좀 따르는 날은 마침 골목에 동네 어른이 다니는 타이밍에 맞아 슬며시 옆에 붙어서 어두운 골목을 통과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을 때는 집을 나서면서부터 골목 끝까지 미친 듯이 내달려야 했다. (미친 듯이 달리는 그 십여 초 마저도 어찌나 무서웠던지). 반대로 집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좀 수월했는데 골목 어귀에서 서성거리다가 다른 어른이 우리 골목으로 들어서면 모른 체 슬며시 옆에 붙어서 함께 지나가면 되었다. 그런데 이 때도 재수가 없으면 우리 집에 다다르기 전에 헤어지게 되어 또 미친 듯이 뛰어 들어와야 했다.


골목을 나갈 때든, 들어올 때든 우리 집 들어서는 입구의 그놈의 바깥집 변소창은 쳐다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혹시 까닥 잘 못해서 눈길이 그쪽으로 가게 되면 그 시꺼먼 창에 귀신이 목을 내놓고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 무서운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벌써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어둠이나 귀신이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어릴 적 강렬한 그 느낌은 나이테처럼 내 기억에 자리 잡고 있다. 초등 6학년 아들에게 신이 나서 재미난 옛날 얘기 해주듯 그 기억을 얘기해준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집 밖 푸세식 변소, 뻥 뚫린 사각 변소창, 골목 끝에 하나밖에 없는 가로등, 다리가 아픈 어머니, 노란색 밥바구니가 그 이야기의 풍성한 소재가 되어 준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도 세월 속에 늙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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