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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니 Aug 02. 2024

영화 '하나레이 베이'

영화감상


난 아들을 싫어했어요.

그래도 사랑했어요.

난 이 섬을 받아드리려고 했지만

이 섬은 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난 그것마저 받아들여야 하나요?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하나레이 베이'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사치의 아들은 열아홉이 되던 해에 하와이의 하나레이 만에서 커다란 상어에 물려 죽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물려 죽은 것이 아니다. 혼자서 먼 바다로 나가 서핑을 하다가 상어에게 오른쪽 다리를 물어 뜯겨, 그 충격으로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그래서 정식 사인은 익사라고 되어 있다. 서프보드도 거의 두 동강이 나버렸다. 상어가 사람 고기를 좋아해서 공격하는건 아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사람 고기라고 하는 것이 상어의 기호에 맞지 않는 것이다. 한 입 베어 먹어보고는 대개의 경우 실망해서 그대로 떠나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니까 상어의 습격을 받더라도 당황해서 허우적거리지만 않으면 한쪽 팔이나 다리를 잃더라도 살아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아마 심장 발작 같은 것을 일으켜 많은 물을 먹고 익사했을 것이다.


<도교기담집>, 문학사상, 55


마약쟁이 남편이 죽고, 남편에 대한 미움이 아들에 대한 미움으로까지 이어져, 사치는 아들과 자주 다퉜다.(물론 아들 또한 엄마를 싫어했다.) 그런 아들이 서핑을 위해 온 하와이 하나레이 만에서 상어의 공격을 받아 하루 아침에 죽어버린 것이다. 사치는 10년 간 아들을 잃은 그 해변으로 매해 찾아가 같은 장소에 의자를 놓고 앉아 해변을 바라본다.



운명이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는 것이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것.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는 것.


아들을 싫어했다 그래도 사랑했다.

만약에 사치가 둘 중 어느 한쪽이었으면 아마도 그렇게까지 해변을 오랫동안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싫어했거나 아니면 사랑했다면

싫어하면서 사랑했기에, 그 양가적 감정의 대상이 하루 아침에 죽어버렸기에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든 정리해야만 했고 정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10년 동안.


애증의 대상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그 대상이 세상에 없는 가운데에서, 혼자서 그 대상을 증에서 애로 옮겨놓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나는 모른다. 그런 경험이 아직 없다.


비슷하지 않지만 이런 일은 있었다.

내가 비난을 퍼부었던 사람이 2년 뒤 산후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 것이었다.

동아리 시간에 내가 맡는 학급 교실을 쓰면서 늘 정리를 하지 않고 가는 것에 대해

참다참다 한 번 따져물었다.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율배반적이라고"


그 사람은 평소 비판적이며 바른 말 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흔히 그렇듯이 실천이 뒤따르지 않았다.

조문을 가면서 나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차라리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조금만 더 참고 비난하지 말걸....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싫어한다 사랑한다 두 감정 중 싫어한다만 있었기에

아직까지 미안한 감정 정도만 남아 있을 뿐

힘들지는 않다.


우리 생은 한편으로는 질기고 억세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허망하다.

어제까지 같이 숨을 쉬던 사람이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게 바다만 바라보는 사치를 뒤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눈에 환상으로만 보이던 '외다리 서퍼'(상어에게 오른쪽 다리를 물어뜯긴 아들)


다음 날, 바다를 바라보던 사치가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아들과 마주한 것일까.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그녀의 얼굴로 영화이 끝이 난다.


가끔 기회가 있으면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 나는 이런 말을 건넨다. 주로 남자 아이들에게


"나는 여자를 잘 모르지만 세 가지 방법은 알고 있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입은 옷을 칭찬해 주는 것,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것."


이 말이 하루키의 소설 속에 내용인 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가씨와 잘 지내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어. 첫째, 상대방의 얘기를 잠자코 들어줄 것, 둘째, 입고 있는 옷을 칭찬해 줄 것, 섯째 가능한 한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줄 것. 어때? 간단하지?

97쪽


난 아직도 이것을 잘 못하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한 번은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했다가, 미투 바람에 휘말린 적도 있었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이 세가지를 잘 못한 게 아니라,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간단한 세 가지는 세상에서 제일 하기 힘든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지만 세 가지 중 뒤 두 가지는 할 만하다. 그러나 첫째는 잘 못하겠다. ㅎ


가장 간단한 일이 가장 힘든 일인 게 세상에는 많다. 그 중 '가족을 사랑하는 일'이 첫째로 꼽힐 것이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일도 이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의미심장한 대사가 있다. 소설 속에도 이 말이 똑같이 있다.

잘 잊어버리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완전히 잊어버리는 게 문제지."

98


나는 자살한 그 여선생을 자주 잊어버린다. 그러나 완전히 잊지는 않고 이렇게 문득 생각해내곤 한다.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약간의 미안한 감정도 잊지 않고 같이.



영화를 보며 인상 깊었던 장면 둘이다.


현지 경찰관이 사치를 위로하는 부분. 그의 삼촌은 한국전쟁 당시 백마고지전투에서 사망했다. 분노로 가득한 적들에게. 하지만 자연은 누구의 편도 아니고, 살해의 의도도 없다는 것. 아들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것뿐이라는 것.


"저도 한 가지, 부인께 개인적인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요" 하고 사카다라는 초로의 경찰관이 헤어질 때 사치에게 말했다. "여기 카우아이 섬에서는, 자연이 종종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기도 하징. 보시다시피 이곳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때때로 더할 수 없이 거칠어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저희들은 그런 일말의 위험을 안고 여기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드님의 일은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디 이번 일로, 저희 섬을 원망하거나 증오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염치없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건 여기서 사는 저희들의 바람입니다."


"대의가 어떻든 간에, 전쟁터에서의 죽음은 양측의 분노와 증오에 의해서 초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연은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아니, 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지요. 부인께는 참으로 쓰라린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될 수 있으면 그렇게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드님은 대의나 분노나 증오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순환하는 자연 속으로 되돌가간 것뿐이라고 말입니다."

61-62


흔한 이야기 같지만 아직 내 몸에 체화되지 않았던 말이다.

병에 의한 죽음, 심지어 자동차 사고에 의한 죽음도

'돌아가기'인 것이다. 개미가 사람의 발에 밟혀 죽는 것처럼

그저 자연사인 것이다.

사치가 저 메타세콰이어를 아무리 밀어도 한 치도 옮길 수 없다.

자연은 인간의 삶에 무심하다.

그게 자연이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가족처럼, 자식처럼 내 삶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내게만 소중한 것이다.

자연 앞에서는 길 위에 굴러다니는 돌과 다르지 않다. 돌은 부서져도 되고, 내 것은 부서지면 안 된다는 법은 자연의 법이 아니다.

자연 앞에는 모든 것이 동등하다.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 죽음은 없고, 죽음이 왔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에피쿠로스


다시 읽어보니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마무리가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과 미움, 그리고 죽음. 이것은 우리의 삶의 총체다. 한 인간으로서 이것을 어떻게 받아드려야하나의 문제를 다룬 것인데....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이 죽음, 아들을 앗아간 바다를 10년 간 바라보면서, 그래도 답을 얻지 못하지만, 답이 아니라 화해?!

뭐 이런 스토리 라인인데 말이다.

어쨌든 좋은 소설이다. 영화도 소설을 잘 잘린 것 같다.


내가 만약 지금 사춘기의 딸과 말 다툼을 했고, 딸이 울면서 집을 뛰쳐 나갔는데, 바로 아파트 앞에 도로에서 차에 치어 죽는다면.....


비슷한 영화가, 기억나는 영화가 하나 있다. '퍼스트 리폼'

나라를 위해 아들의 참전을 허락, 권유했는데...아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어버렸다. 그의 직업은 목사. 믿음의 힘으로도 이겨내기가 힘든 상태가 되는데...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다시 한 번 더 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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