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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니 Aug 02. 2024

할머니의 꿈

에세이

신병 훈련 6주간을 마친 후 자대배치를 앞두고 있었다. 둘째 날, 입대 후 처음으로 고향에 전화를 할 수 있는 2분이 주어졌다. 내 차례가 되자 제주도 고향집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발신음 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보세요?”

어찌된 일인지 수원에 있어야할 큰형이 전화를 받았다. 뭔가 불길함을 예감한 나는 우물쭈물 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한 달 반 만에 주어진 2분의 시간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울음이 목구멍을 타고 자꾸만 올라왔다. 형이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자대배치 전이라 쉽지 않았지만 감독관이 내 사정을 부대장한테 잘 보고한 것 같았다. 2박 3일의 특별휴가를 받았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받은 특별한 휴가.

도착하자마자 장지로 향했다. 겨울이라 땅이 꽁꽁 얼어 있었다. 불평을 늘어놓는 인부들에게 큰형이 웃돈을 얹어주는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의 관 위로 몇 줌의 흙을 던져주기도 하고, 인부들 옆에서 떼도 입혔다. 슬펐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나는 막내였다. 모두 일을 나간 집에 꼬마 아이는 할머니 몫이었다. 할머니와 어린 막내둥이. 잔잔한 시골 풍경 속 할머니와 손자 간에 알콩달콩한 관계를 떠올릴 만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할머니는 잔소리가 심했고, 더욱이 먹을 것을 탐했다. 그런 할머니가 어린 마음에 귀찮은 존재로 여겨졌다. 같이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고, 심지어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까지도 들 때가 있었다. 생각이란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막을 수 없을 때가 많으니까.

초등학교 5, 6학년 정도였을까, 이런 일이 있었다. 방에 누워 숙제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고등어를 튀기시는지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그때도 고등어 튀김을 좋아했다. 그런데 마루로 나가보니 할머니가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었고, 상 위의 고등어는 이미 반이 사라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반이라도 남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때, 국그릇을 나르던 어머니께서 할머니께 낮게 꾸지람을 하셨다.

“언제 먹어시니? 다른 사람 먹을 생각도 해야지, 원!”

그런데 이 한마디가 너무나 큰 불상사를 일으키고 말았다. 할머니께서 반이나 남은 고등어를 손으로 집더니 마당을 던져버리신 것이다.

“에잇, 얼마나 먹었다고, 그거 아까워서 잡두리는 무슨 잡두리고!”

순식간이었다. 나는 반원을 그리며 마당으로 날아간 고등어를 넋 놓고 바라봐야만 했다. 결국 그날 저녁은 된장국에 김치로 때워야 했다.

대학을 입학할 즈음 할머니께서는 치매가 오셨다.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방 안에 누워만 있었다. 할머니 방에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어머니는 사람이 늙으면 속에서부터 썩는 거라고 말했다. 측은한 생각에 평소 당신이 좋아하던 라면을 끓여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좋아하던 라면을 해드려도 일어나지도 않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3년을 누워만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방학을 하고 집에 내려가는 날이면 반가움에 내 손을 붙잡고 펑펑 울곤 했다.

나는 제대 후 복학하기 전까지 고향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책을 읽다가 출출해서 부엌을 뒤졌는데 먹을 거라고 라면 한 봉지뿐이었다. 나는 라면을 부셔 먹으며 책을 읽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방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오시더니 머리맡에 먹다 남은 라면 부스러기를 집어 먹는 것이었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나는 반쯤 잠이 깼다. 짜증이 났다. 먹을 걸 밝히느라 잠도 못 자게 하네. 하지만 한편으로는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먹고 싶으셨으면……, 이따가 라면 한 그릇 끓여드려야겠고 생각하는데, 그 순간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2년 전 돌아가신 것도 잊을 만큼 너무나 생생한. 짐에서 깼지만 눈을 뜰 수 없었다.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나는 가끔 할머니 꿈을 꾼다. 그리고 라면을 끓일 때나 고등어 튀김 냄새가 날 때면, 소용없는 후회인 줄 알면서도 할머니를 향한 곱지 못했던 마음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살아 계실 때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고향에는 그때 할머니처럼 늙으신 어머니께서 혼자 집을 지키고 계신다. 어머니께서 떡을 좋아하신다.




  얼마나 슬펐는지, 내가 눈물을 흘렸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라면을 끓여야 하는데, 그걸 먹을 사람은 이제 남아있지 않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은 잊을 수 없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물론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겠지만, 죽음이란 이 자리에 없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사람을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그 사람의 말이 내 귀에 도달하지 않고, 내 말이 그 사람의 귀에 도달하지 않는 것, 그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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