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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니 Aug 02. 2024

이상한 소리

에세이

     

화요일 2교시 3학년 10반 심화국어시간. 그날 3학년 전체가 졸업앨범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교실에 들어가 보니 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남아 있는 학생들 중 이미 사진을 찍은 학생들은 자습을 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군데군데 몰려 머리를 매만지거나 얼굴을 꾸미고 있었다. 속으로 잘 됐다, 싶었다. 나는 교탁 옆에 있는 담임용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그렇게 한 시간 책이나 읽다가 갈 요량이었다. 

단체 사진이 아니라 증명사진을 찍는 거라 그런지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수업을 하기에는 애매하여, 오늘은 이대로 자습을 하자고 했다. 아이들도 좋다고 했다. 어수했던 분위기는 금세 가라앉고 교실은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독서하기에도 딱 안성맞춤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덜컥덜컥, 덜컥덜컥."


처음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이미 빠져 들어간 책 속에서 다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소리가 그렇게 신경쓰일 정도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한 소리는 계속되었다. 나는 시선은 책에 그대로 둔 채 그 소리의 정체를 헤아려보았다. 수평이 맞지 않은 책상이 흔들리는 소리였다. 누군가 다리를 떨고 있거나 아니면....나는 그렇게 얼마간 그 소리에 대해, 그 소리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 생각해보다, 그러다 그냥 두기로 했다. 무엇보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고, 그리 큰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말겠지,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하고 치부하면서.


하지만 이상한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인식될 만큼. 물론 다른 학생들도 나와 마찬가지일 거란 점도 내 인식과 행동 변화에 얼마간 작용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살폈다. 복도편 중간쯤에 앉아 있던, 그 반에 도움반 학생 중 한 명이었다(이한실이란 이름의 여학생이었다. 그애가 1학년일 때도 나는 그애를 가르친 적이 있다). 지우개로 무언가를 열심히 지우고 있었고, 그때문에 책상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애 곁으로 소리가 나지 않게 걸어갔다. 두 자리수 덧셈 문제였다. 이미 적어 놓은 답을 다시 지우고 똑같은 답을 그곳에다 다시 쓰고 있었다. 내가 보는 와중에도 그러기를 반복했다. 따져보니 답은 정답이었다. 책상 위에는 지우개똥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책을 펼쳤다. 


"덜컥덜컥, 덜컥덜컥, 덜컥덜컥."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이상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만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책상을 교체해주는 대사를 감행하기도 그렇고...


"덜컥덜컥, 덜컥덜컥."


그때 한 남학생과 시선이 마주쳤다. 무언의 대화가 오고 간 듯했지만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조금 신경쓰이고, 짜증이 나네요, 정도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그게 아니라면....

어쩌겠어요? 어쩔 수 없지요. 세상 일이 다 그런 거 아닌가요? 일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거지요. 안타깝지만.

그 남학생에게는 그런 일이 잦은 일상일지도 몰랐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긍정의 의미도 그렇다고 부정의 의미도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깊은 상념에 조금씩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교탁 위에 나눠주다가 남은 유인물 몇 장이 보였다. 나는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여러 번 접은 후에 한실이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살며시 책상을 들어 한쪽 다리에 그것을 괴었다. 

한실이는 계속해서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이상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남학생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보며 무슨 말인가를 하는 듯 했지만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 이상한 소리는 교실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웬일인지 이상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메아리처럼, 내 안에서.




운명적인 불운을 겪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참 다행이다.

나와 내 가족이 운명적인 불운을 피해간 것에 대해서. 내가 아니니까, 우리 애들은 그나마 건강하니까..... 

하지만 그것으로 끝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원치 않지만 계속 이어진다. 

과연 그런가? 나만 괜찮으면 되는 것인가?

그러나 이내, 생각으로 그칠 쓸데없이 생각이란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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