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그르니에 <섬>을 번역하고 쓴 김화영의 소감문이다. 이런 곳(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사람으로서 잠시,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아무나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주워 온 지식들로 길고 긴 논리를 편다. 천직의 고행을 거치지 않고도, 많은 목소리들이, 무거운 말들이 도처에 가득하고, 숱하고 낯선 이름들이 글과 사색의 평등을 외치며 진열된다. 정성스러운 종이 위에 말 없는 장인이 깎은 고결한 활자들이 조심스럽게 찍혀지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가? 노랗게 바랜 어떤 책의 첫 장을 넘기고 장인 마리오 프라씨노가 고안한 장정 도안에 의거하여 그리예와 페오의 아틀리에에서 제조한 犢皮紙(독피지-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종이)에 50부의 특별장정본을 따로 인쇄하였다,라고 써 놓은 것을 읽을 때면 마치 깊은 지층 속에 묻혀버린 문화를 상상하는 듯하다. 그런 책 속에는 먼 들판 끝에 서 있는 어느 집 외로운 창의 밤늦은 등불 빛이 잠겨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썩지 않는 비닐로 표지를 씌운 가벼운 책들을 쉽사리 쓰고, 쉽사리 빨리 읽고 쉽사리 버린다. 재미있는 이야기, 목소리가 높은 주장, 무겁고 난해한 증명, 재치 있는 경구, 엄숙한 교훈은 많으나 <아름다운 글>은 드물다. 잠 못 이루는 밤이 아니더라도, 목적없이 읽고 싶은 한두 페이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수많은 책들을 꺼내서 쌓기만 하는 고독한 밤을 어떤 사람들은 알 것이다. 지식을 넓히거나 지혜를 얻거나 교훈을 찾는 따위의 목적들마저 잠재워주는 고요한 시간, 우리가 막연히 읽고 싶은 글, 천천히 되풀이하여, 그리고 문득 몽상에 잠기기도 하면서, 다시 읽고 싶은 글 몇 페이지란 어떤 것일까? 겨울 숲속의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씩만 바람소리를 떠나 보내고 그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문장들. 그 문장들이 끝나면 문득 어둠이거나 無, 그리고 무에서 또 하나의 겨울나무 같은 문장이 가만히 일어선다. 그런 글 속에 분명하고 단정하게 찍힌 구두점. 그 뒤에 오는 적막함, 혹은 환청, 돌연한 향기, 그리고는 어둠, 혹은 무. 그 속을 천천히 거닐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 산문집을 번역했다. 그러나 전혀 결이 다른 언어로 쓰인 말만이 아니라 그 말들이 더욱 감동적으로 만드는 침묵을 어떻게 옮기면 좋단 말인가? - 金 華 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