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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 Sep 24. 2024

긴 비행, 그리고 시작된 나의 여정

올 초부터 고민과 생각으로 번뇌에 빠져있던 나는 현생에 치여 무기력하게 살았다. 그러던 중, 다시금 나의 생각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되었던 것은 짧지만 길었던 유럽 여행이었다. 여러 생각들을 충분히 깊게한 후, 나만의 결론에 도달하고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은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느리게 살아온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미국과 호주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고, 아시아 국가들은 짧게 여행을 다녀왔다. 새롭게 떠날 여행지로는 유럽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유럽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랄까. 하지만, 미디어에서 너무 많이 접하고 유럽놈들에 대한 선입견도 있어서 미치도록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았다. 그런데도 유럽을 선택한 이유는 퇴사 후 곧바로 재취업을 하고 싶지 않았고, 어학연수를 핑계로 ‘몰타’라는 나라를 골랐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름이었다. 몰타는 지중해의 섬나라다. 아름다운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서 매일 바다에서 수영하고 노는 상상만으로 몰타는 나에게 충분했다.

그때는 아직 농익지 않은 나의 용기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다시 취업할 생각이었고, 외국계 기업에 도전할 기세로 다시 영어를 자연스레 익히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오랜만에 긴 비행에 나섰다. 이 긴 비행이 나의 방황의 시작인지는 모른채로.



경유지 비엔나에서 몰타로 가는 비행기에서부터 이질감 느꼈다. '이렇게 아시안이 없다고?' 비로소 내가 유럽으로 가는구나 실감했다. 몰타에 도착해 어학원이 보내준 차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도로에 있는 먼지로 뒤덮여 관리가 전혀 안된 차들을 보며 '나 진짜 외국에 왔구나' 또 깨닫는다. 점점 설레기 시작했다. 미국과 호주에서 처럼 나는 앞으로 한 달 동안 많은 일을 겪을 것이고, 그 경험들이 나를 변화시킬 테니까.


첫날 저녁, 두 명의 프랑스 친구들이 집으로 왔다. 오랜만에 영어를 쓰다 보니 조금은 버벅거렸지만, 점점 적응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펍에 갔다. 피곤하고 어색했지만, 외국인 친구를 사겨야한다는 생각에 따라 나섰다. 그곳에서 한 스페인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나에게 스페인어를 하는건지 영어를 하는건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호주에서 호주식 억양에 고통받던 나날들이 떠오르면서 머리가 멍해졌다.


그렇게 몰타의 첫날이 지나고, 어학원에 가는 날이었다. 시차적응을 못한 탓에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아침을 챙겨먹고 학원에 갔다. 학생 등록을 하고 수업 시작 전 모든 학생들이 1층 로비에 앉아있었다. 나도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옆에 앉은 친구의 책이 나랑 똑같았다.같은 반일것 같아 우리 교재가 똑같다며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그 친구는 독일에서 온 레나라는 친구였다. 나의 영어이름도 레나인데 운명인가...! 


시작이 좋다. 같은 이름, 같은 반, 몰타에 온 시기도 비슷하고 떠날 시기도 비슷하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어떤 일이 펼쳐질까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은 채 나의 몰타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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