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가진 언어

2024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by 강신명


1.

단지, 등에 머물던 바람이 어깨를 툭툭 쳤을 뿐이었다

지금은 피고 질 때가 아니라고 무늬 없는 손을 휘젓던 나는

손끝에서 시작된 멀미로 한쪽 무릎을 오래 망설였다


2.

쌓이는 거스러미를 너는 줄곧 감추려 하고

나는 이내 태우려 하고 한쪽 등이 한쪽 등을 밀어낼 때

서로에게 기운 등은 비슷하게 불행해졌다

등을 타고 흐르는 죽은 소리, 시든 것들


3.

등은 마디마다 베인 흔적으로 빗장을 쳤을 것이다

갈라진 햇살 한 점이라도 움켜쥐고 싶었을 것이다

허들 경주하듯 숱한 날을 껑충거리며 앓았을 것이다

한 치의 반란도 허용치 않는 바람을 홀로 막아냈을 것이다


4.

바닥에서 자란 시간이 산등성을 건너뛰고 있다

어둑해진 기억은 서로의 등을 자주 풀었다 감았다

물에 젖은 배경이 먼저 스쳐 갔고

한낮은 냉기 자욱한 환부를 자꾸만 도려냈다


5.

입김 풀어헤치며 밤낮을 극명하게 갈랐던 등이

통점 아물어 단단해진 단면을 드러낸다

포물선 그리며 겹쳐지는 익숙한 이름 사이로

어둠 가르는 빈 마음의 방점이 찍힌다

박제시킨 미움으로 살아남은 우리의 위대한 등과 등


6.

내 앞에 멈춘 너의 등은 가장 가까운 우주였다

각도가 달라진 등은 무표정한 저녁이 와도

쉽게 어두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