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 = 100
10÷10 = 1
10−10 = 0
10+10 = 20
같은 10과 10이란 숫자를 줬지만, 공식에 따라 답은 모두 다르다. 어느 답이 옳고 어느 답이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계산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우리 삶도 결국에는 ‘어떤 성격으로 살아가는가?’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옳거나 그르다’가 아니라 ‘다르다’는 것이다.
시중에 많은 자기계발서, 자녀교육법, 인간관계론, 성공비법 등이 있다. 만약, 성격유형을 잘 모르고 함부로 모두에게 적용하면, 선무당이 사람 잡게 되거나 돌팔이 의사에게 시술을 받는 것처럼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로 살아가는 사람이 왜 그렇게 사느냐고, 그렇게 해서 언제 숫자가 늘어나냐고 다그치면 어떻게 될까?
모든 계산은 쓰임새가 다르다. 곱하기가 필요할 때가 있고 더하기나 빼기, 나누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분명 그 쓰임새가 다르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타고난 성격 또한 모두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만약 계속해서 다른 방식의 삶을 틀렸다고만 한다면, 그리고 다른 계산방식으로 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 좋은 예의 이야기가 있다.
연꽃과 선인장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간다. 둘은 굉장히 친한 사이다. 둘은 같이 있으면 모든 것이 즐겁다. 선인장은 연꽃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시간이 어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연꽃의 얘기가 재밌다. 연꽃 또한 선인장이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어 고맙고 선인장의 얘기를 듣는 것 역시도 너무 재밌다. 다른 이들과 함께 있으면 조금만 있어도 지루한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둘은 모든 것을 얘기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꽃은 선인장이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연꽃의 관심은 선인장이 왜 물을 마시지 않지? 하는 것이었다.
연꽃은 선인장에게 물었다.
"너 왜 물 마시지 않니?"
“응, 난 물 싫어해. 그리고 물 안 마셔도 건강해”
그러자 연꽃은 선인장에게 얘기했다.
“친구야, 어떻게 좋아하는 것만 먹겠니?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는 게 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연꽃은 ‘진짜 친한 사이라면 힘들어도 상대가 잘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연꽃은 선인장에게 물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친구야! 물 먹어야 해. 물 먹어. 빨리 먹어야 한다니까”
선인장이 그래도 여전히 물을 마시지 않자 연꽃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로지 선인장에게 물을 먹여야만 선인장이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됐다.
‘친구를 위해서는 내가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물을 먹여야 해’
그리고 생각은 행동으로 바뀌게 되었다. 연꽃은 선인장이 잠들었을 때 몰래 물을 주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동은 계속되었고 결국, 선인장은 죽게 되었다.
연꽃은 선인장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래서 본인을 희생해서라도, 본인이 힘들더라도, 선인장의 잘못된 행동을 고쳐주고 싶었다.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집 이야기’다.
남편이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편은 한 창 정신적으로 성장해야 할 때 아버지의 그늘에 있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그늘이 있음을 알려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사랑이라 확신하며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연꽃처럼.
때론 무관심이 사랑일 수 있음을 우리는 잘 모른다. 선인장에겐 차라리 연꽃이 무관심했더라면 더욱 잘 자랐을 것이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연꽃이 선인장에게 물을 주던 것처럼 남편의 노력이 아들에겐 독이고 상처였다. 누구의 조언이나 관심이 필요한 아이가 있지만, 누구의 관심이나 조언보단 본인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만히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한 아이가 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선인장 같은 유형의 사람이 있다. 그게 우리 아들 현이다. 이들에겐 무관심이 더 큰 성장을 불러온다. 이들에겐 과분한 관심보다는 가끔, 아주 가끔 물 한 모금만 주는 것이 도움된다.
요즘 교육환경이 너무 잘 되어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조금만 궁금하면 네이버나 유튜브에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지나치게 다양한 지식 채널, 자기계발서, 자녀교육법, 인간관계론, 성공비법과 같은 정보들이 선인장에게 주는 연꽃의 물이 아닐까 싶어 걱정될 때가 있다.
연꽃에게 물을 주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지만, 선인장과 같은 친구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인장에게 물을 주지 말아야 하고, 연꽃에겐 물을 주어야 하는 것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는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흔히들 누가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더라, 그렇게 해서 서울대 보냈다더라, 그것을 먹으면 몸에 좋다더라는 얘길 들으면 우리는 귀가 솔깃해진다. 그리고 실행해본다. 그것이 선인장에게 주는 물일 수도 있음을 모르고….
한 스승이 4명의 제자에게 성급한 판단을 피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멀리 여행을 갔다 오라 했다. 먼 여행이다 보니 각자 도착한 계절이 달랐다. 그렇게 다녀온 네 명의 제자는 각기 다른 얘길 했다. 한 명은 봄, 다른 한 명은 여름, 또 다른 한 명은 가을, 마지막 한 명은 겨울에 대해 보고 느낀 것을 설명했다.
그런데 성격은 같은 계절에 다녀왔어도 다른 것을 얘기한다. 한 명은 쭉쭉 곧게 뻗은 삼나무를, 또 한 명은 구불구불 멋있는 소나무를, 또 다른 한 명은 잎이 무성하여 그늘이 좋은 느티나무를, 마지막 한 명은 칭칭 휘감겨 올라가는 등나무를 바라보고 온다. 이는 같은 계절, 같은 곳을 다녀왔지만, 성격에 따른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꿈틀거리며 휘감기는 등나무에게 “너는 왜 그렇게 바르지 못해. 좀 똑바로 서봐” 한다고 등나무가 바로 서지 못한다.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고 등나무에게는 등나무에게 맞는 환경을, 삼나무에게는 삼나무에게 맞는 환경을 적용할 때 모두가 어울려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성격도 모두가 다를 뿐이지 좋고 나쁜 성격이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자신의 성격은 옳고 다른이의 성격은 그르다고 고집하거나, 모두의 성격을 일괄적으로 묶어 다름을 놓치거나 할 때가 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각기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름을 이해하고 또한 각자의 장단점을 알고 거기에 맞게 대할 때 최고의 관계가 이루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