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강한 사람들에게
성격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펼칠 때 강하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거나 상처를 주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본인에게도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상대방과의 관계에 긴장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의견을 표현할 때 적절한 자기 조절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내가 너무 강압적이었나?’
‘그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나?’
이렇듯 본인의 행동이나 말 때문에 본인도 상대도 힘들게 된다. 이처럼 성격이 강해 힘든 사람들에게 아들러는 ‘과제 분리하기’를 실천하라 했다.
‘과제 분리하기’란 나의 과제는 내가 선택하고 상대방의 과제는 상대방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과 상대방이 하는 것을 구분하자는 것. 즉, 나는 내가 하는 일을 하고 상대방이 하는 일에 참견치 말자는 것이다. 이런 아들러의 주장은 상담현장에서 ‘나 전달법’이라는 상담기법으로 발전했다. 나 전달법은 주어를 '너'가 아니라 '나'로 하는 것이다.
그럼 과제 분리하기를 좀 더 알아보자. 우리는 자녀에게 “공부해라” 그리고 자녀가 성인이 되면 “취직해라”, “결혼해라”란 말을 참 많이 한다. 여기서 ‘과제 분리하기’를 대입해보자. 공부, 취직, 결혼은 누가 하는가? 모두 자녀가 하는 것이다. 부모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는 자녀의 과제에 부모가 침범한 것이 된다. 이는 ‘과제 분리하기’에 반하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공부해라"를 ‘과제 분리하기’로 실천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과제로 자녀가 공부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과제는 어떤 것이 있나 살펴보자.
먼저, 자녀가 공부할 때 허기지면 집중이 덜 될까 걱정해서 간식을 건네준다. 이럴 때도"간식 먹어!"가 아니라 “내가 너 배고플까 해서 간식 가지고 왔네”처럼 나의 과제로 얘기한다. 그리고 자녀가 조용한 분위기에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TV 음량이나 가족과의 대화 목소리를 작게 한다. 또는 자녀가 찾기 힘든 학원 정보나 건강 정보 등을 찾아 알려준다. 이때도 “이거 해”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좋다네”로 나의 과제로 알려준다. 알려준 것을 선택하고, 않고는 자녀의 과제이니 침범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공부해” 라는 말은 쉬운데 나의 과제는 좀 더 어렵다. 이쯤 되면 이런 말이 나온다.
“거, 나 원 참. 나는 공부하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뭐 이리 크게 해석해서 빙빙 어렵게 얘기합니까?”
이럴 때 사용하는 도구가 ‘나 전달법’이다.
‘나 전달법’이란 상대에게 ‘하라’는 명령어 대신 ‘나는 ~한다’처럼 나를 주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즉, “공부해라” 대신 “나는 네가 공부했으면 좋겠다”로 말하는 것이다.
부부 사이를 예를 들어보자.
남편이 저녁에 국수가 먹고 싶어 아내에게
“여보, 오늘 저녁에 국수 좀 해”
이런 대화는 가정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대화다. 이걸 ‘나 전달법’으로 바꿔서 말하면
“여보, 나 오늘 저녁에 국수 먹고 싶어”이다.
다른 예도 살펴보자. 중장년 부부 사이에서 가장 상처 주는 말은 이런 말이라 한다. 남편이 아내에게는 “마누라가 집에서 살림이나 잘해” 아내가 남편에게는 “돈이나 많이 벌어 와” 이다. 그냥 들어도 기분 상하는 말을 이렇게 명령어로 하니 더욱 상처를 주게 된다.
이런 상처 주는 말도 ‘나 전달법’으로 하면 조금 부드러워진다. “나는 당신이 집에서 살림이나 잘했으면 좋겠어”, “나는 당신이 돈 많이 벌어 오길 바래”
같은 말이지만 좀 더 부드럽다. 하하하···.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누구보고 ‘하라’는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과제에 침범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류시화 시인의 에세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참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송이는 너무도 가볍고 보드랍다. 계속 앉아서 눈이 내리는 걸 지켜보는데, 저기서 가벼운 눈송이 하나가 나뭇가지에 살포시 떨어진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우지직하며 부러지고 만다. 그 눈송이 하나는 가볍고 가벼웠는데. 그 작은 눈송이 하나가 뭐라고 나뭇가지가 부러진다.
눈송이 하나는 너무너무 가볍다. 이처럼 우리 주위를 가만 보면, 처음부터 큰 무게로 위험에 빠지진 않는다. 큰 무게의 사건은 누구나 인지하기에 그만한 각오나 대책을 마련한다. 우리가 쉽게 빠지는 함정은 이렇게 작은 것을 소홀히 할 때다. 성격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본인도 모르게 상처 주는 말을 더 많이 한다. 작고 보잘것없는 ‘하라’는 명령어가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게 된다.
직장에서 혹은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아니! 별거 아닌데 왜 저래?” 하는 의아한 상황들이 종종 벌어진다. 만약 이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보자.
‘평소 내가 당신의 과제에 많이 침범했구나. 작은 일이 가슴에 많이 쌓여 있었구나! 그래서 지금 이만한 일로 화가 났구나!’ 하며 지난 내 행동을 한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언니와 나는 늘 함께한다. 그러다 보니 성격이 강한 내가 언니의 과제에 많이 침범하게 된다. 늦게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제일 반성하는 게 언니와의 관계에서 나의 이런 행동이다.
가끔 ‘내가 이런 얘기를 해야 하나?’ 혹은 ‘그 얘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하며 상대와의 대화에 확신이 없어 힘들 때가 있다. 이럴 때 ‘과제 분리하기’는 쉽게 답을 찾도록 도와준다.
먼저, 하고자 하는 말이 혹은 했던 말이 나의 과제인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첫째는 아직 말을 하지 않았을 때다. 이럴 땐 만약 하고자 하는 말이 상대의 과제에 침범하는 말이라면 나의 과제로 고쳐서 하면 된다. 예를 들어 "너 그러면 안되잖아? 그러지 마"를 나의 과제로 바꿔서 연습해 본다. "나는 너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나는 너가 그러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라고.
둘째는 벌써 말을 했을 때다. 만약 벌써 뱉은 말이라면 두 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나의 과제에 맞게 말했는가? 만약 나의 과제로 말을 했다면 걱정 말자. 나는 나의 도리를 다한 것이니. 상대가 힘든 것은 상대의 과제이기에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상대의 과제에 침범해서 말했다면 망설이지 말고 사과하자. 과제 분리하기 즉, 나 전달법으로. 참 단순하다.
성격이 강할수록 남의 과제에 더 자주 침범한다. 그렇다면 ‘과제 분리하기’를 실천해보라. 그럼 그 관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이는 갈등 해소 방법 중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꾸준히 습관이 되도록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