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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 후선 Dec 19. 2024

‘바라보는 관점 바꾸기’

성격이 무난한 사람들에게

 성격이 무난한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갈등을 피하고 평온해 보일 수 있지만, 내면에서는 자신의 삶이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바로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고정된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작은 '생각의 변화'가 이들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아들러는 이를 '관점 바꾸기'라고 했다. 로젠탈효과, 기대효과, 플라시보효과, 피그말리온효과가 모두 이와 관련한 심리학 용어다. 

 세상의 중심은 나고, 그런 나를 바꾸는 것은 ‘생각’ 즉, ‘인지’다. 이런 인지의 변화는 나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 깊이 스며든다. 그리고 나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여기 유리컵에 물이 반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걸 보고 ‘반이나 있네’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반밖에 없네, 이를 어쩌지’라며 불안해한다. 일어난 사건은 같은데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다. 즉, 같은 걸 바라보면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아들러는 이것을 ‘바라보는 관점 바꾸기’라고 했다.      

 남편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싱크대에 놓다가 그만 ‘쨍그랑’ 깨뜨렸다. 남편은 짜증 반 걱정 반 썩인 말투로 얘기한다.

 “오늘 중요한 계약이 있는데... 이런...”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난 액땜했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깜짝 놀라면서 “그래?” 하며 의아해한다. 


 아이들과 바쁘게 아침을 준비하다 보면 별의별 일들을 경험한다. 아이들 유치원에서 현장학습 간다기에 급하게 아이들 체육복을 꺼내 보지만 뭐가 많이 묻어 있어 그냥 입혀 보내기엔 민망할 때가 있다. 또는 급하게 준비해서 주차장에 도착해보면 막상 차 키가 없다. 이런 여러 가지 별별 일들이 아침에 일어난다. 그럴 때면 짜증도 짜증이지만, 손님과의 계약이 캔슬로 이어질까 못내 불안해진다. 

 그러다 ‘아침에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은 그날 하루의 불길한 기운을 없애는 액땜이다’ 라고 생각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이는 직업상 늘 고객을 대하는 나에겐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어쩌다 아침에 옷을 입다가 단추가 ‘툭’하고 떨어지면 

‘앗싸! 오늘 액땜했네. 고고’. 또다시 나오다가 발을 헛디뎌 가방 속 물건이 밖으로 다 쏟아지면 ‘앗싸! 완전하게 액땜 다 했네. 쿵따리 사바라’ 라고 생각했다.

 그 뒤부터 나의 하루는 아침의 그 어떤 일 때문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요즘 도시에는 까치와 까마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텃새로 참새, 비둘기. 직박구리 등도 있지만, 이 친구들은 조용하다. 유독 까치와 까마귀가 시끄럽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큰 나무가 없었기에 까치나 까마귀가 앉아서 쉴 만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이 친구들 때문에 감정의 기복을 느끼지는 못했다. 

 도시로 나오고부터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까치 소리를 들으면 왠지 계약을 많이 할 것 같아 기분이 들뜨고, ‘까아악’ 하는 까마귀 소릴 들으면 성사되었던 계약도 깨질 것 같은 불길함이 드는 것이.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까치 소리보다 까마귀 소리가 더 많이 들리니 참으로 신경 쓰여 곤혹스러웠다.      

 까마귀는 우리나라에서만 흉조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길조다. 이웃 나라만이 아니다. 고구려 때의 삼족오가 다리 셋인 까마귀다. 그리고 다른 새와 달리 까마귀는 새끼가 자라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기에 은혜에 보답하는 새로, ‘반포지효(反哺之孝)’로 유명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까마귀는 길조다. 까마귀는 길조다. 길…조…다.’ 

 그 뒤로부터 아침마다 까마귀가 울어도 까치가 울어도 더는 감정에 기복이 없었다. 그냥 시끄러운 놈들이구나 했을 뿐.

 그때부터인가 까마귀가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까마귀의 외양은 카리스마 그 자체다. 새까만 것이 어찌 그리 간지 나는지. 나는 모습은 또 어떤가? 푸드덕푸드덕하며 나는 까치랑은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독수리처럼 너무 크지도 않고 참새처럼 너무 작지도 않다. 딱 적당하다.

 만약 신이 다시 태어나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조금도 망설임 없이 

 “까마귀요, 저는 까마귀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산 정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까마귀요…”    

 

 이렇듯 바라보는 관점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삶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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