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은 고전문헌학자인 배철현 작가의 '심연', '수련', '승화'와 함께 네권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개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평소 나와 대화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배철현 작가의 매일묵상의 글을 즐겨 읽던 독자로서 그의 책 정적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책의 부제에서 그는 말한다.
정적이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이 된다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아니,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수많은 외부의 소리에 둘러싸인다. 유튜브 영상이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를 듣기도 한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카톡으로 사람들의 메세지를 받고, 인터넷 검색으로 기사를 읽기도 한다. 내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생각들은 나의 이야기일까 세상의 이야기일까? 내 안의 목소리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는 걸까?
요즘 나는 시간이 될때마다 가능한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일정을 쪼개어 양평으로 2박 3일 나홀로 북스테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아이가 없고 신랑이 출장을 자주 다니는 편이라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지만 일상 속에서고요한 시간을 가지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의지와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정적을 통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아주 천천히' 읽었다.
나비에게는 고치 안에서의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작가는 말한다. 정적은 흔들리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고요하며 의연한 나로 성숙하는 시간이라고.
정적을 수행하는 사람만이 유혹하는 외부의 소리를 거부하고 자신의 마음 속 미세한 소리, 사소한 생각에도 깊게 귀를 기울일 수 있다고.
정적은타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다. 자기 중심적인 히어링이 아니라 타인 중심적인 리스닝을 위해서 정적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내 안의 생각을 잠재우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가 요구되는 일이다.
완벽이란 완벽 그 자체가 아니라 완벽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다.(25)
-> 나는 자신이 내린 단어의 정의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배철현 작가의 단어의 정의를 통해 그가 가진 삶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완벽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 완벽'이라는 작가의 정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관계의 핵심은 '간격'이다. 간격이 존중될 때 관계가 온전해지고, 비로소 나는 독립적인 나로 존재한다.(28)
사랑은 상대방과의 간격을 존중하는 연습이다. 그 간격은 대상을 온전한 인간으로, 온전한 세계를 가진 가치로 인정하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33)
-> 어떤 관계에서든 적절한 간격이 중요하다.
기억으로 존재하는 지식은 내 말과 행동을 통해 배려와 친절로 드러나야 한다. (...) 인간은 배움을 통해 과거라는 현상 유지의 단계에서 자신이 열망하는 미래의 단계로 진입한다. 배움은 과거의 자신에게 안주하려는 이기심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이며,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한 자기혁신의 분투다. (38)
배움이란 습관이다. 정신적인 깨달음은 육체적인 노동을 반복함으로써 완성된다.(...)배움이 실질적인 행위로 보강되지 않는다면, 그런 배움은 거짓이다.(38-39)
-> 아무리 많은 것을 배운다해도 실제 행동을 통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건 진짜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무용지물이다. 최고의 강사에게 고가의 강의를 듣는다해도 내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면 배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배운 것을 하나라도 내 삶에서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배움은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한 고독한 수련이다.(41) -> 배움없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배움은 인간의 심연에 존재하는 친절의 유전자를 체계적으로 자극해, 그 사람의 언행으로 전환시킨다.(42)
-> 타인과 함께 하는 삶에서 배움의 목적은 바로 친절한 언행이 아닐까.
믿음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헤아리려는 생각 훈련이며, 그 훈련을 거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아내는 수고다.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를 소유한다. 진실이란 그런 믿음이다. 진실이란 자기신뢰이며, 그 가치를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다. 내가 스스로 고요한 중에 나의 마음을 수련하지 않으면 친절과 진실이 나를 떠난다. (43) -> 내가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은 가장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마음은 흔들리기 쉽다. 나는 마음 수련을 통해 친절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배움은 자신의 머리가 아니라 심장에 그 내용을 새기는 작업이다.(44)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조금씩 개선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정돈되어 있고, 스스로에게 친절하다. 그런 사람이 남에게도 친절하다.(44) ->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도 배워야 가능하다.
탈무드 '선조들의 어록' 에서 말한다. -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 지혜롭다. -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 자신의 몫에 만족하는 사람이 부자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알고 있다. 매일 그곳에 가기 위한 최적의 길을 발굴해 묵묵히 걸어간다. 그는 자신이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목적지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올바른 길 위에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이 걸어가갸 하는 길을 저 높은 경지에서 관조해 발견했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 활기차다.(49)
내 삶의 방향 - 의도는 이 문장들에 대한 답으로 결정된다.
"나는 오늘 어떤 사람으로 변하고 싶은가?" "내가 몰입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과 행동의 집합이다. 나의 삶은 겉으로는 상관없어 보이는 수많은 생각과 행동이 만들어내는 총체다. 이 총체가 바로 나다. 일 년이 순간의 연속이듯, 나의 운명과 개성은 내가 지금 떠올리는 생각의 결과물이다. (60)
-> 내가 강의 때 청중들과 꼭 함께 읽는 문장이 있다. "앞으로의 나는 지금부터 내가 선택한 것들의 결과물이 된다." 아주 작은 생각과 행동이 내가 가는 목적지로 인도해준다.
"순간이 일생이며 일생이 순간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소한 일상을 통해 자신 스스로 주인이 된다."
하루라는 시간은 내가 순수하게 만들어낸 사적인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이며, 그것이 나를 떠나 타인을 통해 재창조되는 공간이다.(72)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단어의 정의는 바로 스타일과 성공,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것이었다. 직업과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 평소 나의 생각과도 일치했기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스타일은 자신을 정의하는 아우라이며 문법이다. (75) 스타일은 자신의 생각을 손을 통해 글로 표현하는 것이지만, 폭넓은 의미로는 삶의 태도이자 삶의 방식이다.(76) 스타일의 원래 의미는 나를 세워주는 어떤 것이라는 뜻이다. (..) 스타일은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삶의 원칙이자 문법이다.(77)
-> 스타일은 나를 세상에 표현하는 언어다. 스타일이 진짜 나와 일치해야 하는 이유다.
성공은 내가 의도한 일에 대한 나의 실력과 그 일에 몰입하겠다고 다짐하는 준비,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하는 성실, 이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95)
->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성공한 사람은 이것을 가지고 있다. 실력과 준비, 그리고 성실.
'디자인(de-sign)'은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하나는 전치사 '데(de)'이고, 다른 하나는 라틴어 동사 '시그나레(signare)'에서 파생한 '사인(sign)'이다. '시그나레'는 '영역을 표시하다/자신을 남들과 구별하다/자신의 무늬를 통해 무엇을 의미하다'라는 뜻이다. 전치사 'de'는 뒤따라오는 단어를 반대하거나 부정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나오는 파생, 추론, 추상이다. 'de'에는 어떤 것을 유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즉 디자인은 내가 이미 지니고 있는 어떤 것을 밖으로 꺼내는 작업이다. 나만이 갖고 있는 어떤 것을 표현할 때, 그 디자인은 독창적이고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108)
디자인은 거룩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하려는 기술이다. 또한 본연의 나를 모아 '현재의 나'를 통해 실현하려는 합일의 예술이다. (110)
디자인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별시키는 무엇,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그 무엇을 찾는 연습이다. 나는 어떤 사인(sign)'를 갖고 있는가? 나를 나답게 만드는 표식은 무엇인가?(111)
인간의 유전자가 모두 다른 이유는, 각자에게 어울리는 '나다움'이라는 '다름'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129)
내성은 남에게 감동적인 내가 아니라 나에게 감동적인 나 자신을 보호하는 요새다. 이 요새에는 나의 생각과 말, 글 그리고 행동을 조절하고 다듬는 '또 다른 나'가 좌정해 있다. (141)
교육은 앎에 대한 호기심, 앎을 확장하기 위한 수련, 앎을 통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으로 구성된다. 앎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지식은 우연히 자신에게 주어진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편견이며 왜곡일 수밖에 없다. (166)
-> 교육의 키워드는 호기심, 수련, 겸손
교육은 '자아'라는 무식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다. (166)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인간이 되려는 과정의 수련생이다. (186)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부는 조국의 소유이고, 다른 일부는 친구들의 소유입니다. - 키케로 <의무에 관하여>
-> 우리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서로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달라질까?
교육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다양성 가운데 자신에게 알맞은 답을 찾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216)
자유로운 인간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선별하고 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217)
-> 나는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 지혜와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교육은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고유함을 발견하게 만드는 자극이 되어야 한다. (219)
범인들은 타인과 경쟁하지만, 흠모하는 자신을 열망하는 사람은 오래된 자기와 묵묵히 경쟁할 뿐이다. (229)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온전하고 유일한 존재다. 만일 내가 조절할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는 것들을 통해 행복하길 바란다면, 그는 어리석다. (248)
우리가 일상을 통해 마주치는 크고 작은 일들의 경중을 알고, 그것을 잘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지혜다. 그 이상을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255)
오늘 하루는 거대한 예술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조그만 퍼즐 조각이나 카발라의 그릇 조각이다. 나는 오늘 이 조각으로 무엇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297)
사마천의 <사기> - 재소자처
: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장소나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대하는 태도, 즉 처세다. (301)
결국, 태도가 전부다.
다이몬은 혹독한 시험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인 천재성이 드러나도록 돕는다. 다이몬은 나를 억세게 밀어붙이는 악마이자 이전과는 다른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는 천사다. (301)
이 책 정적에서 다루는 28개의 화두는 다이몬,'스스로 완벽한 자'가 되도록 수련시키는 도우미다.
책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작가의 완벽에 대한 정의가 다시 떠올랐다. 완벽이란 완벽 그 자체가 아니라 완벽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라고.